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예명작전 전시전경.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 제공
공예명작전 전시전경.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 제공
양구의 흰 흙, 동해의 검은 안료, 원주의 옻과 닥나무, 평창의 삼…. 강원에서 난 재료가 강원도 사람의 손을 거쳐 그릇과 종이와 천이 됐다. 그 손이 남긴 작품들을 만나는 공예 전시 '호모 파베르/호모 센티엔스: 제작하다, 감각하다'가 지금 강원 원주 학성동 학성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다.

이번 전시는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공진원)의 순회전 '찾아가는 공예명작전'의 강원권 전시다. 찾아가는 공예명작전은 공예 명작 600여 점을 들고 전국 4개 권역 전시장 13곳을 도는 순회전으로, 지난 7월 충청과 호남·제주, 8월 영남에 이어 강원이 마지막 권역이다.

기획은 지난해 청주공예비엔날레 책임큐레이터를 지낸 오가영 큐레이터가 맡았다. 작가와 단체 27팀이 136점을 내놨다. 제목의 호모 파베르는 '만드는 인간', 호모 센티엔스는 '느끼는 인간'이라는 뜻이다. 재료를 만진 사람의 손 감각이 작품에 흔적으로 남고, 보는 사람은 그 흔적에서 만드는 과정을 읽는다는 게 기획의 뜻이다. 전시는 재료를 있는 그대로 보는 '물성', 작가가 재료를 바꾼 '변형', 공간으로 넓히는 '확장' 3부로 짜였다.
공예명작전 전시전경.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 제공
공예명작전 전시전경.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 제공
1부에는 강원에서 난 재료가 모였다. 천욱환은 조선시대 관요에 백토를 대던 양구의 흙으로 높이 52㎝짜리 '백자 대호'를 빚었다. 강원 무형유산 흑자장 김병욱은 강원도의 철분 많은 유약을 입혀 검게 굽는 흑자로 달항아리 모양의 '무심-유심'을 내놨다. 검은 표면 속에 갈색과 붉은색, 푸른색이 부분부분 비친다. 원주 한지장 장응열은 3대째 닥나무 재배부터 종이뜨기까지 전통 방식으로 한지를 만들고, 평창방림삼베 민속보존회는 삼을 쪄서 실을 잇고 베를 짜는 과정을 삼베 꾸리와 한 필로 보여준다.

강릉에서 3대째 방짜공방을 잇는 방짜수저장 김우찬은 숟가락 10점과 젓가락 5점을 나란히 놓았다. 구리와 주석을 섞은 놋쇠를 불에 달궈 두드리고 15번 넘게 담금질해 만든 것들이다. 손잡이가 크게 휜 것과 곧게 뻗은 것, 끝이 제비 꼬리처럼 갈라진 것이 한 줄에 놓여 있어 같은 숟가락이 손에 따라 얼마나 달라지는지 눈에 들어온다.

김윤배는 참나무 띠에 증기를 쐬어 손으로 구부린 뒤 불을 질렀다. 높이 118㎝의 검은 회오리 '나무를 구부리고 형태가 드러나는 날'의 표면에는 불에 터지고 갈라진 자국이 그대로 남아 있다. 이태훈이 입으로 불어 만든 분홍빛 유리 '봄의 홑 씨' 안쪽에는 숨의 흔적이 남았다.

2부 '변형'에서 박예린은 백자 흙 한 덩이를 물레로 기둥처럼 올려 말린 뒤 칼로 깎았다. 그리고 가는 축에 얇은 층이 겹친 탑을 세웠다. 탑은 가마 안에서 열과 무게를 못 이기고 휘었다. 김덕호는 흰 흙과 푸른 흙을 함께 반죽해 물레로 올린 뒤 표면을 칼로 깎았다. 대리석 같은 무늬가 드러난 길쭉한 항아리 '흔적'이다.
공예명작전 전시전경.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 제공
공예명작전 전시전경.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 제공
전승 공예 쪽도 볼거리가 풍부하다. 국가무형유산 입사장 보유자 승경란은 손바닥만 한 철제 합의 표면을 정으로 수만 번 쪼아 홈을 내고 은실과 금실을 박아 학과 구름, 모란을 새겼다. 강릉전통자수장 김순덕은 강릉에서 혼례 때 예물을 싸던 보자기를 재현했다. 채화칠장 양유전은 옻 산지 원주에서 옻에 천연 안료를 섞어 접시에 가오리와 거북이가 헤엄치는 바다를 그렸다. 박성열은 굳어가는 옻을 실처럼 늘여 쌓는 연칠 기법으로 나무도 흙도 없이 옻만으로 그릇을 세웠다.

낯선 재료도 있다. 김용주의 주재료는 '찍찍이'로 통하는 벨크로다. 염색한 벨크로를 하키스틱 모양으로 잘라 겹겹이 쌓고 바느질로 고정해 목걸이와 브로치를 만들었다. 가까이 보면 뫼비우스의 띠처럼 안팎 구분 없이 이어진다. 권슬기는 실리콘을 부풀려 생명체를 닮은 브로치를, 김준수는 가죽을 가늘고 긴 띠로 잘라 한 줄씩 이어 붙여 위로 갈수록 좁아지는 높이 128㎝의 기둥을 만들었다.
공예명작전 전시전경.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 제공
공예명작전 전시전경.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 제공
3부 '확장'에서 정호연은 폴리에스터 그물과 오간자로 만든 주머니 모양의 개체들을 스테인리스 철사로 이어 천장에 매달았다. 관객이 자리를 옮길 때마다 개체들의 겹침과 그림자가 달라진다. 박성욱은 납작한 흙 조각을 묽은 흙물에 담갔다 꺼내는 덤벙기법으로 색을 입혀 벽에 모았다. 가까이서는 조각마다 다른 색이, 멀리서는 하나의 화면이 보인다. 전시는 오는 11월 24일 국립춘천박물관, 내년 1월 22일 강릉아트센터로 옮겨간다. 관람은 무료. 전시는 10월 24일까지.

*본 기사는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의 지원을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