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우드 배우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 사진=변성현 기자
할리우드 배우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 사진=변성현 기자
경매 시장에는 별의별 물건이 다 나옵니다. 값비싼 다이아몬드부터 한정판 시계, 유명인이 입었던 옷까지 가지각색이죠. 그렇다면 이미 많은 것을 가진 억만장자들은 경매장에서 무엇을 탐낼까요? 수집품의 ‘끝판왕’으로 꼽히는 것 중 하나가 바로 공룡 화석입니다. 수천만 년 전 지구를 누볐던 거대한 생명체가 이제는 부호들의 수집 경쟁을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후기 백악기 지구를 누볐던 티라노사우루스 거스, 전체 몸 길이만 11m가 넘는다. /소더비, Photography Matthew Sherman
후기 백악기 지구를 누볐던 티라노사우루스 거스, 전체 몸 길이만 11m가 넘는다. /소더비, Photography Matthew Sherman
공룡 화석 수집을 즐기는 이들의 면면은 매우 화려합니다. 헤지펀드 억만장자와 소프트웨어 기업가는 물론 할리우드 스타들도 가세했죠. 오래 전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니콜라스 케이지는 공룡 두개골 화석을 놓고 치열한 입찰 경쟁을 벌인 일화도 유명합니다.
지금까지 발견된 티라노사우루스 화석 중 크기가 가장 큰 거스의 키는 3.8m로, 웬만한 아파트 한 층을 훌쩍 넘는 높이다. /소더비, Photography Matthew Sherman
지금까지 발견된 티라노사우루스 화석 중 크기가 가장 큰 거스의 키는 3.8m로, 웬만한 아파트 한 층을 훌쩍 넘는 높이다. /소더비, Photography Matthew Sherman
하지만 국내에서 공룡 화석은 아직 한 번도 경매에 나온 적이 없습니다. 대한민국 법률상 화석은 국가 유산으로 분류되기 때문인데요. 공룡의 발자국부터 뼈, 알 등 땅속에서 발견된 화석은 모두 천연기념물 및 매장유산법이 적용됩니다. 화석을 발견했다고 해서 마음대로 발굴하거나 내다 팔 수 있지 않습니다.
반면 미국과 영국, 프랑스 등 일부 유럽 국가 등은 사정이 다릅니다. 특히 미국은 토지 소유권이 지하 자원 및 화석에까지 미칩니다. 소유자의 허가를 받아 발굴했다면 매매, 해외 수출, 경매 출품이 자유롭습니다.

지난 7월 소더비 경매에선 역대 공룡 화석 중 최고가 거래가 나왔습니다. 미국 사우스다코타주 농장에서 발굴된 티라노사우루스 ‘거스(Gus)’가 5010만 달러(한화 약 675억원)에 낙찰된 것입니다. 경매 전 추정가 2000만 달러에서 3000만 달러를 훌쩍 뛰어넘은 금액인데요. 2024년 스테고사우루스 '에이펙스(Apex)‘가 세운 종전 공룡 화석 최고가 4460만 달러(한화 약 600억)보다도 550만 달러가 높습니다.

거스의 새 주인이 결정되기까지 치열한 입찰 경쟁이 펼쳐졌습니다. 소더비에 따르면 7명의 응찰자가 약 10분간 가격 경쟁을 벌였고, 최종 승자는 전화로 입찰에 참여한 익명의 구매자였습니다. 에이펙스가 미국 헤지펀드 시타델 LLC의 창업자이자 억만장자인 켄 그리핀(Ken Griffin)이 구매한 것으로 알려진 반면, 거스를 낙찰받은 최종 구매자의 신원은 공개되지 않았습니다.
초등학교 저학년 어린이의 키와 비슷한 수준읜 거스의 두개골. /소더비, Photography Matthew Sherman
초등학교 저학년 어린이의 키와 비슷한 수준읜 거스의 두개골. /소더비, Photography Matthew Sherman
거스와 에이펙스가 높은 가치를 인정받은 데에는 뛰어난 보존 상태가 한몫했습니다. 특히 거스는 지금까지 발견된 티라노사우루스 화석 중 보존 상태가 가장 뛰어난 개체 중 하나로 꼽힙니다. 머리부터 꼬리까지의 전체 몸 길이는 약 11.6m, 키는 약 3.8m에 달합니다. 두개골 길이만 해도 약 137cm라고 하니, 그 거대한 몸집이 짐작이 되죠. 거스는 지금까지 발견된 티라노사우루스 가운데서도 손꼽히는 크기입니다

6700만 년 전 지구를 누볐던 최상위 포식자의 모습을 되살리는 과정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땅속에 묻혀 있던 화석을 발굴하는 데 3년, 발굴한 뼈를 연구실로 옮겨 손질하고 골격을 조립하는 데 다시 3년이 걸렸습니다. 꼬박 6년이 걸린 끝에 거스는 수천만년의 시간을 거슬러 다시 모습을 드러낼 수 있었습니다.
미국 콜로라도주에서 발굴된 스테고사우루스 '에이팩스'.  코끝에서 꼬리까지 길이 약 8.2m에 달한다. /소더비, Photography Matthew Sherman
미국 콜로라도주에서 발굴된 스테고사우루스 '에이팩스'. 코끝에서 꼬리까지 길이 약 8.2m에 달한다. /소더비, Photography Matthew Sherman
2024년 약 600억에 팔린 스테고사우루스 '에이펙스'의 꼬리. /소더비, Photography Matthew Sherman
2024년 약 600억에 팔린 스테고사우루스 '에이펙스'의 꼬리. /소더비, Photography Matthew Sherman
소더비는 거스를 "지금까지 발견된 티라노사우루스 중 가장 완전한 표본"이라고 소개합니다. 뼈의 개수를 기준으로 따졌을 때 골격의 약 63%가 남아 있기 때문이죠. 특히 몸집을 이루는 주요 뼈들이 온전하게 남아 있어 지구를 누볐던 티라노사우루스의 위용을 짐작하기에 충분하죠.

일각에서는 우려의 목소리도 들립니다. 수천만 년의 지구 역사를 간직한 귀중한 과학 자료가 소수 부유층의 소장품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지적인데요. 낙찰가가 천정부지로 치솟으면 공공 연구기관이 구매하는 데 한계가 있고, 개인 소유가 된 화석에 연구자들의 접근이 제한될 경우, 연구 기회조차 얻을 수 없다는 점에서도 곱지 않은 시선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공룡 화석의 수백억 원대 낙찰가에 전 세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그 안에 담긴 수천만 년의 역사를 더 많은 사람이 함께 들여다볼 수 있도록 하는 일일 것입니다.

강은영 기자 qboo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