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배우 에녹 /사진=CJ ENM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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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훈 작곡가님 곡으로 뮤지컬을 한다는 게 가장 큰 매력이었죠."

뮤지컬 '광화문연가'로 관객들과 만나고 있는 에녹은 최근 서울 모처에서 진행한 인터뷰에서 이같이 밝혔다.

'광화문연가'는 '붉은 노을', '옛사랑', '소녀', '깊은 밤을 날아서', '가로수 그늘 아래 서면' 등 대중적으로 큰 사랑을 받았던 이영훈 작곡가의 음악을 넘버로 구성한 주크박스 뮤지컬이다.

생을 떠나기 1분 전, '기억의 전시관'에서 눈을 뜬 주인공 명우가 인연을 관장하는 인연술사 월하를 만나 함께 추억 여행을 떠나며 과거의 자신을 찾아가는 내용이다. 음악은 물론이고, 시대적 배경까지 한국적인 정서로 꽉 채워진 이 작품은 올해로 벌써 다섯 번째 시즌을 맞았다.

에녹이 '광화문연가'에 참여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작품에 대해 익히 알고는 있었지만, 관객으로 본 경험도 없었다고 했다. 그런데도 참여를 결심한 데에는 이영훈 작곡가의 음악이 주효한 역할을 했다고. 에녹은 "이영훈 작곡가님을 너무 좋아한다. 중, 고등학교 시절에 라디오로 많이 들었던 곡들"이라면서 "극이 여러 기억과 추억을 떠올리게 하지 않나. 저 역시 공감하고 느끼면서 연습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공연이 끝나고 나면 가슴에 벅참과 기쁨이 가득하다. 다른 배우들도, 보는 관객 분들도 그걸 느낀다고 하더라. 창작진분들이 잘 만들어준 거기도 하고, 이영훈 작곡가의 곡이 가진 힘인 것 같기도 하다"며 작품에 강한 애정을 드러냈다.
뮤지컬배우 에녹 /사진=CJ ENM 제공
뮤지컬배우 에녹 /사진=CJ ENM 제공
학생 때 듣던 음악을 40대가 된 지금 부르는 것은 색다른 감상을 준다고 했다. 에녹은 "그때는 가사가 유행가처럼 느껴졌다. 뜻은 잘 모르고 음악이 좋다며 따라불렀는데, 지금은 노랫말의 내용들을 경험한 것 같은 느낌"이라고 털어놨다. 그러면서 "제가 나이가 들어서인지, 극이 드라마로 잘 이어져서인지 모르겠지만 가사가 굉장히 가슴을 후벼파서 제게 다가왔다. 이런 부분들이 새롭게 다가오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이영훈 작곡가는 가수 이문세와 음악적 동반자로 오랜 시간 호흡하며 대중음악계에 한 획을 그은 인물이다. 곡이 유명한 만큼, 이문세라는 가창자에 대한 존재감도 매우 뚜렷하다.

극 중 월하는 '빗속에서', '깊은 밤을 날아서' 등을 부른다. 에녹은 "월하가 부르는 모든 곡이 어려웠다. 이문세 선배님이 부르는 목소리가 강하게 기억돼 있었고, 너무 가요처럼 불러도 안 되고, 너무 뮤지컬처럼 불러도 안 됐다. 처음에 뮤지컬 발성으로 하려고 했는데 잘 안됐고, 거기에 이문세 선배님의 목소리까지 들렸다. 또 가요처럼 불렀더니 오케스트레이션 편곡과 안 맞더라"고 고백했다.

이어 "이제는 곡별, 부분별로 다 계산해서 부른다. 나름대로 방법을 찾아가고 있는 중"이라고 전했다.

또 다른 도전은 내레이터로서 극을 이끌어가는 배역이라는 것이었다. 에녹은 캐스팅 제안을 받았던 때를 떠올리며 "'왜 명우가 아니고 월하지?'라고 생각했다. 내게 맞을까 싶더라"고 털어놨다. 그는 "이전에도 내레이터 같은 걸 해봤지만, 이렇게까지 쇼적인 부분이 강하고, 애드리브가 많았던 역할은 없었다. 너무 어려운 숙제였다"고 고백했다.

그러면서 "벌거벗은 것처럼 연기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안 되는 코미디를 던져보기도 하고, 애드리브도 했다. 땔감도 피워보고 별 걸 다했다"며 웃었다.

다만 작품이 5연까지 이어져 오면서 갖춰진 틀이 있었고, 이미 월하를 겪어본 차지연·서은광이 "가정교사 같았다"며 이들로부터 큰 도움을 받았다고 밝혔다.
뮤지컬배우 에녹 /사진=CJ ENM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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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연가'는 죽음을 앞둔 주인공 명우가 월하를 통해 지난 삶을 돌아보는 액자식 구성을 취한다. 인생, 사랑, 추억 등의 키워드가 작품의 감정선을 빼곡하게 완성한다. 에녹은 "누구나 살면서 한 번은 느껴봤을 보편적인 감정들"이라면서 "'광화문연가'는 다른 작품에 비해 유독 삶의 감정들과 맞닿아있다. 한국 사람이라면 보편적으로 느꼈을 법한 감정들이 깊게 잘 담겨있다. 나 역시도 그런 감정을 많이 느꼈다"고 했다.

그는 "지나간 것에 대한 미련이 없는 성격"이라면서도 "유독 '광화문연가' 대본을 보고 연습하고 공연하면서 많은 게 떠올랐다. 지나온 게 다 소중하게 느껴졌다. 연습하면서 눈시울이 붉어질 때도 있고, 웃게 될 때도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명우는 축복받았다. 죽기 전에 주어진 1분을 과거와 마주할 수 있는 시간으로 보낼 수 있다면 감사할 거 같다. 월하 같은 존재가 있어서 쓱 한 번 돌아볼 수 있다면 너무 행복하지 않겠나"라며 미소 지었다.
뮤지컬배우 에녹 /사진=CJ ENM 제공
뮤지컬배우 에녹 /사진=CJ ENM 제공
에녹은 차근차근 계단을 밟아온 대표적인 성장형 배우다. 2007년 뮤지컬 '알타보이즈'로 데뷔한 그는 '쓰릴 미', '레베카', '마타하리', '브로드웨이 42번가', '팬텀' 등 무대를 넓히며 정상급 배우로 자리매김했다. 내년 데뷔 20주년을 맞는 그는 여전히 도전을 거듭하고 있다. 트로트 장르로 팬층을 넓힌 데 이어 본업인 뮤지컬로 돌아와 '광화문연가'로 새로운 모습을 보여줬다. 연말에는 '시카고'에도 처음으로 합류한다.

에녹은 "뮤지컬을 늦게 시작한 케이스라 경력은 얼마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고작 20년밖에 안 됐다. 이제 조금씩 맛을 알아가는 단계"라고 겸손한 모습을 보였다. 그러면서 "나중에 50주년 정도 되면 조금 다를까 싶다. 그냥 좋은 배우로 남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광화문연가'는 오는 11월 15일까지 서울 디큐브 링크아트센터에서 공연한다.

김수영 한경닷컴 기자 swimming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