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엉터리 AI 번역 서적
눈을 의심했다. 영화 ‘오디세이’의 인기로 주목받는 호메로스의 고전 <오디세이아>의 한 번역본에 난데없이 ‘킹받네’(매우 화난다는 뜻), ‘머선129’(무슨 일이고), ‘알빠노’(알 바 아니다) 같은 인터넷 신조어가 적혀 있었다. 판매용 책인데도 이랬다. 번역자는 제미나이. 출판사는 세대 간 거리감을 좁히려고 했다지만, 고전의 문턱을 낮춘 것인지 작품을 희화화한 것인지 의문이다.

인공지능(AI)으로 손쉽게 책을 찍어내는 이른바 ‘딸깍 출판’이 번역 시장까지 파고들고 있다. 1만9800원만 내면 고전 730권을 평생 읽게 해준다고 홍보한 한 전자책 구독 서비스는 번역에 AI를 활용한 사실이 뒤늦게 밝혀져 서비스를 중단했다. 낮은 번역 품질을 두고 이용자들이 의문을 제기한 끝에 드러난 사건이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신작 <가호>는 지난 7월 일본에서 출간된 지 불과 네 시간 만에 중국어 해적판으로 등장했다는 사실이 최근 알려졌다. 한 중국 대학생이 AI 모델 딥시크 등을 활용해 번역하는 데 들인 비용은 13위안(약 2600원). 제대로 된 감수도 없이 풀린 번역본은 소셜미디어와 중고 플랫폼 등을 통해 퍼져나갔다. 작가가 공들여 쓴 책이 순식간에 무단 복제와 유통의 대상이 된 것이다.

문학작품 번역은 단순히 단어를 다른 언어로 바꾸는 게 아니다. 같은 말도 누가, 언제, 누구에게 하느냐에 따라 느낌이 달라진다. 문장 사이의 의미와 인물의 말투까지 헤아려야 한다. 원작자 의도를 다른 언어로 되살리는 재창작과 다름없다. <가호>의 AI 번역 문장은 무라카미 하루키 특유의 어조와 문체를 살리지 못했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라고 한다.

AI는 번역 시간과 비용을 줄이는 유용한 도구가 될 수 있다. 그러나 문학작품을 마음대로 옮겨 팔아도 되는 것은 아니다. 번역과 유통에는 저작권 보호라는 원칙이 분명히 지켜져야 한다. 정식 출판물에는 어느 부분에 AI를 활용했고, 사람이 얼마나 대조·검수했는지 알리는 ‘AI 표시제’ 등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 부푼 기대로 책을 읽는 독자가 ‘AI 슬롭(쓰레기)’을 돈 주고 샀다는 느낌을 받아서야 되겠는가.

안정락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