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항 분당서울대병원 교수가 대동맥 질환 환자에게 스텐트 삽입 시술을 하고 있다. /분당서울대병원 제공
이재항 분당서울대병원 교수가 대동맥 질환 환자에게 스텐트 삽입 시술을 하고 있다. /분당서울대병원 제공
“다시 살라고 해도 의사를 할 것입니다. 흉부외과를 맡아 대동맥 의사를 할 겁니다.”

이재항 분당서울대병원 심장혈관흉부외과 교수(사진)는 9일 인터뷰에서 의사로서의 소명을 이렇게 표현했다. 대동맥 수술은 5~10분만 늦어도 생사가 갈릴 만큼 응급 상황이 자주 발생한다. 최근 그가 출연한 병원 유튜브 영상에는 ‘엄마를 살려주신 은인’, ‘교수님께 수술받고 다시 태어났다’ 등 감사 댓글이 줄을 잇는다. 대동맥 의사를 천직으로 여긴다는 이 교수는 “생사의 갈림길에 있던 환자가 후유증 없이 걸어서 퇴원하는 게 가장 큰 보람”이라고 했다.

◇“못 살릴 환자 살리는 역할”

생사 가르는 대동맥 수술…'맞춤형 스텐트'로 치료 새길 열어
대동맥은 심장에서 나온 혈액을 온몸으로 보내는 가장 굵은 혈관이다. 혈관 벽이 찢어지는 대동맥박리, 혈관이 부풀어 오르는 대동맥류의 파열 등으로 짧은 시간 안에 생명을 잃을 위험이 있다. 이 교수는 대동맥 수술 분야에서 국내 최고 전문가로 꼽힌다. 분당서울대병원에선 매주 개흉수술과 스텐트 시술을 병행한다. 금요일 하루에만 4~5건의 스텐트 시술을 할 때도 있다. 전체 대동맥 수술의 20~30%인 응급수술도 연간 80~100건 정도 한다.

그가 대동맥 의사의 길을 택한 이유는 ‘가장 위급한 환자를 살리고 싶어서’였다. 고려대 의대를 졸업한 뒤 인턴을 마치고 심장 수술을 더 많이 배우기 위해 서울대병원 흉부외과 문을 두드렸다. 누가 권해서 택한 길이 아니다. 처우에도 관심이 없었다. 연고도 없는 서울대병원 흉부외과 의국 연락처를 114에 전화해 알아낸 뒤 무턱대고 지원 의사를 밝혔다. 그는 “이 사람을 내가 못 살리면 누구도 못 살린다는 분야를 하고 싶었다”고 회상했다.

분당서울대병원은 2003년 심혈관센터를 연 후 23년 만인 지난 2월 응급 대동맥 수술 1000건을 달성했다. 365일, 24시간 초응급환자를 받아온 결과다. 이 교수는 수치보다 역할을 강조했다. 그는 “진정한 대동맥센터는 쉬운 환자를 전국에서 끌어오는 곳이 아니다”며 “지역 병원에서 해결하기 어려운 고난도 환자를 받아 치료한 뒤 다시 지역으로 돌려보내는 곳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맞춤형 스텐트’ 국내 첫 도입

이 교수가 최근 가장 집중하는 분야는 고난도 대동맥 스텐트 시술(인조혈관 삽입술)이다. 환자마다 다른 혈관 모양에 맞춰 의사가 스텐트를 직접 가공해 넣는 일종의 ‘맞춤형 스텐트’다. 기성복이 아니라 맞춤옷을 직접 재단해 입히는 것과 비슷하다. 혈관 위치를 정확히 계산해야 하고 숙련도가 중요한 고난도 시술이다. 이 교수는 2022년 미국 로스앤젤레스 서던캘리포니아대(USC)병원에서 1년간 연수하며 ‘PMEG(의사 변형 스텐트그라프트)’ 기법을 배웠다.

일반적인 스텐트 시술은 약해진 대동맥 안쪽을 인조혈관으로 덮어 터지는 것을 막는다. 문제는 혈관이 나뉘어 갈라지는 부위에 이상이 생겼을 때다. 이곳을 그대로 스텐트 시술하면 장기로 가는 혈류를 막을 수 있다. PMEG는 스텐트그라프트에 미리 작은 구멍을 내 주요 혈관으로 피가 계속 흐를 수 있도록 하는 기술이다. 컴퓨터단층촬영(CT) 영상으로 콩팥이나 장으로 가는 혈관의 위치를 정확하게 측정한 뒤 그 자리에 맞춰 스텐트를 제작한다. 문제 있는 대동맥은 막아주면서 필요한 혈관은 살려두는 방식이다.

환자 맞춤형 스텐트는 공장에서 제작할 수도 있지만 시간이 오래 걸려 응급환자에게 사용하기 힘들다. PMEG는 기존 스텐트그라프트를 환자 혈관에 맞춰 변형할 수 있어 수술 위험이 큰 복잡 대동맥류 환자에게 새로운 선택지가 된다.

이 교수가 배워온 신기술이지만 국내에 도입하는 건 쉽지 않았다. 미국에서 쓰던 제품과 국내에서 사용할 수 있는 제품이 달랐기 때문이다. 귀국 후 1년 넘게 국내 환경에 맞게 시술법을 준비했다. 첫 환자는 가슴을 여는 수술을 견디기 어려울 정도로 상태가 나빴다. 그는 “당시엔 이 시술 말고는 방법이 없었고 국내에서 이를 할 수 있는 의사도 저밖에 없었다”고 했다. 환자는 치료 후 지금까지 외래 진료를 받고 있다.

◇칼 잘 쓰는 의사서 ‘치료 설계자’로

대동맥 치료는 최근 20년 새 크게 달라졌다. 이 교수가 전공의이던 2000년대 중반 8~12시간 걸리던 수술 시간이 지금은 3~6시간으로 줄었다. 그는 “과거에는 대동맥박리 수술 사망률을 15% 정도로 이야기했는데, 최근엔 우리 병원에서 5% 미만일 정도로 낮아졌다”고 했다.

외과 의사의 역할도 변했다. 예전엔 잘 자르고 잘 꿰매는 기술이 핵심이었다면 지금은 수술, 스텐트, 약물치료 가운데 환자에게 가장 적합한 방법을 고르는 능력이 더 중요하다. 이 교수는 개흉수술과 스텐트 시술을 모두 직접 한다. 그는 “젊은 환자라면 오래 버틸 수 있는 수술을 해야 하고, 나이가 많고 몸이 약하면 어떻게든 덜 고생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며 “수술과 스텐트를 섞은 하이브리드 치료도 있다”고 설명했다.

환자가 진료실에 들어오는 순간부터 이 교수의 치료 판단은 시작된다. 걸어서 들어오는지, 휠체어를 타는지, 대화를 얼마나 명료하게 하는지까지 살핀다. 그는 “한 의사가 수술도 알고 스텐트도 알고 약도 알아야 환자에게 가장 좋은 선택을 해줄 수 있다”며 “치료법부터 설계하는 것이 현재 대동맥 외과의의 역할”이라고 했다.

◇“심장뿐 아니라 마음까지 치료해야”

수술을 많이 한다고 해서 긴장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한 달에 한두 번 접하는 고난도 수술을 앞두고 발생할 수 있는 상황을 수십 가지로 나눠 머릿속으로 그려본다. 수술 직전 5분가량 손을 씻는 시간은 마지막으로 수술 과정을 정리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는 대동맥 수술을 ‘오케스트라’에 비유한다. 마취과 의사와 수술실 간호사, 체외순환사, 중환자실 의료진 중 누구 하나와 호흡이 맞지 않아도 좋은 결과를 내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 교수는 “내가 하는 역할은 전체의 절반이 안 된다고 생각한다”며 “수술팀 전체가 잘 돌아가야 환자가 살아서 나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에게 ‘명의’의 조건을 물었다. 그는 손사래부터 쳤다. “저는 명의가 아니라 명의가 되려고 노력하는 사람입니다. 잘 자르고 잘 꿰매는 것은 의사에게 기본입니다. 환자가 남은 삶을 병 걱정 없이 살게 해주는 것, 환자와 눈을 맞추고 손을 잡아주며 심장뿐 아니라 마음까지 같이 고쳐주는 사람이 진짜 명의 아닐까요.”

■ 약력

△2004년 고려대 의학과
△2010년 고려대 의학과 흉부 외과학 석사
△2011~2018년 동국대일산병원 심장혈관흉부외과 조교수·부교수
△2018년 고려대 의학과 흉부 외과학 박사
△2018~ 2023년 분당서울대병원 심장혈관흉부외과 부교수
△2023년~ 분당서울대병원 심장혈관흉부외과 교수


은정진 기자 silv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