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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 급등에 각국 재정 부담 가중…'보조금의 늪' 빠진 세계 경제
21일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지난 주 브렌트유가 배럴당 110달러에 근접하고 미국과 독일 등에서 주유소 연료가격이 사상 최고 수준으로 오르면서 각국 정부에 지원 확대 요구가 몰리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 자료를 FT가 분석한 결과 연료 보조금을 도입한 국가는 지난 4개월 동안 16개에서 9월 초 38개로 두 배 이상 늘었다. 에너지세를 낮춘 정부도 4월 말 40곳에서 57곳으로 증가했다. 소비자 지원책을 운영하는 국가는 56곳에서 94곳으로 늘었다.
유럽에서는 지원 연장이 잇따르고 있다. 프랑스는 당초 9월 말 종료할 예정이던 장거리 운전자 지원책을 최근 연장했다.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총리는 높은 연료비에 직면한 운전자 지원 방안을 “매우 조만간” 발표하겠다고 밝혔고, 영국에서도 앤디 버넘 총리가 다음 달 경제계획을 공개할 때 저소득 가구 지원책을 내놓으라는 압박을 받고 있다.
이 같은 정책은 정부 재정을 추가로 압박할 가능성이 크다는 우려다. 인플레이션이 다시 높아지고 중앙은행들이 금리를 올리면서 글로벌 국채시장이 약세를 보이고 있으며 미국 정부의 차입비용은 지난주 2007년 이후 가장 높은 수준까지 상승했다. 국제통화기금(IMF) 등 국제기구는 에너지 지원을 좁은 대상에 한정하고 한시적으로 운영해야 한다고 권고하고 있다.
파샤 마흐다비 UC샌타바버라 에너지 거버넌스·정치경제 연구소장은 정부가 "소비자 고통을 줄이려 하지만 보조금은 한 번 도입하면 철회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발디스 돔브로우스키스 유럽연합(EU) 경제담당 집행위원도 국채 수익률의 “뚜렷한 상승”을 언급하며 회원국들이 중기 재정계획 목표를 지키고 신중한 재정정책을 우선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유럽은 겨울을 앞두고 에너지 공급 측면에서도 취약한 상황이다. EU의 가스 저장량은 사상 최저 수준이며 통상 유럽은 겨울철 사용량의 약 3분의 1을 비축 가스로 충당한다. 전력과 난방의 가스 의존도가 높은 영국은 일반 가구의 에너지요금이 10월 4% 오를 예정이며, EDF는 도매가격 흐름에 따라 내년 1월에는 추가로 26% 상승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G7 국가들이 앞으로 몇 주 안에 전략 비축유와 연료의 추가 방출 문제를 논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동남아시아도 고유가 충격이 재정문제로 번지고 있다.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 태국 등 주요 경제국은 연료가격에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어 유가 상승이 곧 국가예산 부담 증가로 이어진다. 인도네시아는 보조금을 유지하겠다고 약속한 반면 태국은 재정 압박 때문에 지난 3월부터 보조금을 축소해 왔다.
세계 최대 석유·가스 생산국인 미국도 에너지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미국 디젤 가격은 갤런당 약 6.45달러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2월28일 이란 공격 이후 70% 상승했다. 일부 주 정부는 전쟁 초기 한시적인 세금 면제 조치를 시행했지만 연방정부 차원의 보조금이나 감세는 아직 도입되지 않았다. FT는 "에너지 위기가 길어질수록 각국 정부는 물가 충격을 완화해야 한다는 정치적 압력과 재정건전성을 지켜야 한다는 금융시장 압박 사이에서 선택을 요구받게 될 것"으로 전망했다.
김동현 기자 3cod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