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아메리칸 드림' 공연 장면. 파르코 제공
연극 '아메리칸 드림' 공연 장면. 파르코 제공
연극과 TV 드라마, 영화를 종횡무진하며 입지를 다져온 일본 대표 극작가이자 연출 미타니 코키(65). 그가 권력 앞에 선 예술가들의 고뇌를 그린 연극 '아메리칸 드림'으로 한국 관객을 만난다. 사상 검증이 휩쓰는 할리우드에서 밀고를 강요받는 영화인들의 이야기다.

이 작품을 쓰고 연출한 미타니 코키는 최근 한국경제 아르떼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어릴 때부터 화려한 이미지의 할리우드를 동경했는데, 대학생이 돼서야 그 이면에 '적색 사냥'이라는 어려운 시대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며 "영화와 연극을 모두 만드는 제가 당시 영화인들의 삶을 그리는 것은 사명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아메리칸 드림'은 냉전이 본격화된 1940년대 후반 미국을 배경으로 한다. 반공주의 광풍이 불면서 영화인들은 공산주의자로 지목되는 순간 영화계에서 사실상 영구적으로 퇴출당했다.

연극 무대의 배경은 호텔 객실로 네 명의 영화인이 공산주의 활동에 연루됐는지 조사위원들에게 추궁받는다. 동료를 밀고하면 영화 일을 계속할 수 있지만, 입을 다물면 일터에서 쫓겨날지 모르는 상황이다.

연극은 인물들의 심리를 드러내는 숨 막히는 밀실 극 형태로 연출됐다. 미타니 코키는 "내가 만드는 연극은 대부분 대사 중심의 연극으로, 시간과 공간이 제한된 사실주의적 연출을 기본으로 한다"며 "제한된 장소와 시간, 이야기로 그 시대 자체를 그려 내는 것이 역사극을 만들 때 '나의 이상'"이라고 말했다.
연극 '아메리칸 드림' 공연 장면. 파르코 제공
연극 '아메리칸 드림' 공연 장면. 파르코 제공
권력의 반대편에 있는 예술가를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 한국에서 수차례 공연된 그의 연극 '웃음의 대학'과 닮았다. '웃음의 대학'은 1940년 전시 상황이라는 이유로 웃음을 주는 연극을 없애버리려는 검열관과 웃음에 사활을 건 극작가가 벌이는 해프닝을 담고 있다.

미타니 코키는 두 작품의 인물 성격은 다르다고 설명했다. 그는 "'웃음의 대학'에 등장하는 극작가는 나의 이상이자 어떤 의미에서는 신에게 선택받은 천재"라며 "그런 점에서 '웃음의 대학'은 일종의 판타지"라고 말했다.

그러나 '아메리칸 드림'에 등장하는 영화인들은 평범한 사람들이라고 한다. 그는 "방식은 달라도 각자 필사적으로 살아가려고 애쓰며 '선택받은 천재'는 단 한 명도 없다"며 "'아메리칸 드림'은 현실적이고 보편적인 이야기"라고 했다.

희극을 주로 써온 그에게 웃음은 어떤 의미일까. 그는 30대 슬럼프에 빠져 아무것도 쓰지 못했을 때 '미스터 빈'을 보며 용기와 자신감을 되찾았다고 했다. 그는 "고통받는 사람들을 웃음으로 구하고 싶다"며 "'희극'에는 그만한 힘이 있다고 믿는다"고 강조했다.

이번 작품은 관객을 웃겨야 한다는 의무감에서 벗어나 보려는 시도이기도 했다. 그는 "늘 희극을 만들다 보면 가끔은 웃음이 없는 작품도 써보고 싶어진다"고 했다. 다만 그는 이번 작품서도 웃음을 배제하는 것은 불가능했다고 털어놨다. 그러면서 "여러분, 안심하세요. 이 작품은 후반부로 갈수록 웃음으로 가득합니다"라고 했다.

'아메리칸 드림' 공연은 지난 8월 일본 도쿄를 시작으로 교토, 삿포로, 오사카 등 일본 7개 도시 순회를 거쳐 서울에서 막을 내린다. 내한 공연에선 미타니 코키가 직접 연출한 무대와 일본 초연 배우들의 연기를 한국어 자막과 함께 원어 그대로 선보인다. 일본 연극에서 입지를 쌓아온 코히타나 후미요, 아사노 카즈유키, 야마자키 하지메 등이 캐스팅됐다.
파르코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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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타니 코키는 일본이나 미국뿐만 아니라 한국 관객들도 작품에 충분히 공감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는 "이 작품은 어느 나라 관객이 보더라도 그 안에 현재의 자신을 투영할 수 있는 보편적 내용을 담았다"며 "한국 관객도 이것이 먼 나라의 먼 옛날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주변에서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느껴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공연은 이달 30일부터 11월 1일까지 서울 코엑스아티움 우리은행홀에서.

최한종 기자 onebel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