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REUTERS
사진=REUTERS
이란 전쟁 여파로 자동차 엔진용 모터오일의 핵심 원료 공급이 막히면서 미국에서 가격이 급등하고 일부 판매점과 정비업체가 품귀를 겪고 있다. 원유와 휘발유·경유보다 모터오일 원료 가격이 훨씬 빠르게 오르면서 차량 유지비와 정비업계 비용 부담으로 충격이 번지고 있다.

21일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신형 차량에 주로 쓰이는 완전 합성 모터오일의 원료인 ‘그룹Ⅲ 기유’ 미국 가격은 지난 2월 이후 거의 4배로 뛰었다. 원자재 정보업체 아거스미디어에 따르면 그룹Ⅲ 기유 가격은 18일 갤런당 12.45달러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글로벌 모터오일 공급난이 심화하면서 오일 교환점의 재고가 바닥나고 미국 유통업체는 소비자 구매량까지 제한하기 시작했다.

코스트코 홀세일은 완전 합성 모터오일 한 제품의 10쿼트 가격을 57.99달러로 올리고 고객당 한 개만 구입할 수 있도록 제한했다. 이 제품은 지난해만 해도 약 30달러에 판매됐다. 월마트 웹사이트에서도 이번 주 여러 브랜드의 재고가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 월마트는 고객이 기대하는 낮은 가격에 제품을 공급할 수 있도록 공급업체들과 긴밀히 협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공급 차질의 출발점은 지난 3월이었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대이란 전쟁에 대한 보복으로 이란이 카타르의 대형 셸 가스 액화(GTL) 공장을 공격해 시설이 손상됐다. 이 공장은 그룹Ⅲ 기유의 주요 생산기지다. 여기에 호르무즈 해협에서 군사적 대치가 이어지면서 걸프 지역 원유를 세계 주요 기유 생산국인 한국으로 운송하는 유조선 운항도 차질을 빚었다.

모터오일은 판매량 자체는 크지 않지만 내연기관 내부를 윤활한 필수 제품이다. 전 세계 윤활유용 기유 수출량은 통상 하루 약 35만배럴로, 하루 1억배럴이 넘는 세계 석유시장에 비하면 매우 작은 규모다. 공급 시장이 작다 보니 일부 핵심 생산시설과 해상 운송으로의 차질이 가격과 재고에 빠르게 반영되고 있다. 에너지와 식품, 주거비 상승으로 생활비 부담을 호소하는 소비자들에게 차량 정비 비용까지 추가되는 상황이다.

미국 오일 교환·자동차 정비 체인 지피루브의 마우리시오 케사다 최고경영자(CEO)는 "일부 지역에서 일시적인 재고 부족을 감수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피루브는 지난 7월 셸이 사모펀드에 13억달러에 매각하기 전까지 셸 소속이었으며, 매각 이후에도 모터오일 대부분을 셸의 펜조일 사업에서 공급받고 있다고 케사다는 설명했다. 그는 산발적인 공급 부족에도 현재 약 2100개 지피루브 매장에서는 제품을 사용할 수 있다며 고객들은 차량 정비를 미룰 수 없다고 말했다.

뉴욕증시에 상장된 오일 교환 체인 밸브 라인은 상황이 상대적으로 안정적이다. 주요 모터오일 공급업체가 사우디아람코인 밸브 라인은 약 2500개 매장에서 공급 부족은 없다고 밝혔다. 다만 3월 이후 윤활유 비용이 60% 상승하자 이를 상쇄하기 위해 오일 교환 가격을 5~7달러 올렸다. 로리 플리스 밸브라인 CEO는 이번 주 골드만삭스 유통 콘퍼런스에서 향후 가격 방향을 묻는 질문에 “더 높아질 것”이라고 답했다.

공급 정상화에도 시간이 필요할 전망이다. 플리스 CEO는 호르무즈 해협이 완전히 개방된 뒤에도 그룹Ⅲ 기유 공급이 분쟁 이전 수준으로 회복되기까지 4~6개월이 걸릴 것으로 예상했다. 특히 대형 석유회사와 장기 공급계약을 맺지 못한 독립 정비업체와 블렌딩 업체가 더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뉴저지주 래피드루브의 소유주 마이크 테일러는 대기실 벽에 붙여 놓은 인상된 오일 교환 가격을 본 고객들이 고개를 저을 정도라고 말했다. 그는 미국 휘발유 가격이 2022년 갤런당 사상 최고치인 5달러까지 올랐을 때조차 지금 같은 상황은 없었다며, 완전 합성 모터오일의 대용량 물량을 확보하는 일이 현재는 “될 때도 있고 안 될 때도 있다”고 설명했다.

블렌딩 업체의 사정도 비슷하다. 독립윤활유제조업협회의 홀리 알파노 CEO는 그룹Ⅲ 기유를 구매하는 업체가 공급계약을 맺고 있더라도 많은 경우 할당제를 적용받아 계약 물량 전부를 받지 못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계약이 없는 업체들은 그룹Ⅲ 기유를 구하기 위해 곳곳에 연락하고 있지만 물량 확보 자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덧붙였다.

자동차 업체들은 공급 부족을 완화하기 위해 새로운 모터오일과 윤활유 배합으로 전환하는 방안도 시도하고 있다. 석유산업 표준을 정하는 미국석유협회(API)는 다른 기유 공급원으로 전환하려는 판매업체들을 위해 긴급 임시 허가 제도를 발동했다. 그러나 아거스미디어의 미국 기유 가격 담당 존 디트리히는 완전 합성 오일에 엄격한 배합·시험 요건이 적용되기 때문에 모터오일 블렌딩 업체들이 실제로 원료를 쉽게 바꾸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주완 기자 kjw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