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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마을] 왕관을 쓴 모든 악인들보다 정직한 사람 한 명이 더 필요
김동욱의 고전 읽기
상식
토머스 페인 지음 / 남경태 옮김
효형출판 / 140쪽│8500원
英서 미국 이민 온 토머스 페인
美 독립 주장한 47쪽짜리 책서
군주제 비난하며 공화정 옹호
상식
토머스 페인 지음 / 남경태 옮김
효형출판 / 140쪽│8500원
英서 미국 이민 온 토머스 페인
美 독립 주장한 47쪽짜리 책서
군주제 비난하며 공화정 옹호
파격적인 주제를 명료하고 신랄한 문체로 쓴 책의 저자는 1774년 말 영국에서 펜실베이니아로 이민해 온 39세의 언론인 토머스 페인(그림)이었다. 페인은 미국에 온 지 13개월 만에 <상식>을 발간하며 역사를 바꿨다. “이제부터 나는 오로지 단순한 사실, 명백한 논거, 평범한 상식만을 제시할 것”이라는 말에서 저널리스트로서 페인의 자신감을 읽을 수 있다.
책의 초판은 47쪽의 얇은 분량에 불과했고, 가격도 2실링으로 저렴했다. 반향은 대단했다. 출간 첫해에만 15만 부가 아메리카 대륙에 배포된 것으로 추산된다. 이 소책자는 미국의 독립을 관망하던 이들에게 독립을 지지할 냉철하고 논리적인 논거를 제시했다.
책의 주장은 신대륙의 정치 지형을 뒤흔들었다. 영국 식민지로서 ‘개선’과 ‘개혁’, ‘타협’이 아닌 미국의 독립은 ‘상식’이 됐다. 개인의 권리에 대한 헌신, 권리 침해에 대한 정당한 분노, 신음하는 약자를 위한 정의와 같은 시대정신이 소책자에 오롯이 담겼다.
<상식>은 크게 네 부분으로 나뉜다. 첫 번째 파트는 정부 일반의 기원과 취지, 그리고 영국 제도에 관해 간략하게 고찰한다. 두 번째 파트는 군주제와 권력 세습 문제를 다룬다. 세 번째 파트에선 아메리카의 현 상황을 고찰하고 마지막 네 번째 파트에선 아메리카의 상황을 둘러싼 복합적인 고려 사항을 다룬다.
그는 첫 장부터 “사회는 어떤 것이라도 축복이지만, 정부는 최고의 것이라도 필요악일 따름이다”고 단언했다. 곧이어 “최악은 참을 수 없는 정부”라며 “정부에 의해 괴롭힘을 당하거나 고통을 겪을 경우 차라리 정부가 없는 나라가 더 낫다고 생각한다”고 열변을 토했다.
이어서 그는 영국의 왕정이 본질적으로 미국과 공존할 수 없다는 점을 부각했다. 페인은 정부의 기원을 논하면서 널리 칭송받아온 영국 헌법, 특히 세습 군주제의 문제점을 증명했다. 그에게 있어서 영국 헌법은 허구이며 군주제는 모든 악의 근원이었다. 왕과 신하가 자연적·정치적으로 구분된 정당한 근거는 도저히 찾을 수 없었다.
페인이 더욱 문제시한 것은 ‘세습’이었다. 그는 “설령 한 개인은 다른 사람들에 비해 상당히 높은 지위를 누릴 수 있을지 몰라도 그의 후손들까지 지위를 물려받을 자격을 가질지는 미지수”며 “현명한 사람은 늘 세습적 권리를 경멸했다”고 강조했다. 왕위를 세습하는 것의 불합리성을 두고선 “사자의 탈을 쓴 당나귀가 왕위에 오르는 우스꽝스러운 사태”에 비유했다.
페인은 북미의 영국 식민지 주민들을 독립적이고 완전한 국가로 묘사할 용기를 낸 최초의 인물이기도 했다. 그는 식민지의 경제적 번영과 영국과의 관계는 별개라고 여겼다. 페인은 “아메리카의 이익은 영국에서 분리되는 것”이라며 “영국에서 우리가 얻을 것이라곤 파멸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상식>이 출간된 후에도 미국 독립 선언이 공식적으로 발표되기까지는 6개월이 더 걸렸다. 여전히 영국과의 화해를 믿는 왕당파의 세력도 만만치 않았다. 하지만 책은 오랫동안 막혀 있던 금기를 깼다. 균열이 생긴 이후로는 사람들이 자신의 견해를 밝히기 시작했다. 결과적으로 페인이 펴낸 소책자가 아메리카 식민지의 항로를 180도 틀었다. 그리고 새롭게 탄생한 미국은 세계의 운명마저 뒤바꿨다.
김동욱 논설위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