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음악의 관습을 깨부순 세 음악가
쿠렌치스와 코파친스카야, 사이 등 내한
음악 뿐 아니라 연기, 작곡 실력도 갖춰
파격과 파괴 사이를 넘나드는 독창적 해석으로 클래식 음악계의 이단아라 불리는 세계적인 아티스트들이 올가을 한국 무대에 선다. 논란의 중심에 있는 지휘자 테오도르 쿠렌치스와 장르의 경계를 허무는 괴짜 피아니스트 파질 사이, 맨발의 바이올리니스트 파트리샤 코파친스카야가 그 주인공이다.
지휘자 테오도르 쿠렌치스./(c)Nadia Romanova
그리스 출신의 지휘자 테오도르 쿠렌치스(54)는 다음 달 17일과 18일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자신이 창단한 '유토피아 오케스트라'와 함께 첫 내한 공연을 펼친다. 쿠렌치스는 폭발적 템포로 악단을 지휘하며 클래식 음악의 관습적 해석을 깨부수는 음악가다. 20여 년 전 스스로를 '클래식 음악의 구원자'라 칭했지만, 작곡가의 의도를 왜곡한다는 일각의 비판에선 여전히 자유롭지 않다.
그는 최근 서면 인터뷰를 통해 자신의 음악관을 분명히 밝혔다. "클래식 음악을 절제되고 감정 없이 연주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보수적인 애호가들의 반발을 자주 경험한다"고 운을 뗀 쿠렌치스는 "하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베토벤과 베를리오즈, 말러의 음악을 보십시오. 그들의 음악은 감정이 넘쳐흐르는 화산과 같다"고 강조했다. 이어 "연주자가 자신의 온 영혼과 감정을 담아 그 음악을 표현할 때 관객도 함께 빠져들게 된다"며 "바로 그 지점에서 클래식 음악이 새로운 관객에게 다가갈 가능성이 생긴다"고 했다.
쿠렌치스는 작곡과 조향에도 깊은 관심을 두고 있다. 조만간 시집도 출간할 예정이다. 지난달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은사자상(감독상)을 수상한 영화 '다우(DAU)'에선 실존 인물인 소련의 천재 물리학자 레프 란다우 역을 맡아 주인공으로 스크린에 얼굴을 비추기도 했다. 다방면에서 예술적 감각을 발휘하고 있지만, 러시아 국적을 취득한 그가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않은 점은 윤리적 논쟁거리로 남았다.
쿠렌치스는 이번 내한 무대에서 쇼스타코비치의 바이올린 협주곡 1번과 피아노 협주곡 2번,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 말러 교향곡 1번을 이틀에 걸쳐 선보일 예정이다. 협연자로는 바이올리니스트 다니엘 로자코비치, 피아니스트 알렉산더 멜니코프가 나선다.
쿠렌치스는 "유토피아 오케스트라가 작품의 음악적 재료를 어떻게 바라보고 탐구하는지, 그리고 그 안에 담긴 본질을 어떻게 드러내는지 주의 깊게 들어보시기 바란다"며 "아마 이 오케스트라가 음악을 다루는 방식에 놀라게 될 것"이라고 예고했다.
피아니스트 파질 사이./(c)Marco Borggreve
오는 17일 부천아트센터에서 리사이틀을 여는 피아니스트 파질 사이(56)도 괴짜라는 수식어와 잘 어울리는 예술가다. 그의 연주는 건반의 경계를 넘나든다. 튀르키예 출신인 그는 한 손으로 건반을 치면서 다른 한 손으로는 피아노 안의 현을 직접 뜯어 튀르키예 전통 현악기 '사즈'의 소리를 흉내낸 자작곡 '검은 대지'로 신선한 충격을 안겼다. 클래식 명곡에 재즈 선율을 입히는 등 정해진 틀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독특한 해석으로 청중을 끌어당긴다.
'제2의 글렌 굴드'라는 별명도 따라다닌다. 자신의 연주에 몰입해 허밍을 하는 모습이 닮아서다. 이번 무대에서 그는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으로 1부를 채운다. 2부는 모차르트의 피아노 소나타 11번으로 시작해 자작곡 '새로운 삶'과 '발라드', '검은 대지', '재즈 판타지' 등을 들려줄 예정이다. 그는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드레스덴 필하모닉, 보스턴 심포니 오케스트라 등의 위촉 작곡가로 활동할 만큼 작곡 분야에서도 실력을 인정받았다.
바이올리니스트 파트리샤 코파친스카야./(c)Marco Borggreve
개성파 연주자들은 서로를 알아본다. 오는 29일 서울 예술의전당 무대에 오르는 바이올리니스트 파트리샤 코파친스카야(49)는 쿠렌치스, 사이와 각각 호흡을 맞춘 아티스트다. 쿠렌치스와는 낭만적 해석 대신 날카롭고 거친 에너지를 채워넣은 차이콥스키의 바이올린 협주곡 앨범(2016년)으로 주목받았고, 사이와는 2004년 듀오를 결성해 20년 넘게 음악적 영감을 나누고 있다. 이번 내한 무대는 첼리스트 솔 가베타와 함께한다.
코파친스카야는 현이 끊어질 듯한 과감한 보잉(활 긋기)으로 극적인 음색 변화와 몰입감을 선사한다. 맨발의 연주자로도 유명하다. 단순한 퍼포먼스가 아니라, 집에 있는 것처럼 편안한 상태에서 연주에 몰입하려는 자세다. 3년 전 첫 내한 무대에서도 맨발로 당당히 무대에 올랐다.
그는 현대음악으로 바이올린 레퍼토리를 넓히는 데에도 열정적이다. 과거 코파친스카야는 한 외신 인터뷰에서 "잉크가 마르지 않은 새 작품을 연주하는 것을 좋아한다"며 "전문가라는 이들이나 엄격한 전통이 해석의 자유를 방해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번 무대에서도 바흐, 라벨부터 20세기 작곡가인 리게티와 코다이, 크세나키스까지 시대를 넘나드는 프로그램을 펼쳐낼 예정이다. 작곡 영역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그의 자작곡도 감상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