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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과 파리를 제쳤다… 세계가 종로3가에 반한 이유 [이원희의 데이터로 보는 도시와 공간]
타임아웃 여행 편집자 그레이스 비어드는 "과거 선정됐던 지역이 시간이 지나면서 더욱 멋진 곳으로 발전하기도 한다"며 2021년 3위였던 종로3가가 올해 1위로 올라섰다고 했다. 늦은 시간까지 이어지는 야외 식사 문화가 활성화되고, 독립 상점들이 늘어난데 따른 결과라는 설명이다. 타임아웃에서는 ‘종로3가’라고 표현하지만, 우리가 '핫플'로 꼽는 익선동과 서순라길이 포함됐다.
서울에서 ‘핫한 동네’는 계속 옮겨 다닌다. 젊은 사람들은 늘 자신만의 새로운 장소를 찾아 나서고, 그곳에는 예술적이고 창의적인, 소위 ‘감도 높은’ 가게들이 하나둘 생겨난다. 삼청동과 가로수길, 이태원과 연남동, 그리고 성수까지 서울에서 힙한 동네의 이름은 계속 바뀌어왔다. 10여 년 전 성수 역시 가장 창의적이고 새롭고 신선한 동네 중 하나였다. 2030세대는 공장과 창고 사이 아직 알려지지 않은 공간을 찾아다녔고, 그 사이로 새로운 브랜드와 가게들이 들어왔다. 이제 성수는 서울을 대표하는 관광지가 됐다. 좋고 나쁨을 이야기하려는 것이 아니다. 중요한 건 사람들이 새로움과 자기만의 취향을 찾아 움직이고, 그 움직임에 따라 도시의 ‘핫한 동네’도 계속 이동한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지금 사람들은 왜 다시 종로3가에 끌리는 것일까. 서순라길과 익선동을 포함한 종로 3가를 걸어보면 이곳에는 서로 어울릴 것 같지 않은 것들이 자연스럽게 공존함이 신기하면서도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한옥이 있고 종묘의 긴 돌담이 있고, 오래된 가게와 포장마차가 있다. 그 사이 한옥을 개조한 공방과 카페, 프렌치 레스토랑과 와인바가 자리 잡았다.
한옥에서 와인을 마시는가 하면, 몇 걸음 떨어진 골목에서는 플라스틱 의자를 꺼내놓고 야장을 즐긴다. 한국적인 것을 궁금해하는 외국인과 자기만의 새로운 장소를 찾아온 한국의 젊은이들, 오랫동안 종로를 생활 터전으로 삼아온 나이 든 사람들도 같은 거리를 걷는다. 익숙한데 낯설고, 오래됐는데 새롭고, 지극히 한국적인데 때로는 이국적이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서로 다른 이유로 같은 골목을 사용하는 풍경 자체가 이곳의 매력이다.
빨강·파랑 플라스틱 의자도 ‘낭만’이 되는 야장
소셜데이터에서도 서순라길과 익선동의 독특한 매력이 확인된다. ‘고즈넉한’ 분위기와 ‘힙한’ 분위기기라는 반응이 동시에 나타난다. 일반적으로는 서로 다른 장소를 설명할 법한 두 감성이 한 동네를 설명하는 언어로 함께 등장하는 것이다.그리고 이 골목의 매력을 설명하는 또 하나의 중요한 요소가 ‘야장’이다. 조금은 허름해 보일 수 있는 빨강과 파랑의 화려한 원색 플라스틱 의자마저 낭만으로 바꾸는 묘한 힘이 있다. 야장의 연관어를 살펴보면 ‘낭만’, ‘감성’, ‘분위기 좋다’ 같은 표현들이 함께 나타난다. 잘 디자인된 가구나 정교하게 연출된 인테리어가 아니어도 사람들은 그곳에서 충분히 감성적이고 특별한 경험을 한다.
오래된 시간의 적층에서 탄생하는 새로움
종로3가만의 현상이 아니다. 타임아웃이 올해 선정한 동네들을 살펴보면 비슷한 특징을 가진 곳들이 눈에 띈다. 3위에 오른 아테네의 네오스 코스모스 (Neos Kosmos)는 기존의 로컬 분위기 속에 젊은 크리에이터와 독립 비즈니스가 들어오고, 오래된 동네 식당과 새로운 레스토랑이 공존하는 지역이다. 6위 오사카 기타카가야 (Kitakagaya)는 20세기 조선업의 중심지였지만 옛 공장과 창고, 빈 건물들이 아트 공간과 예술가의 스튜디오로 다시 쓰이며 새로운 창조적 지역으로 변하고 있다. 14위 방콕 탈랏노이 (Talat Noi) 역시 과거 항구와 자동차 부품 산업의 흔적이 남은 골목에 카페와 바, 창작 공간이 들어섰다. 흥미로운 것은 새로운 공간들이 기존의 정비소와 오래된 상점들을 밀어내기보다 그 사이에 자리 잡았다는 점이다.
종로3가를 다시 보면 이곳에도 여러 시대의 시간이 동시에 존재한다. 종묘와 궁궐에는 조선의 시간이 있고, 익선동의 도시형 한옥에는 근대 서울의 흔적이 남아 있다. 종로 일대의 오래된 상점과 귀금속 산업에는 산업화시대 서울의 시간이, 그 사이 들어선 와인바와 새로운 F&B에는 오늘날 서울의 취향이 담겨 있다. 이곳의 흥미로운 점은 오래된 것과 새로운 것 중 하나를 선택하지 않았다는 데 있다. 한옥과 와인바, 노포와 독립 상점, 포장마차와 글로벌 식음 브랜드, 한국인과 외국인, 젊은 사람과 나이 든 사람이 한 공간 안에 동시에 존재한다. 새로운 것이 오래된 것을 완전히 대체하는 대신 서로 다른 시대의 흔적과 생활 방식이 한 장소에 겹쳐지면서 그곳에서만 볼 수 있는 풍경을 만들어낸다. 새로 지은 건물이나 잘 기획된 상업시설이 쉽게 복제하기 어려운 것은 바로 이렇게 오랜 시간에 걸쳐 만들어진 ‘시간의 층’이다.
무엇을 새로 넣을 것인가보다, 무엇을 남길 것인가
도시와 자산의 리뉴얼을 이야기할 때 우리는 흔히 ‘무엇을 새로 넣을 것인가’부터 고민한다. 새로운 건축, 새로운 브랜드, 새로운 콘텐츠를 채우는 것이 변화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종로3가가 보여주는 것은 조금 다르다. 무엇을 새로 넣을 것인가만큼 무엇을 남길 것인가를 결정하는 일이 중요하다.오래됐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것이 자산이 되는 것은 아니다. 반대로 새로운 것을 넣는다는 이유로 기존의 시간을 모두 지워버린다면 그 장소에서만 가질 수 있었던 차별성까지 함께 사라질 수 있다. 오래된 장소의 시간 위에 새로운 세대의 생활 방식이 자연스럽게 더해질 때, 낡음은 약점이 아니라 다른 곳에서는 복제할 수 없는 자산이 된다.
모든 것을 새롭게 만드는 것보다 이미 그곳에 있는 시간의 가치를 발견하는 것. 어쩌면 지금 필요한 도시와 자산의 리뉴얼은 거기에서 시작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