에버랜드 ‘블러드시티’로 이머시브 장르에 처음 도전한 이석훈 감독. /에버랜드 제공
에버랜드 ‘블러드시티’로 이머시브 장르에 처음 도전한 이석훈 감독. /에버랜드 제공
세계적인 몰입형 공연 ‘슬립 노모어’에서는 관객이 무대 위 배우 사이를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자신만의 이야기를 완성한다. 관객은 객석에서 공연을 지켜보는 대신 작품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이머시브(관객 참여형) 공연이 세계적으로 인기다. 국내 테마파크에서도 영화감독이 연출한 야외 몰입형 공연이 등장했다. 영화 ‘해적: 바다로 간 산적’ ‘공조2: 인터내셔널’ 등을 연출한 이석훈 감독이 에버랜드 가을축제 ‘블러드시티’ 10년차를 맞아 ‘블러드시티 제로: 지옥의 문’ 총연출을 맡았다. 좀비가 테마파크 곳곳을 돌아다니고, 관객은 미션에도 참여한다. 다음은 이 감독과의 1문1답.

▷이머시브 공연에 도전한 계기는.

“이전부터 테마파크 어트랙션과 공간 연출에 관심이 많았다. 마침 에버랜드에서 블러드시티 10주년을 앞두고 협업을 제안했다. 스크린 너머의 관객을 무대 한가운데로 불러오는 과정이 영화 작업과는 또 다른 매력으로 다가왔다.”

▷360도로 개방된 야외 공간을 연출하며 어려웠던 점은.

“영화는 감독이 보여주고 싶은 장면을 프레임에 담아 관객의 시선을 집중시킬 수 있다. 반면 테마파크에서는 관객이 언제든 다른 곳으로 이동할 수 있다. 수만 명이 오가는 개방된 공간에서 몰입이 깨지지 않도록 동선을 유기적으로 설계하는 것이 핵심이었다. 실시간 상황 대응도 중요했다. 배우가 상황을 설명하면서도 현실감을 잃지 않아야 하기 때문에 현장 배우들의 역량에 크게 의존했다.”

▷관객의 몰입을 위해 어떤 장치를 마련했나.

“가장 중요한 것은 관객이 세계관의 ‘룰’을 이해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인공지능(AI) 기술을 활용해 10분 분량의 프리 쇼 영상을 제작했다. 세계관을 빠르게 설명하고 관객을 몰입하게 하기 위한 장치다. ‘학생주임 좀비’ ‘역장 좀비’처럼 각 캐릭터가 왜 좀비가 됐는지 보여주는 1분 안팎의 서사 영상도 QR코드 등으로 보여줬다. 관객이 단순한 구경꾼이 아니라 현장에서 미션을 수행하는 대원이 된 듯한 기분을 느끼도록 연출했다. 지난 9년간 열린 행사의 유산을 이어가기 위해 주연인 ‘화이트Z’에도 더 확실한 캐릭터를 부여하려고 애썼다.”

▷직접 참여할 때 재미있게 느낄 만한 요소가 있나.

“단순히 깜짝 놀라게 하는 데 그치지 않고 게임처럼 즐길 수 있는 규칙을 적용했다. ‘숨을 참으면 좀비가 공격을 멈춘다’ ‘소리로 좀비를 유인할 수 있다’ 같은 규칙이다. ‘핏빛 교정’ 테마 존의 학생주임 좀비는 도망치는 학생을 잡던 생전 습성이 남아 있어 학교 종이 울려야 추격을 멈춘다.

▷이번 작업을 통해 느낀 테마파크 콘텐츠의 미래는.

“디즈니, 유니버설스튜디오처럼 테마파크가 오랫동안 사랑받으려면 강력한 캐릭터와 스토리가 필수적이다. 에버랜드도 이번에 화이트Z 저항군 캐릭터 ‘안드레’와 독창적인 좀비 캐릭터의 서사를 구축하는 데 공을 들였다. 일관된 세계관과 이야기를 쌓아간다면 에버랜드도 단순한 놀이공원을 넘어 매력적인 스토리텔링 지식재산(IP) 공간으로 발전할 수 있다고 본다.”

▷에버랜드와 개인적으로 인연이 깊다고 들었다.

“에버랜드가 ‘자연농원’이던 시절, 일곱 식구로 빽빽하게 찬 포니 자동차를 타고 놀러 간 게 첫 가족 여행이었다. 1992년 군대 첫 휴가 때도 친구들과 에버랜드를 찾았다. 10년 넘게 경기 용인에 살며 딸과 추억을 쌓은 곳이기도 하다.”

▷방문객이 ‘블러드시티 제로’를 더 재미있게 즐기는 방법은.

“마음을 열고 적극적으로 참여했으면 좋겠다. 해외 이머시브 공연의 팬들을 보면 극 중 캐릭터의 의상을 입고 와서 작품의 일부가 되기도 한다. 블러드시티에서도 배우와 호흡하고 준비된 규칙에 따라 좀비에게 다가가며 스스로 세계관의 주인공이 돼보길 바란다.”

▷감독으로서 활동 계획은.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코믹 사극 영화 ‘헛개비’ 제작을 준비하고 있다. 좋은 작품으로 관객과 계속 소통하고 싶다. 이번 이머시브 작업을 계기로 연극과 공연, 드라마 등 다양한 분야로 연출 영역을 넓혀갈 생각이다.”

정소람 기자 ra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