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군자 ‘매화’ 목걸이. 나뭇가지 위에 피어난 매화와 봄날의 정취를 18.40캐럿 루벨라이트를 중심으로  팬시 사파이어, 에메랄드, 차보라이트로 표현했다 / 출처. 골든듀
사군자 ‘매화’ 목걸이. 나뭇가지 위에 피어난 매화와 봄날의 정취를 18.40캐럿 루벨라이트를 중심으로 팬시 사파이어, 에메랄드, 차보라이트로 표현했다 / 출처. 골든듀
세계가 ‘K’에 열광하고 있다. 드라마와 음악, 뷰티와 패션에 이어 푸드까지. 세계인의 열광 안에 K –주얼리의 존재감은 미미하다. 하지만 가능성마저 없는 건 아니다. K-주얼리에는 어떤 잠재력이 있을까. 국내 주얼리 시장은 오랫동안 서양식 스타일과 해외 브랜드가 유행을 주도해 왔다. 그러나 이제 그 익숙한 풍경에 새로운 흐름이 생겨나고 있다. 올드한 것으로 여겨졌던 옥반지를 찾는 젊은 세대와 해외 관광객들이 종로로 향한다. 신라 금관의 조형미는 현대적 주얼리를 위한 영감이 된다. 잊고 있던 우리의 아름다움을 다시 바라보기 시작한 것이다.

K-주얼리도 스스로 진화하고 있다. 색동과 기와, 사군자와 전통 문양이 디자이너를 거쳐 반지와 목걸이로 변신한다. 옥을 깎고 다듬는 장인의 손끝과 불로 색을 완성하는 칠보에도 오늘의 감각이 더해진다. 박물관에서 감상하던 고전미가 이제 몸에 지니고 싶은 주얼리로 태어나는 중이다. 그 중심에 전통의 가치를 알아보고 새로운 쓰임과 형태를 고민하는 사람들이 있다. 옛것에서 내일의 명품을 꿈꾸는 사람들이다. 가장 한국적인 것으로 세계 무대를 향한 도약을 꿈꾼다.

골든듀 헤리티지 컬렉션, 일상에 스며든 한국의 미

사군자 ‘난초’ 반지. 임페리얼 토파즈 페어컷 1.78캐럿(왼쪽), 아쿠아마린 페어컷 1.86캐럿(오른쪽)을 메인 보석으로 난초의 향기가 은은하게 퍼지는 순간을 표현했다 / 출처. 골든듀
사군자 ‘난초’ 반지. 임페리얼 토파즈 페어컷 1.78캐럿(왼쪽), 아쿠아마린 페어컷 1.86캐럿(오른쪽)을 메인 보석으로 난초의 향기가 은은하게 퍼지는 순간을 표현했다 / 출처. 골든듀
[좌] 알파와 히읗을 잇는 이슬 목걸이. 그리스 문자의 첫자 알파(α)부터 한글의 마지막 자음 히읗(ㅎ)을 잇는 이슬방울 패턴으로 풀 미러 폴리싱 기법으로 제작되어 거울처럼 빛나는 금속표면의 반짝임이 특징이다.  [우] 연화단청 반지. (왼쪽 위부터)그린 투어멀린 2.76캐럿, 핑크 투어멀린 6.76캐럿, 핑크 투어멀린 2.52캐럿으로 단청의 오방색을 재해석해 유색보석과 다이아몬드로 실제 꽃이 피어나는 듯한 생동감을 구현했다. / 출처. 골든듀
[좌] 알파와 히읗을 잇는 이슬 목걸이. 그리스 문자의 첫자 알파(α)부터 한글의 마지막 자음 히읗(ㅎ)을 잇는 이슬방울 패턴으로 풀 미러 폴리싱 기법으로 제작되어 거울처럼 빛나는 금속표면의 반짝임이 특징이다. [우] 연화단청 반지. (왼쪽 위부터)그린 투어멀린 2.76캐럿, 핑크 투어멀린 6.76캐럿, 핑크 투어멀린 2.52캐럿으로 단청의 오방색을 재해석해 유색보석과 다이아몬드로 실제 꽃이 피어나는 듯한 생동감을 구현했다. / 출처. 골든듀
대표주자 중 하나가1989년 탄생한 국내 대표 파인 주얼리 브랜드 골든듀(대표 이필성)다. 골든듀는 2024년 창립 35주년을 맞아 선보인 헤리티지 컬렉션으로 그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궁궐의 처마와 한복의 색동을 주얼리 디자인 소재로 삼았다. 이뿐 아니다. 한글이 지닌 조형미를 주얼리 구조 속에 녹여내는가 하면, 사군자와 조선시대 민화 속 문자도나 문살 패턴 등을 화려한 유색 보석과 정교한 금속 라인으로 재탄생시켰다. 헤리티지 컬렉션은 수십 년 경력을 지닌 장인들의 세공 기술을 바탕으로 단 한 점씩만 제작되는 ‘리미티드 에디션’으로 선보여 희소성과 하이엔드적 가치를 더했다.

골든듀 헤리티지 컬렉션의 탄생은 국내 주얼리 업계에서 상징적인 이정표다. 이필성 대표의 주도 아래 규모 있는 브랜드가 한국적 디자인에 대한 탐구를 지속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소규모 사업체가 대다수인 국내 주얼리 시장에서 골든듀의 이러한 행보는 관심의 축을 서구적 미감에서 한국적 모티브로 옮기는 계기가 되고 있다. 제작 역량과 유통망을 바탕으로 전통의 현대화를 더 넓은 소비자층에 소개하고, 해외 소비자에게는 우리의 색과 문양, 그 안에 담긴 이야기를 전한다. 한국의 전통이 오늘의 주얼리 시장에서 새로운 경쟁력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 것은 주목할 만한 성취다.

가원공방, 옥에 새긴 전통과 현대의 감각

백옥 가락지. 은은한 색과 정갈한 곡선이 돋보인다 /사진 출처. 가원공방
백옥 가락지. 은은한 색과 정갈한 곡선이 돋보인다 /사진 출처. 가원공방
[좌] 금파 풍잠(망건 앞에 달던 선비의 머리 장식), V&A박물관 소장품. 학과 소나무를 표현한 송학문 조각은 장수와 길상을 의미한다. [우] 옥 관자(망건 양 옆에 달아 끈을 조이던 선비의 머리 장식), V&A박물관 소장품. 멋과 함께 착용자의 지위와 품계를 드러내던 장식이다 / 출처. 가원공방
[좌] 금파 풍잠(망건 앞에 달던 선비의 머리 장식), V&A박물관 소장품. 학과 소나무를 표현한 송학문 조각은 장수와 길상을 의미한다. [우] 옥 관자(망건 양 옆에 달아 끈을 조이던 선비의 머리 장식), V&A박물관 소장품. 멋과 함께 착용자의 지위와 품계를 드러내던 장식이다 / 출처. 가원공방
[좌] 앞꽂이, 엄익평 作 머리 앞 중앙과 좌우 양쪽에 꽂는 전통 장신구다  [우] 옥새, 엄익평 作 옥으로 만든 인장으로 왕의 권위와 정통성을 상징했다. / 출처. 가원공방
[좌] 앞꽂이, 엄익평 作 머리 앞 중앙과 좌우 양쪽에 꽂는 전통 장신구다 [우] 옥새, 엄익평 作 옥으로 만든 인장으로 왕의 권위와 정통성을 상징했다. / 출처. 가원공방
서울 종로의 가원공방은 옥의 전통과 현재가 공존하는 곳이다. 곱게 빚은 백옥 반지 한 점에는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그만의 우아하고 정갈한 기품이 스며 있다. 가원공방의 중심에는 서울시 무형유산 옥장(玉匠) 보유자 엄익평이 있다. 영국 빅토리아앤드앨버트(V&A) 박물관이 작품 다섯 점을 소장한 옥장이다. 1974년 옥공예에 입문해 반세기 넘게 옥을 깎고 다듬어온 그는 1999년 문을 연 가원공방에서 전통의 미감을 이어왔다. 옥을 중심으로 한 기물과 장신구 외에도 우리 조상이 선호했던 호박, 금파(황금색을 띠는 맑고 투명한 호박), 밀화(반투명과 불투명한 호박), 산호, 라피스라줄리 등을 활용한 작품을 볼 수 있다.
[좌] 물결 컬렉션, 엄가원 作 단단한 천연옥에 유연한 움직임을 담았다.  [우] 비움 컬렉션, 엄가원 作 천연옥, 블랙 투어마린, 18K로 제작한 시리즈로 옥의 내부를 비워냈다. / 출처. 가원공방
[좌] 물결 컬렉션, 엄가원 作 단단한 천연옥에 유연한 움직임을 담았다. [우] 비움 컬렉션, 엄가원 作 천연옥, 블랙 투어마린, 18K로 제작한 시리즈로 옥의 내부를 비워냈다. / 출처. 가원공방
엄익평 옥장을 이어 옥장 이수자인 딸 엄가원 작가가 전통의 깊이 위에 현대적인 감각을 가미한 옥 주얼리를 선보이며 새로운 명맥을 확장하고 있다. 가원공방이 전통을 오늘에 연결하는 방식은 착용하는 사람의 생활을 살피는 데서 두드러진다. 옥가락지 옆면 두께를 조정해 손가락 사이의 불편함을 줄이고, 노리개는 한복뿐 아니라 현대적인 의상에도 어울리도록 작은 크기로도 제작한다. 옥비녀와 브로치 역시 소재의 고유한 빛과 질감은 살리되, 형태와 쓰임은 지금의 생활에 맞게 다듬었다. 형태와 크기의 작은 변화가 특별한 날에만 꺼내 들던 패물을 평소에도 손이 가는 주얼리로 바꾸었다. 가원공방은 옥을 통해 전통의 계승이 무엇인지 보여준다.

더단장, 오늘의 주얼리로 잇는 선조의 낭만

페기 구가 옥반지를 착용한 모습 / 출처. 더단장
페기 구가 옥반지를 착용한 모습 / 출처. 더단장
[좌] 봉황 은제 디쉬, 최인숙 作 봉황을 모티브로 메인 디쉬 플레이트로 재해석한 은제 작품이다.  [우] 은제 구절판, 최인숙 作 전통 공예의 아름다움과 실용적 가치를 함께 표현한 은제 작품이다. / 출처. 더단장
[좌] 봉황 은제 디쉬, 최인숙 作 봉황을 모티브로 메인 디쉬 플레이트로 재해석한 은제 작품이다. [우] 은제 구절판, 최인숙 作 전통 공예의 아름다움과 실용적 가치를 함께 표현한 은제 작품이다. / 출처. 더단장
선조들이 몸을 단장하던 옛 장신구의 멋을 오늘로 옮겨온 브랜드도 있다. ‘전통을 일상으로’라는 슬로건을 내세운 더단장이다. 더단장의 바탕에는 경대와 함 같은 은제 기물 대공 작품과 전통 장신구 그리고 사극 소품을 40년 넘게 제작해 온 금속 공예 대가, 최인숙 작가가 있다. 어머니 최인숙 작가의 작업실 겸 갤러리를 놀이터 삼아 자란 아들 류기국 대표는 2018년 더단장을 설립해, 전통의 미감에 자신의 세대가 즐길 수 있는 디자인을 더하고 있다.
[위부터] 패랭이꽃 금부 반지, 모란문 투각 금부 반지, 비취 가락지, 옥 가락지 / 출처. 더단장
[위부터] 패랭이꽃 금부 반지, 모란문 투각 금부 반지, 비취 가락지, 옥 가락지 / 출처. 더단장
[좌] 비취와 은으로 만든 펜던트, 목걸이 펜던트 겸 노리개의 주제 장식으로도 사용할 수 있다.  [우] 나비 비취 노리개, 장수와 복을 기원하는 수복 펜던트에 낙지발 술을 엮었다. / 출처. 더단장
[좌] 비취와 은으로 만든 펜던트, 목걸이 펜던트 겸 노리개의 주제 장식으로도 사용할 수 있다. [우] 나비 비취 노리개, 장수와 복을 기원하는 수복 펜던트에 낙지발 술을 엮었다. / 출처. 더단장
패랭이꽃과 모란 문양을 투각과 24K 금부 기법으로 표현한 은반지, 비취와 산호를 조합해 구조를 새롭게 풀어낸 가락지가 더단장의 대표작이다. 목걸이 펜던트를 노리개의 중심 장식인 주체로 사용할 수 있는 디자인도 눈길을 끈다. 한복에 달던 장식을 셔츠나 니트에 곁들이면서 착용의 경계를 넓혔다. 전통 장신구의 쓰임과 꾸밈을 넘어, 취향을 표현하는 지금의 주얼리로 변신한 것이다. 더단장은 한국적 아름다움을 세상에 새기고자 했던 어머니의 꿈과 열정을 이은 30대 아들의 패기와 감각이 더해져, 선조의 낭만을 오늘의 옷차림에 연결하고 있다.

김인자 칠보연구소, 불과 색으로 빚은 주얼리

[좌] 브로치, 김인자 作 은, 칠보, 다이아몬드. 한국의 전통 춤인 장삼을 살짝 들어올린 승무의 춤사위를 조형화했다.  [우] 브로치, 김인자 作 은, 칠보, 가넷. 한국 전통 춤사위를 모티브로 만든 작품이다. / 출처. 김인자 칠보연구소
[좌] 브로치, 김인자 作 은, 칠보, 다이아몬드. 한국의 전통 춤인 장삼을 살짝 들어올린 승무의 춤사위를 조형화했다. [우] 브로치, 김인자 作 은, 칠보, 가넷. 한국 전통 춤사위를 모티브로 만든 작품이다. / 출처. 김인자 칠보연구소
칠보(七寶)는 ‘일곱 가지 보물’이라는 뜻이다. 금속 위에 유리질 유약을 올리고, 고온에서 구워낸 색과 광택이 일곱 보물처럼 아름답다고 하여 붙은 이름이다. ‘칠보’라는 이름이 낯설어도 해외 주얼리에서 만나는 ‘에나멜(Enamel)’이라고 하면 한결 익숙할지 모른다. 칠보는 우리 전통 공예의 한 기법이면서 해외에서도 ‘에나멜’이란 이름으로 오랫동안 사용되었다. 김인자 작가는 37년이 넘는 내공을 바탕으로 칠보 작품을 선보여왔다. 전통의 틀에 머물지 않고 금속 밑판과 투박한 테두리의 경계를 허물고 오직 불과 색의 겹침만으로 작품을 빚어내고 있다.
[좌] 나비 목걸이와 귀걸이 세트, 김인자 作 얇은 은판 위에 칠보 유약을 올려 소성한 후 보석을 세팅한 상품이다.  [우] 마고자 브로치, 김인자 作 마고자 단추를 모티브로 만든 상품이다. / 출처. 김인자 칠보연구소
[좌] 나비 목걸이와 귀걸이 세트, 김인자 作 얇은 은판 위에 칠보 유약을 올려 소성한 후 보석을 세팅한 상품이다. [우] 마고자 브로치, 김인자 作 마고자 단추를 모티브로 만든 상품이다. / 출처. 김인자 칠보연구소
김 작가의 작은 나비 목걸이와 귀걸이 세트는 종이처럼 얇은 두께 0.1㎜의 은판을 직접 가위로 오려 형태를 만들고, 칠보 유약을 올려 구운 뒤 큐빅을 세팅했다. 얇은 금속 바탕에 맑은 색을 입혀 나비의 가벼운 인상을 살렸다. 한복의 마고자 단추를 모티브로 한 브로치는 동판을 눌러 성형하고 유약을 올려 고온에서 여러 차례 구워낸 작품이다. 옛 복식의 장식이 오늘의 옷깃을 꾸미는 주얼리로 이어진다. 김인자 작가의 주얼리는 칠보가 보여줄 수 있는 정점의 아름다움을 구현한다. 불 속에서 완성된 보석 같은 색이 목걸이와 브로치가 되어 칠보를 일상에서 만날 수 있는 통로가 된다.

옛것이라는 이유만으로 명품이 되진 않는다. 고유함에 정교한 기술과 디자인, 시간이 지나도 손이 가는 매력이 더해져야 한다. 궁궐의 선과 색동의 빛깔, 우아하고 정갈한 옥, 낭만적인 옛 장신구, 불 속에서 완성되는 칠보의 색. 우리의 옛것에는 오늘도 빛을 발하는 가치가 숨어 있다. 이를 찾아내고 되살리는 사람들은 전통이 비주류로 치부되고 관심에서 멀어졌을 때도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왔다. 무엇을 지키고 어떻게 바꿀 것인지 고민하며 견뎌온 시간과 그 속에서 깊어진 안목이 오늘의 주얼리에 담겨 있다. K-주얼리의 새로운 가능성이 그들의 손끝에서 열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