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리더는 부하의 다음 임무도 고민해야
오늘은 건군 78주년 국군의 날이다. 우리가 평범한 하루를 누리는 동안 누군가는 휴전선의 밤과 영해의 파도, 영공의 바람을 지킨다. 평화는 저절로 주어진 것이 아니라 제복 입은 이들의 청춘이 건넨 선물이다. 그 헌신에 깊은 감사와 존경을 전한다.

지금 우리 군은 쉽지 않은 시간을 지나고 있다. 상비 병력은 2019년 56만3000명에서 지난해 7월 45만 명으로 줄었다.

지난해 상반기 정년 전 희망전역을 택한 간부는 2869명으로 최근 5년 새 가장 많았다. 2021년 상반기의 두 배를 넘는 규모다. 이 가운데 약 86%가 부사관과 위관장교였다. 육군 부사관 충원율은 2020년 95%에서 2024년 42%로 떨어졌고 해군과 공군도 각각 55%, 69%에 그쳤다. 병력은 줄어드는데 군의 허리마저 가늘어지고 있다. 이 수치 뒤에는 한 사람, 한 사람의 고민이 있다.

이 위기는 군 리더십의 가치를 다시 보게 한다. 20대 초급간부는 소대와 함정, 비행대대에서 동료의 생명과 임무를 어깨에 짊어진다. 기업이라면 중견 팀장에게나 맡길 무게다. 위기 속 의사결정, 서로 다른 배경의 구성원을 하나로 묶는 통합력, 극한 상황에서의 회복탄력성. 기업이 적지 않은 비용을 들여 가르치려는 역량을 우리 장병은 매일 현장에서 몸으로 익히고 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큰 리더십 학교는 바로 군이다.

첨단 전력의 완성은 결국 사람이다. 무기체계의 첨단화에 쏟는 관심만큼 그것을 운용할 간부의 리더십 개발에도 과감한 투자가 뒤따라야 한다. 코칭과 멘토링, 체계적인 경력 경로 설계, 민간 교육 과정 등이 더 넓고 깊게 자리 잡아야 한다. ‘나는 이곳에서 리더로 성장하고 있다’는 확신이 있어야 젊은 인재가 군을 선택하고, 또 머문다. 제도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가장 가까운 상관이 “너의 성장을 돕겠다”며 신뢰를 줄 때 더 단단해진다.

리더의 임무가 하나 더 있다. 부하의 ‘다음 임무’까지 함께 고민하는 일이다. 2024년 한 해에만 9523명의 중·장기 복무 제대군인이 사회로 나왔다. 2020년보다 40% 가까이 늘었다. 이들 상당수는 가족을 책임지는 한창나이에 두 번째 경력의 출발선에 섰다. 전국 10개 제대군인지원센터가 힘쓰고 있지만, 전방과 격오지에서 땀 흘리는 간부들이 전역 이후를 차분히 준비하기란 쉽지 않다. 상관이 전역 예정 부하의 준비 시간을 보장하고 함께 설계하는 것, 그것이 리더십의 연장선이다.

미국은 최소 전역 1년 전부터 ‘전직 지원 프로그램(TAP)’ 참여를 의무화하고 있다. 공수부대원이 뛰어내리기 전에 낙하산부터 점검하듯, 전역 준비도 훨씬 이전에 시작돼야 한다. 복무 중 경력 개발 상담, 민간 자격 연계 직무교육, 채용 매칭, 전역 이후 정착까지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져야 한다. 이는 떠나는 사람을 위한 배려에 그치지 않는다. 먼저 떠난 선배가 사회에서 당당히 자리 잡는 모습을 볼 때, 남은 후배는 더 안심하고 임무에 몰입할 수 있다. 입대를 앞둔 청년들도 기꺼이 군복을 입을 것이다.

전역은 ‘작전 종료’가 아니라 ‘임무 전환’이다. 전투화 끈을 푸는 날, 새 구두끈을 함께 묶어주는 리더가 있는 군대라면 인재는 쉽게 떠나지 않을 것이다. 떠나더라도 군의 가장 든든한 지원군으로 남을 것이다.

리더는 자리로 기억되지 않는다. 부하가 성장한 시간으로 그리고 떠나는 날 함께 묶어준 구두끈으로 기억된다. 우리는 함께 일하는 이들에게 어떤 리더로 기억되고 싶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