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셔리와 브랜드를 주제로 한 강연에서 스크린에 익숙한 브랜드 이름들을 한꺼번에 띄운 적이 있다. 샤넬, 디올, 루이 비통, 에르메스, 구찌, 까르띠에, 티파니, 파텍 필립, 페라리, 포르쉐, 리츠…. 이 이름들을 보여주며 물었다.

“이 브랜드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답은 다양했다. 비싸다거나 해외 브랜드라는 반응도 있었고, 패션과 주얼리, 자동차와 호텔처럼 카테고리로 나누는 사람도 있었다. 프랑스와 이탈리아 같은 국가를 기준으로 답하거나, LVMH와 케링(Kering), 리치몬트(Richemont) 같은 럭셔리 그룹을 떠올리기도 했다. 모두 틀린 답은 아니었다. 그러나 의외로 쉽게 나오지 않는 답이 하나 있었다. 이 이름들이 모두 각 브랜드 창업자의 이름에서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브랜드를 기억하게 만드는 요소는 많다. 주소와 제품명, 엠블럼과 색처럼 반복되는 요소도 시간이 지나면 브랜드를 알아보게 하는 단서가 된다. 브랜드가 스스로 선택하고 반복해온 요소들은 브랜드를 기억하게 하는 하나의 문법이 된다. 국적과 시대가 브랜드가 태어난 조건이라면, 이름은 브랜드가 스스로 정해야 했던 첫 번째 선택이었다. 이름 자체가 브랜드를 만드는 것은 아니다. 이후 제품과 경험이 그 선택을 반복해 증명할 때, 이름은 브랜드가 지켜야 할 기준으로 남는다.

서명이 된 이름

오늘날 루이 비통과 페라리, 리츠라는 이름은 하나의 브랜드를 뜻한다. 그러나 그 출발점에는 각각 여행자의 짐을 꾸리고, 경주차를 몰고, 호텔에서 손님을 맞이하던 사람이 있었다.

자신의 이름을 사업에 내거는 방식은 럭셔리만의 특징이 아니었다. 19세기 유럽의 도시에서 여러 장인과 상인은 자신의 이름으로 공방이나 상점을 운영했다. 이름은 누가 만들고 판매하는지를 밝히는 가장 직접적인 표시였다. 산업화와 유통의 확대로 제품이 제작자를 직접 알지 못하는 고객에게까지 팔리기 시작하면서, 공방이나 상점을 가리키던 일부 주인의 이름은 제작의 기준과 신뢰를 나타내는 브랜드명이 되었다.
1888년경 아니에르 공방 안뜰에서 루이·조르주·가스통-루이 비통이 공방 장인들과 함께 촬영한 사진. 가스통-루이는 트렁크 침대 위에 앉아 있다. / 사진출처. 루이 비통 홈페이지 © Louis Vuitton Collection
1888년경 아니에르 공방 안뜰에서 루이·조르주·가스통-루이 비통이 공방 장인들과 함께 촬영한 사진. 가스통-루이는 트렁크 침대 위에 앉아 있다. / 사진출처. 루이 비통 홈페이지 © Louis Vuitton Collection
루이 비통(Louis Vuitton)의 출발점에는 짐을 안전하게 옮기는 일이 있었다. 1837년 열여섯 살의 루이 비통은 파리에 도착해 트렁크 제작 장인 로맹 마레샬의 견습생으로 일하며 제작과 포장 기술을 배웠다. 당시 여행자는 마차와 기차, 배를 갈아탈 때마다 짐을 여러 차례 옮겨야 했다. 여행자의 의복과 귀중품을 트렁크에 맞게 꾸리고 보호하는 일에도 전문적인 기술이 필요했다.
트리아농 그레이 캔버스로 제작한 루이 비통의 평평한 트렁크. 가죽보다 가볍고 방수성이 있으며, 위로 쌓기 쉬운 구조로 제작됐다. / 사진출처. 루이 비통 홈페이지 © Louis Vuitton Collection
트리아농 그레이 캔버스로 제작한 루이 비통의 평평한 트렁크. 가죽보다 가볍고 방수성이 있으며, 위로 쌓기 쉬운 구조로 제작됐다. / 사진출처. 루이 비통 홈페이지 © Louis Vuitton Collection
철도와 대형 여객선의 발달로 장거리 여행이 늘어나면서 짐을 안전하게 보호하고 효율적으로 운반하는 기술의 중요성은 더욱 커졌다. 1854년 파리에서 자신의 이름을 건 공방을 연 루이 비통은 가죽보다 가볍고 방수성이 있는 회색 캔버스를 트렁크에 사용했다. 당시에는 빗물이 흘러내리도록 뚜껑을 둥글게 만든 트렁크가 일반적이었지만, 그는 위로 쌓기 쉬운 평평한 형태를 선보였다. 처음에는 파리의 한 트렁크 제작자의 이름이었지만, 여행의 불편을 해결하는 제품이 이어지면서 루이 비통은 여행을 다루는 기술과 신뢰의 표시가 되었다.
1923년 타르가 플로리오 출발선에서 알파 로메오 RL에 탄 엔초 페라리. 자동차 제작에 나서기 전 그는 경주 선수로 활동했다. / 사진출처. 페라리 홈페이지
1923년 타르가 플로리오 출발선에서 알파 로메오 RL에 탄 엔초 페라리. 자동차 제작에 나서기 전 그는 경주 선수로 활동했다. / 사진출처. 페라리 홈페이지
1947년 로마 그랑프리에서 첫 승리를 거둔 페라리 125 S. 페라리라는 이름을 단 최초의 자동차였다. / 사진출처. 페라리 홈페이지
1947년 로마 그랑프리에서 첫 승리를 거둔 페라리 125 S. 페라리라는 이름을 단 최초의 자동차였다. / 사진출처. 페라리 홈페이지
오늘날 자동차 브랜드로 알려진 페라리(Ferrari)의 이름은 레이싱에서 먼저 명성을 얻었다. 경주 선수로 활동했던 엔초 페라리(Enzo Ferrari)는 1929년 자신의 이름을 붙인 레이싱팀 ‘스쿠데리아 페라리(Scuderia Ferrari)’를 세웠다. 이 팀은 처음에는 알파 로메오 차량으로 경주에 참가했다. 이후 엔초 페라리는 자동차 제작에 나서 1947년 페라리라는 이름을 단 첫 번째 자동차 125 S를 선보였다. 트랙에서 축적한 기록과 승부의 경험은 페라리라는 이름에 고성능의 이미지를 부여했다.
1897년의 세자르 리츠. 그의 이름은 이듬해 문을 연 리츠 파리를 통해 럭셔리 호텔과 정교한 환대를 상징하는 말이 되었다. / 사진출처. Wikimedia Commons, Public Domain
1897년의 세자르 리츠. 그의 이름은 이듬해 문을 연 리츠 파리를 통해 럭셔리 호텔과 정교한 환대를 상징하는 말이 되었다. / 사진출처. Wikimedia Commons, Public Domain
리츠(Ritz)라는 이름은 환대의 방식으로 남았다. 1898년 파리 방돔 광장에 문을 연 리츠 파리(Ritz Paris)는 모든 층에 전기 설비를 갖추고 개인 욕실이 딸린 객실을 선보인 새로운 형태의 호텔이었다. 창립자 세자르 리츠(César Ritz)는 숙박을 제공하는 데서 나아가 손님이 어떻게 맞이되고 머무는지까지 정교하게 설계하며 근대 럭셔리 호텔의 기준을 세웠다.

리츠 파리는 곧 파리의 사교와 예술이 교차하는 장소가 되었다. 마르셀 프루스트와 어니스트 헤밍웨이 같은 작가들이 이곳을 찾았고, 코코 샤넬은 20년 넘게 리츠에 머물렀다. 한 호텔리어의 이름이었던 리츠는 이후 세련된 공간과 정교한 환대를 떠올리게 하는 말이 되었다.

루이 비통이라는 이름에는 여행의 불편을 해결한 기술이, 페라리에는 트랙에서 쌓은 기록이, 리츠에는 고객이 체감한 환대가 축적됐다. 서로 다른 제품과 경험이 오랜 시간 이어지며, 한 사람을 가리키던 이름은 브랜드가 지켜야 할 기준을 담은 서명으로 남았다.

장소를 품은 이름

알프스 최고봉과 몽블랑 필기구를 함께 담은 역사적 광고. 산에서 가져온 이름이 필기구와 브랜드의 지향을 연결하는 방식을 보여준다. / 사진제공. 몽블랑
알프스 최고봉과 몽블랑 필기구를 함께 담은 역사적 광고. 산에서 가져온 이름이 필기구와 브랜드의 지향을 연결하는 방식을 보여준다. / 사진제공. 몽블랑
브랜드의 이름은 사람뿐 아니라 특정한 장소에서 출발하기도 한다. 몽블랑에서 일한 경험을 이야기하다 보면 프랑스 브랜드가 아니냐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 그럴 만도 하다. 브랜드명 몽블랑(Montblanc)은 알프스 최고봉 몽블랑(Mont Blanc)에서 유래했다. 정상부를 덮은 눈과 빙하 때문에 프랑스어로 ‘하얀 산’이라 불린다.

그러나 몽블랑은 프랑스가 아니라 독일 함부르크를 기반으로 성장한 브랜드다. 1906년 시작된 필기구 사업은 초기에 심플로 필러 펜 컴퍼니(Simplo Filler Pen Co.)라는 이름으로 운영됐다. 1910년 무렵 사용되기 시작한 ‘몽블랑’은 이후 회사 전체를 대표하는 이름이 되었다. 몽블랑에게 그 산은 출발지가 아니라 도달하고자 한 기준이었다. 가장 높은 봉우리의 이미지는 최고 수준의 필기구를 만들겠다는 지향을 상징했다.
1954년 이탈리아 K2 원정에 사용된 몽클레르 다운 재킷과 장비. 노동자를 위한 방한복은 극한의 환경을 견디는 원정 장비로 발전했다. / 사진출처. 몽클레르 X
1954년 이탈리아 K2 원정에 사용된 몽클레르 다운 재킷과 장비. 노동자를 위한 방한복은 극한의 환경을 견디는 원정 장비로 발전했다. / 사진출처. 몽클레르 X
몽클레르(Moncler) 역시 알프스의 지명에서 왔지만, 출발점은 최고봉이 아니라 산기슭의 작은 마을이었다. 1952년 르네 라미용과 앙드레 뱅상은 프랑스 알프스 기슭의 모네스티에 드 클레르몽(Monestier-de-Clermont)에서 회사를 세우고, 마을 이름을 줄인 몽클레르를 회사명으로 삼았다.

초기 몽클레르는 퀼팅 침낭과 텐트 등 고지대에서 필요한 장비를 생산했다. 추운 환경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을 위한 다운 재킷도 만들었다. 프랑스 산악인 리오넬 테레이는 이 옷의 기술적 성능에 주목했고, 1954년 몽클레르의 다운 재킷은 이탈리아 K2 원정대의 장비로 선택되었다. 이 방한복은 극한의 환경을 견디는 탐험 장비로 발전했고, 이후 몽클레르를 대표하는 럭셔리 아우터의 기반이 되었다. 몽클레르라는 이름에는 산 아래 마을의 환경과 그곳에서 축적된 산악 장비의 기술이 함께 남아 있다.

사람의 이름이 창업자의 책임을 남긴다면, 장소의 이름은 브랜드가 세운 목표나 제품이 태어난 환경을 남긴다. 몽블랑에게 산은 도달하고 싶은 높이였고, 몽클레르에게 산은 추위에 대응하는 기술을 축적하게 한 환경이었다.

상징이 된 이름

사람의 이름도, 장소의 이름도 아닌 방식이 있다. 하나의 문자나 개념을 브랜드명으로 선택하는 경우다. 오메가(Omega)는 그중에서도 흥미로운 사례다.
1848년 스위스 라쇼드퐁에 시계 조립 공방을 세운 루이 브란트. 자신의 이름으로 시작한 회사는 훗날 대표 무브먼트의 이름인 오메가를 브랜드명으로 채택했다. / 사진제공. 오메가
1848년 스위스 라쇼드퐁에 시계 조립 공방을 세운 루이 브란트. 자신의 이름으로 시작한 회사는 훗날 대표 무브먼트의 이름인 오메가를 브랜드명으로 채택했다. / 사진제공. 오메가
1900년경 스위스 비엔의 루이 브란트 앤드 프레르 공장 엽서. 기존 회사명과 함께 ‘OMEGA’라는 이름이 표시되어 있다. / 사진제공. 오메가
1900년경 스위스 비엔의 루이 브란트 앤드 프레르 공장 엽서. 기존 회사명과 함께 ‘OMEGA’라는 이름이 표시되어 있다. / 사진제공. 오메가
1848년 스위스 쥐라산맥의 시계 도시 라쇼드퐁(La Chaux-de-Fonds)에서 루이 브란트(Louis Brandt)가 세운 시계 공방은 처음부터 오메가라는 이름을 사용하지 않았다. 오메가는 그리스 알파벳의 마지막 글자로, 완성을 상징한다. 이 이름은 1894년 회사가 선보인 19라인 무브먼트에 먼저 붙었다.

이 무브먼트는 부품을 정밀한 규격으로 제작해 서로 교체할 수 있게 함으로써 조립과 수리를 효율화했다. 무브먼트가 성공을 거두면서 오메가는 1903년 회사명에 포함되었다. 하나의 기술에 붙인 이름이 회사 전체를 대표하는 이름으로 확장된 것이다.

제니스(Zenith)도 처음부터 회사의 이름은 아니었다. 1865년 라쇼드퐁과 인접한 르 로클(Le Locle)에서 조르주 파브르-자코(Georges Favre-Jacot)가 세운 이 시계 제조사는 여러 제작 공정을 한곳에 모아 생산의 신뢰성과 품질을 높이고자 했다. 그가 추구한 목표는 ‘완벽한 시계’였다.
‘완벽한 시계(La Montre Parfaite)’를 내세운 제니스의 역사적 광고. ‘정점’을 뜻하는 제니스라는 이름에는 완벽한 시계를 향한 브랜드의 목표가 반영됐다. / 사진출처. 제니스 홈페이지
‘완벽한 시계(La Montre Parfaite)’를 내세운 제니스의 역사적 광고. ‘정점’을 뜻하는 제니스라는 이름에는 완벽한 시계를 향한 브랜드의 목표가 반영됐다. / 사진출처. 제니스 홈페이지
조르주 파브르-자코는 1898년 별에서 영감을 받아 대표 무브먼트에 제니스라는 이름을 붙였다. 제니스는 천문학에서 관측자의 머리 바로 위에 있는 ‘천정’을 뜻하며, 나아가 정점이나 최고점을 가리킨다. 무브먼트와 제품이 명성을 얻으면서 회사는 1911년 제니스를 공식 이름으로 채택했다.

오메가와 제니스는 추상적인 개념을 곧바로 회사명으로 삼은 것이 아니었다. 완성과 정점을 뜻하는 이름은 먼저 실제 무브먼트에 붙었고, 기술의 성취가 그 의미를 증명한 뒤 회사 전체의 이름이 되었다. 이 과정에서 제품에 붙인 이름은 브랜드 전체가 지향하는 기준이 되었다.

브랜드 이름은 사람들에게 가장 먼저 불리는 요소인 동시에 가장 오래 남는 자산이다. 로고와 패키지는 바뀌고 캠페인은 계속 새로워지지만, 이름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누군가의 이름이나 특정한 장소, 개념을 가리키던 말도 제품과 경험이 오랜 시간 일관된 의미를 더하면 하나의 브랜드를 대표하게 된다. 강연장에서 이 이름들이 더 이상 사람의 이름처럼 들리지 않았던 것도, 그 이름마다 창업자 개인을 넘어선 역사가 축적됐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하나의 선택이었던 이름이 브랜드가 지켜야 할 기준이 되고, 자신을 기억시키는 첫 번째 문법으로 남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