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17세기 이전 음악인 고음악을 연주할 때는 그 당시의 연주법을 최대한 가깝게 재현하는 원전 연주가 유행이다. 엄격하게 할 땐 당대 악기를 동원하기도 한다.

유럽 고음악 집단인 ‘아트하우스17’은 이런 흐름과는 딴 길을 간다. 고음악에 1930년대 연주 방식이나 아코디언처럼 당대에 쓰이지 않던 악기를 붙이거나 무용, 연극, 시각예술 등을 결합해 장르를 규정하기 어려운 공연을 선보인다.

전통에서 벗어난 무대를 위트레흐트 고음악축제, 라이프치히바흐페스트, 빈 콘체르트하우스 등에서 잇따라 선보이면서 이 악단에는 ‘고음악의 무법자’란 별명이 붙었다.
유럽 고음악단 '아트하우스17'의 공연 모습. /사진출처. 아트하우스17.
유럽 고음악단 '아트하우스17'의 공연 모습. /사진출처. 아트하우스17.
파격적인 무대로 공연 문법을 바꾼 아트하우스17이 한국에 온다. 다음달 10일 고양을 시작으로 인천, 세종, 대구, 통영 등 한국 5개 도시를 돈다. 방한을 앞두고 미하엘 헬 하프시코드·리코더 연주자, 토마스 회프트 연출가, 게오르크 크로나이스 비올라 다 감바·바로크첼로 연주자 등 이 악단의 공동예술감독 3인이 한국 언론과 화상 인터뷰를 했다.

헬은 “당대 악기로 고음악을 연주하는 건 작곡가가 처음 노래를 만ㄷ늘었던 그 시대의 소리를 찾아가는 출발점”이라면서도 “300년전 공연을 그대로 재현하는 건 불가능하고, 우리가 지향하는 방향도 아니”라고 말했다.

“음악 뒤엔 담긴 무수한 요소를 재창조 할 것”

아트하우스17은 오스트리아 그라츠에 기반을 두고 2018년 결성됐다. 결성을 주도했던 헬은 그라츠 국립예술대학교 교수이자 하프시코드(피아노 이전에 주로 쓰인 건반악기)와 리코더 모두를 다루는 연주자.

그는 “오늘날 많은 음악가들이 기계를 모방하면서 호흡 같은 인간의 연주 방식을 무시하고 있다”며 “인간이 부르는 노래야말로 가장 이상적인 예술인 만큼 전 성악가의 프레이징이나 호흡을 연주에 적용하려 한다”고 설명했다.
유럽 고음악단 '아트하우스17'의 공동예술감독들. 왼쪽부터 게오르크 크로나이스, 토마스 회프트, 미하엘 헬. /사진출처. 아트하우스17.
유럽 고음악단 '아트하우스17'의 공동예술감독들. 왼쪽부터 게오르크 크로나이스, 토마스 회프트, 미하엘 헬. /사진출처. 아트하우스17.
또 다른 예술감독인 회프트는 오페라 연출가이자 작가다. 음악에 연극적 요소를 넣는 일을 하지만 무조건 규칙을 깨려는 건 아니다. 그는 “음악이 전달하는 소리만으로도 충분히 이야기가 나온다”며 “다른 예술 요소는 음악을 도와줄 수 있는 방식일 때만 넣는다”고 했다. 다만 고음악이 연주된 맥락을 고려해 옛 연주의 분위기를 오늘날 어떻게 되살릴지 고민한다.

“지금 같은 형태의 클래식 음악 연주가 시작된 건 19세기부터입니다. 음악은 종교 행사나 권력가와 관련된 행사에서 주로 연주됐죠. 음악 겉에 보이는 건 표면일 뿐이고 그 뒤엔 많은 요소가 담겨 있습니다. 저흰 음악을 그저 소리로만 국한하고 싶진 않았습니다. 음악과 관련된 무수한 요소들을 재창조하고, 부활시키고 싶다는 게 저희의 목적이죠.”(회프트)
유럽 고음악단 '아트하우스17'의 공동예술감독인 미하엘 헬. 하프시코드와 리코드를 연주한다. /사진출처. 아트하우스17.
유럽 고음악단 '아트하우스17'의 공동예술감독인 미하엘 헬. 하프시코드와 리코드를 연주한다. /사진출처. 아트하우스17.
같이 예술감독을 맡고 있는 크로나이스의 이력도 독특하다. 그는 그라츠 공과대학교 전기공학 석사 출신이면서 미국 MIT 슬론 경영대학원에서 소셜미디어 매니지먼트를 공부한 비올라 다 감바·첼로 연주자다. 크로나이스는 무법자란 별명처럼 새롭게 깨고 싶은 오늘날의 공연 관습으로 “청중의 박수”를 꼽았다.

“클래식 연주에선 모든 악장이 끝나고 맨 마지막에 청중들이 박수 치는 게 관례잖아요. 그런데 자유롭게 치고 싶을 때 박수를 치면 어떨까 합니다. 감정이 고조됐을 때 박수를 치는 거죠. 재즈 클럽에서도 그럴 때 자연스러운 박수가 나오잖아요.” (크로나이스)
유럽 고음악단 '아트하우스17'의 공동예술감독인 게오르크 크로나이스. /사진출처. 아트하우스17.
유럽 고음악단 '아트하우스17'의 공동예술감독인 게오르크 크로나이스. /사진출처. 아트하우스17.
오스트리아 17세기 궁정을 되살린다

한국 공연은 1·2부로 나눴다. 1부는 그라츠에 있는 17세기 성인 ‘에겐베르크 성’을 배경으로 한 고음악 콘서트를 준비했다. 건축, 천문학 등의 요소를 섞은 복합 공연이다. 이 악단에게 ‘박물관계의 오스카’로 불리는 뮤지엄 앤 헤리티지 어워즈에서 ‘올해의 국제 전시상’을 지난 5월 안겨줬던 공연이기도 하다. 회프트는 “당시 궁전은 곧 극장이자 무대였다”며 “무대에 초점을 맞춰 연출이 강조되는 공연을 선보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2부 공연인 ‘기억해주오’는 유럽 역사의 어두운 그늘인 강제 이주를 다룬다. 빈 콘체르트하우스가 유대인의 홀로코스트(나치 독일이 유대인을 학살한 사건) 추모를 위해 이 악단에게 의뢰했던 작품이다.

1부 공연보다 무대 연출이 더 가미된다고. 연주자들은 공연 주제에 맞춘 별도 의상도 준비했다. 회프트는 “홀로코스트보다 더 보편적인 테마를 다루려 한다”며 “고향을 떠나 새로운 집을 찾아야 했던 이들의 불안을 멜로디로 기억하면서 오늘날 새로운 고향을 찾고자 하는 이들을 위로하려 했다”고 말했다.
유럽 고음악단 '아트하우스17'의 공동예술감독인 토마스 회프트. /사진출처. 아트하우스17.
유럽 고음악단 '아트하우스17'의 공동예술감독인 토마스 회프트. /사진출처. 아트하우스17.
에겐베르크 성이나 홀로코스트는 한국인에겐 다소 생소할 수 있는 소재들이다. 그럼에도 회프트는 “우리가 전할 이야기가 한국 관객에게도 같은 인간으로서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우린 청중과의 양방향 소통을 기대합니다. 어떤 반응을 보이실지 기대가 큰데요. (한국에서) 새로운 소통이 일어날 거라고 생각합니다. 기존의 익숙했던 청중 반응과 닮을 수도, 다를 수도 있을 텐데요. 긍정적인 충격과 놀라움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회프트)
유럽 고음악단 '아트하우스17'의 공연 모습. /사진출처. 아트하우스17.
유럽 고음악단 '아트하우스17'의 공연 모습. /사진출처. 아트하우스17.
이주현 기자 de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