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 외교부 장관이 17일 인천국제공항에서 마코 루비오 미국 국무부 장관과의 회담을 위해 출국하기 전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뉴스1
조현 외교부 장관이 17일 인천국제공항에서 마코 루비오 미국 국무부 장관과의 회담을 위해 출국하기 전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뉴스1
미국이 한국 정부에 대미 투자 연간 한도(200억달러)의 절반가량을 연내 송금하라고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해 맺은 한·미 전략투자 양해각서(MOU)에 배치되는 요구 사항이다.

17일 정부 안팎에 따르면 미국은 한국 정부에 연간 대미 투자 금액 한도의 절반가량을 연말까지 송금하라고 요구했다. 양국은 지난해 합의한 2000억달러 규모 전략투자(조선업 협력 1500억달러 제외) MOU에서 연간 한도를 200억달러로 정하고, 사업 진행 정도에 따라 자금 수요가 생기면 송금하는 ‘캐피털콜’ 방식을 채택했다.

18일로 예상된 대미 투자 1호 프로젝트 MOU 체결이 돌연 연기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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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한국 정부에 투자금 약 100억달러를 먼저 송금하라고 요구한 건 11월 중간선거는 다가오는데 투자 프로젝트 확정이 지연되고 있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선거전에서 ‘한국을 상대로 막대한 투자를 이끌어냈다’는 성과를 과시해야 하는데 상업적 합리성을 중시하는 한국과의 협상이 지연되자 ‘돈부터 보내라’고 요구했다는 것이다. 한국으로서도 대미 투자가 더 늦춰지면 양국 관계가 악화할 가능성이 있어 절충점을 찾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문제는 미국의 요구가 지난해 양국이 한·미 대미 투자 양해각서(MOU)에서 합의한 사항에 배치된다는 점이다. 당초 양국은 대미 전략 투자금 총 2000억달러를 연 200억달러 한도로 나눠 집행하기로 했다. 투자처가 정해지면 사업 진행 속도에 맞춰 필요한 현금을 송금하는 ‘캐피털 콜’ 방식이다. 급격한 달러 수요 증가에 따른 외환시장 부담을 덜기 위한 조치였다. 미국이 정치적 필요에 따라 기존 합의를 뒤집을 수 있다는 신호로 받아들여지면 안정된 외환시장이 다시 불안해질 수 있다.

당초 정부는 이달 대미 투자 프로젝트를 확정하고 4분기에 약 20억달러를 보내는 방안을 검토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미전략투자공사(KUIC)는 최대 20억달러 규모 외화채권을 발행하기로 하고 최근 국내외 주요 투자은행(IB)에 주관사 선정 입찰제안요청서(RFP)를 발송했다. 미국의 약 100억달러 송금 요구는 이 같은 우리 정부의 자금 조달 계획을 훌쩍 뛰어넘는 수준이다. 미국 요구에 부응하려면 외화채 발행 규모를 늘리거나 외환보유액을 예상보다 더 활용해야 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올해 본격적으로 투자가 집행되기를 기대한 미국으로서는 한국이 투자 약속을 지킨다는 것을 보여줄 일종의 보증금이 필요하다는 분석도 있다. 한 통상 전문가는 “양국이 투자처를 일찌감치 확정해 사업을 추진했다면 100억달러 정도는 올해 미국에 보냈어야 할 금액”이라고 말했다. 한국이 선(先)송금을 거부할 명분이 크지 않다는 뜻이다.

양국 협상은 개별 프로젝트 단위에서도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한국은 미국이 제안한 웨스팅하우스 지분 투자와 관련해 ‘지분 15% 이상과 이사회 의석’을 요구하고 있지만, 미국은 그보다 낮은 5~10% 지분만 가능하다는 입장인 것으로 전해졌다. 한국의 이사회 참여에도 부정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대미 투자 1호 프로젝트로 거론되는 미국 텍사스주 엔시날 가스복합화력발전소 사업, 알래스카 액화천연가스(LNG) 프로젝트를 두고도 여전히 의견 차이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부 안팎에서는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이 조만간 미국을 다시 찾을 가능성도 거론된다. 정부 관계자는 “미국과의 협상이 밀도 있게 이뤄지고 있다”며 “법과 절차에 따라 국익을 최우선으로 두고 협상하겠다”고 말했다.

한재영/김대훈/최해련 기자 jy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