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병역특례 유감
중국 한나라 초기에는 승상의 아들도 매년 3일간 국경 경비의 의무를 져야 했다. 국가 최고위층 자식까지 ‘전방 초소 근무’를 선 셈이다. ‘도시국가의 방위를 위해서는 상류 계급이 솔선해서 무기를 들어야 한다’는 고대 평등사상의 영향이라는 분석이다. 하지만 귀족 중심 신분제가 자리 잡으면서 동양 사회에서 특권층은 병역 의무에서 빠져도 된다는 인식이 퍼졌다.

병역에 관한 인식은 국가의 흥망과 깊이 얽혀 있다. 스파르타의 어머니들은 전쟁터로 떠나는 자식에게 “방패를 들고, 아니면 방패에 실려”라고 외쳤다. 전쟁에서 승리해 방패를 들고 귀환하든지, 장렬히 전사해 방패에 실려 돌아오라는 뜻이다. 하지만 스파르타의 몰락을 상징하는 레욱트라 전투에서 참패한 이후 분위기가 바뀌었다. 스파르타 국왕은 도망병에 대해 “이날 하루만은 죄를 묻지 않고 사면하겠다”고 발표했다. 국방의 의무에 관한 규범이 무너진 스파르타는 끝내 부활하지 못했다.

병역이 피해야 할 대상으로 전락하면 사회 불안은 피할 수 없다. 1626년 조선 국왕 인조가 양반에게는 군역을 면제하고, 평민에게 병역 면제 대가로 군포(軍布)를 징수하면서 대혼란의 문이 열렸다. 군역을 면하고자 사람들이 앞다퉈 향교와 서원에 입학했고, 경쟁적으로 조상을 위조하며 양반을 칭했다. 의무는 힘없는 백성에게 집중됐고 조선은 쇠락의 길에 접어들었다.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딴 축구 국가대표팀 일부 선수의 ‘군 면제’ 발언이 거센 역풍을 맞고 있다. 일부 선수가 인터뷰에서 “메달이나 트로피는 중요하지 않았다. 군 면제라는 보상이 있으니까 그거 하나만 보고 경기했다”고 밝히거나 라커룸에서 전역모를 쓴 사진을 SNS에 올렸다. 논란이 일자 예술·체육 분야 병역특례를 손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다.

병역특례 제도는 국제대회 성과를 통해 국위 선양을 장려한다는 취지로 1973년 도입됐다. 하지만 형평성과 공정성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국가 공동체의 안위는 사회가 최우선으로 지켜야 할 가치다. 병역 의무가 존중과 감사의 대상이 아니라 기피할 것, 조롱거리로 전락해선 안 된다.

김동욱 논설위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