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조예은이 서울 중림동 한국경제신문사에서 본지와 인터뷰하고 있다. 이솔 기자
소설가 조예은이 서울 중림동 한국경제신문사에서 본지와 인터뷰하고 있다. 이솔 기자
피가 철철 흐르는데도 어쩐지 산뜻한 세계. 소설가 조예은(33)은 섬뜩한 상상력과 경쾌한 문체를 결합한 ‘조예은 월드’로 독자들을 사로잡아 왔다. 그가 이번엔 외계인을 믿는 종교 집단을 그린 장편소설 <녹색 절벽의 신자들>로 돌아왔다.

조예은은 최근 한국경제 아르떼와의 인터뷰에서 “‘믿음’에 관한 이야기를 써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소설 속 종교 집단은 외계인이 지구로 돌아와 인간을 멸종시킬 것이라고 믿는다. 그때 '안전한 우주'로 건너가려면 흔들림 없는 믿음과 끊임없는 수련이 필요하다는 게 이들의 교리다.

그런데 '사이비 종교'에 들어온 인물들의 믿음은 고정돼 있지 않다. 교리를 맹신하던 인물이 의심을 품는가 하면, 처음엔 시큰둥하던 인물이 광신도로 변해가기도 한다. 책을 읽으면서 독자도 비슷한 경험을 하게 된다. 환상과 현실이 끊임없이 뒤섞여 책을 덮은 뒤에도 무엇이 진실이었는지 선뜻 단정하기 어렵다.

조예은이 이런 이야기를 구상한 것은 마음이 바뀌는 주변 사람의 모습을 지켜보면서다. 종교와 거리를 두던 사람이 어떤 사건을 겪은 뒤 신앙에 몰두하는 것을 본 것. 그는 "믿음이 있어서 믿는다기보다, 내가 어느 날 믿기로 했기 때문에 믿어지는 것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래서 사실을 고정된 형태로 그리지 않았다. 하나의 사건이나 형태도 바라보는 위치에 따라 다르게 보일 수 있다는 생각이 스며 있다. 그는 "눈앞에 놓인 물병 하나도 보는 위치에 따라 모양이 달라진다"고 했다. 그러면서 “서로 다르게 본다고 해서 누군가가 틀린 것은 아니다"며 "서로 다른 모습들이 전부 모여서 하나의 전체가 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소설가 조예은이 서울 중림동 한국경제신문사에서 본지와 인터뷰하고 있다. 이솔 기자
소설가 조예은이 서울 중림동 한국경제신문사에서 본지와 인터뷰하고 있다. 이솔 기자
작품은 독자에게 마치 퍼즐을 조립하는 듯한 쾌감을 준다. 서로 다른 이야기처럼 보이던 1부와 2부가 뒤에서 맞물리고, 앞에서 스쳐 지나간 장면을 뒤에서 다시 발견할 때는 그 의미도 달라져 있다. 조예은은 “앞부분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툭 던져놓은 대사나 장면, 설정이 뒤에서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맞물리고, 결국 하나로 모이게 하고 싶었다”고 했다.

퍼즐을 맞춰 완성한 그림은 독자마다 다를 수 있다. 조예은이 작품의 의미와 결말을 하나로 못 박지 않았기 때문이다. “소설이 계속 ‘무엇을 믿을 것인가’, ‘진실이 무엇인가’를 이야기하잖아요. 그렇다면 독자 역시 소설 속 단서들을 각자의 방식으로 받아들이고, 자기만의 이야기를 완성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대학에서 금속공예를 전공한 그는 문장을 쓰는 일이 공예와 닮았다고 했다. 금속에 광이 날 때까지 사포질을 거듭하듯 문장도 끊임없이 다듬어야 한다. 다만 문학에는 그렇게 빚어낸 작품을 여러 사람에게 동시에 보낼 수 있다는 매력이 있다. 한 명만 가질 수 있는 공예품과 가장 큰 차별점. 조예은은 이 매력에 끌려 소설가가 됐다.

지금은 판타지적 요소가 없는 스릴러를 구상 중이다. “제 소설에는 인간이 아닌 존재나 비현실적인 요소가 많이 등장했는데, 그런 게 없는 이야기도 써보고 싶어요. 조금 이상하고도 강렬한 여성들이 우왕좌왕하는 추리 드라마가 될 것 같습니다.”

최한종 기자/사진=이솔 기자 onebel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