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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녹지는 도시의 전략자산이다
기후위기로 미래 예측 어려울수록
공원부지는 후세대 몫으로 남겨야
전진형 고려대 환경생태공학부 교수
공원부지는 후세대 몫으로 남겨야
전진형 고려대 환경생태공학부 교수
도시가 감당해야 할 위험은 서로 얽혀 있지만, 그 시간표는 다르다. 폭우와 폭염은 매년 반복된다. 도시 열섬이 시민 건강에 미치는 영향과 노후 인프라의 부담은 10년, 20년에 걸쳐 누적된다. 생물 다양성의 상실과 녹지의 잠식은 더 느리게 진행되지만 어느 시점을 넘어서면 되돌리기 어렵다. 그런데 느린 위험일수록 눈앞의 현안에 밀려 대비가 늦어진다.
늦어진 대비의 대가는 비용으로 돌아온다. 지금 개발한 땅을 30년 뒤 공원과 생태축, 홍수 저류 공간으로 되찾으려면 개발 전에 남겨두는 것과 비교할 수 없는 비용을 치러야 한다. 도심에서는 돈이 있어도 필요한 땅을 확보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우리는 이미 그 비용을 경험했다. 2020년 7월, 도시공원으로 결정해 놓고 20년간 조성하지 못한 땅의 지정을 풀도록 한 도시공원 일몰제가 첫 시한을 맞았다. 전국에서 사라질 위기에 놓인 공원 부지는 서울 면적의 60%가 넘는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지방채와 LH(한국토지주택공사) 토지은행까지 동원해 대부분을 지켜냈지만, 여의도의 20배에 이르는 땅은 끝내 공원 지정이 풀렸다. 녹지를 지도에 그려두는 일과 자산으로 확보하는 일은 다르다. 미리 확보한 녹지는 미래에 필요한 도시 기능을 지금 가격으로 사두는 것이다.
그렇다면 도시는 어떤 자산을 보유하고 있는가. 우리는 크고 화려한 건물을 도시의 자산으로 내세우는 데 익숙하다. 유명 건축가의 이름, 멋진 파사드, 랜드마크는 명품 백처럼 눈에 띄고 그 가치를 보여주기도 쉽다. 녹지의 가치는 천천히 드러난다. 건물은 완공된 날부터 노후화와 유지관리의 시간이 시작되지만, 제대로 관리된 공원과 숲은 해가 갈수록 기능과 가치가 축적될 수 있다. 도시에서 시간 자체가 자산가치를 키우는 드문 경우다.
도시에 명품 백도 있어야 한다. 다만 포트폴리오가 명품 백뿐이라면 그 도시는 위험하다. 녹지가 지닌 또 하나의 가치는 미래의 선택권이다. 기후위기로 도시의 미래를 예측하기 어려워질수록 지금 모든 쓰임을 확정하지 않고 필요할 때 다른 용도로 활용할 여지를 남겨두는 것이 중요해진다. 경제학의 실물옵션과 같은 원리다. 결정을 미뤄두고 나중에 고를 수 있다는 것 자체에 값을 매기는 개념으로, 불확실성이 클수록 그 값은 커진다. 오늘 녹지로 남겨둔 땅은 다음 세대가 필요에 따라 다르게 쓸 수 있는 권리까지 함께 남긴다. 미래 세대의 선택 가능성을 지켜주는 것, 지속가능성의 의미도 여기에 있다.
녹지를 도시의 전략자산으로 본다면 그 혜택이 시민에게 닿는지도 물어야 한다. 서울만 해도 도시숲의 3분의 1 이상은 시민이 일상에서 오가는 생활권 밖에 있다. 헌법 제35조가 보장하는 건강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생활할 권리도 결국 가까이에서 누리는 녹지의 문제다. 녹지를 평가하는 기준도 달라져야 한다. 얼마나 조성했는가에 머물지 않고, 어떤 숲과 물길을 얼마나 확보했고 어디에 배치했으며 어떻게 연결했는지까지 살펴야 한다. 시간이 흐르는 동안 그 기능과 가치를 어떻게 지켜낼 것인지도 물어야 한다.
도시가 답해야 할 질문은 지금 무엇을 남겨둘 것인가다. 녹지를 남겨두는 것은 미래의 위험에 대비하고, 다음 세대에 선택권을 물려주는 일이다. 녹지를 도시의 전략자산으로 다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