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생성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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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 수업료만 1000~1500유로(약 160만~240만원). 인공지능(AI)이 몇 초 만에 외국어를 번역해주는 시대에도 세계 각국의 직장인들이 적지 않은 돈과 시간을 들여 외국어를 배우고 있다. AI가 언어의 장벽을 낮출수록 현지 문화를 읽고 관계를 만드는 능력이 오히려 더 중요해지고 있어서다.

12일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이탈리아 로마에는 일주일에 1000~1500유로를 내고 이탈리아어를 배우러 온 직장인들이 모여들고 있다.

스위스 취리히에 본사를 둔 외국어 교육업체 에듀케이션퍼스트(EF)가 운영하는 이 과정에서는 영어를 일절 사용하지 않는다. 참가자들은 요리학교에서 페투치네와 티라미수를 만들면서도 이탈리아어로 대화한다. 기업 임원과 은퇴자, 경력 전환을 준비하는 직장인 등이 유럽과 미국을 비롯한 세계 각지에서 찾아왔다.

하지만 AI 도구가 외국어 학습까지 돕는 시대에 대면 수업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AI 시대에 직장인들이 굳이 외국어를 배워야 할 이유는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해당 언어를 쓰는 사람과 신뢰를 쌓고 관계를 맺으려면 현지 언어를 구사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AI로 보고서나 발표 내용을 이해할 수는 있어도 그 이상의 역할을 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특히 다국적 기업에서는 중요한 대화가 사내 공용어가 아닌 언어로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 전달하려는 메시지가 현지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현지 사람들이 무엇을 신뢰하는지 등을 판단하는 일도 필요하다. 전 세계에 적용할 아이디어를 고유한 특성을 살리면서 현지 사정에 맞게 조정하는 역량 역시 단순 번역 능력만으로는 갖추기 어렵다.

광고기업 WPP에서 인간과 AI의 협업 전략을 담당하는 로라 바이스는 “다른 언어를 구사하는 능력은 여전히 사람들에게 다가가고 신뢰를 얻는 데 도움이 된다”며 “AI가 문자 그대로의 번역을 상당 부분 맡으면서 문화에 대한 이해와 영향력, 관계 구축 능력이 더욱 중요해졌다”고 말했다.

채용업체 로버트월터스의 대니얼 해리스 영국 총괄은 기업들이 ‘문화적 지능’을 갖춘 인재를 찾고 있다고 설명했다. 외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데 그치지 않고 문화의 미묘한 차이와 현지의 기대를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이런 역량은 해외에서 생활하거나 일하고 공부하는 경험을 통해 기르기 쉽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해리스는 “AI가 외국어 활용의 반복적인 부분을 자동화하면서 외국어 능력의 가치도 달라지고 있다”며 “기업은 단순 번역을 넘어서는 역할을 할 수 있는 지원자를 원한다”고 말했다.

외국어를 배우는 과정 자체가 업무 역량을 키운다는 분석도 나온다. 미나 파우노바 ESCP경영대학원 경영학 부교수는 학습자가 때때로 불안과 당혹 등의 감정을 견뎌야 한다는 점에 주목했다. 시행착오를 겪는 과정 자체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훈련이 된다는 것이다.

그는 외국어 학습을 “오랫동안 제대로 해내지 못하는 상태를 견디는 일”이라고 표현했다. 그러면서 “여러 언어를 구사하는 직원은 동료들 사이에서 ‘문화적 중개자’ 역할도 한다”고 덧붙였다.

한명현 기자 wis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