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바이오 등 첨단 거점 개발
금융 개방성 통해 성장한 홍콩에
제조 중심 계획경제 모델 끼워넣어
싱가포르와 금융허브 경쟁 영향
중국이 본토에서 시행되는 ‘경제 개발 5개년 계획’을 홍콩에 적용하기로 했다. 홍콩이 중국에 반환된 1997년 이후 처음이다. 본토와의 제도 및 경제 통합을 가속화하려는 의도인 것으로 분석된다. 제조업 위주의 중국 경제에서 작동하던 5년 단위 계획경제 모델이 금융산업 중심인 홍콩에서는 통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홍콩에 적용되는 계획경제
홍콩 정부는 지난 16일 ‘경제·사회 발전 제1차 5개년 계획’을 발표했다. 올해부터 2030년까지 경제 청사진을 담은 이번 계획을 통해 홍콩의 국제금융 및 해운, 항공허브 등 기존 경쟁력을 강화한다는 방침이다. 국제 혁신기술센터와 글로벌 인재 허브로 육성한다는 내용도 담았다.
특히 반도체와 인공지능(AI), 로봇, 바이오 등 혁신산업 관련 지출을 크게 늘리기로 했다. 2024년 국내총생산(GDP)의 1.63%이던 비중을 2030년 3%로 끌어올린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홍콩 민관이 매칭 형식으로 400억홍콩달러(약 7조원) 규모 펀드를 조성하기로 했다.
중국 경제와의 연계성 강화도 눈에 띈다. 북쪽 선전과 맞닿은 지역을 첨단산업과 주거가 결합된 신성장 거점으로 개발한다는 것이다. 2030년까지 주택 7만 가구를 공급하고 장기적으로 65만 개 일자리를 공급할 예정이다. 홍콩의 기존 산업 생태계와 이질적인 반도체, 바이오 등에 투자를 확대하는 것도 중국 대륙에서 같은 기간 시행되는 15차 5개년 계획과 관련됐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中 계획경제, AI로 업그레이드
홍콩에 대한 5개년 계획 시행은 국가 단위 계획경제 운용에 대한 중국 정부의 자신감이 높아진 결과라는 평가가 나온다.
중국 정부는 올해 시행되는 15차 5개년 계획부터 AI와 빅데이터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계획경제 시행 과정에서 현장의 필요를 제때 파악하지 못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다. 상부가 제시하는 목표를 맞추느라 지방정부가 특정 분야에 과잉 투자하는 문제도 AI의 데이터 처리로 미리 파악해 차단한다는 계획이다.
이에 경제 계획 수립을 위한 정책 수요 파악부터 행정 처리, 위험 감지에까지 AI를 활용하고 있다. 이를 통해 공급망, 물류, 전력, 고용 등 방대한 실시간 데이터를 활용해 정책 효과를 추적하고 자원 배분을 조정할 예정이다.
중국 정부의 경제 계획 운영 방식도 바뀌고 있다. 과거 중앙정부가 철강 및 석탄 등 주요 생산량과 투자 규모를 결정해 지키도록 하는 경직적인 모습에서 변하고 있다. 기술과 산업 등의 큰 방향을 정하고 그에 맞춰 재정과 금융, 연구개발, 인프라, 인재 정책 등을 유연하게 연결하는 방식이다.
중국 정부 관계자는 “기존에는 5개년 계획이 고정된 목표를 제시했다면 최근 들어선 데이터 기반의 지속적인 점검과 조정 시스템으로 바뀌고 있다”고 설명했다.
◇홍콩에도 들어맞을까
문제는 이 같은 계획경제 구조가 홍콩 같은 금융 중심 경제에서 성공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것이다. 당장 이번 5개년 계획에는 홍콩 금융시장에서 역외 위안화 상품을 확대하고, 공공지출 결제에 위안화 사용을 장려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한 글로벌 금융사 관계자는 “시장의 필요가 아니라 정부 지시에 따라 홍콩에 있는 금융회사가 출시 상품 등을 결정해야 할 수 있다”며 “정부의 계획으로 금융산업 경쟁력을 높인 사례는 세계적으로 거의 찾아볼 수 없다”고 말했다. 대외 개방성을 강점으로 성장한 홍콩 금융산업 흐름과도 이질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는 싱가포르와 벌이고 있는 아시아 금융허브 경쟁에도 변수가 될 전망이다. 지난해 글로벌금융센터지수에서 홍콩은 756점으로 3위, 싱가포르는 1점 뒤진 755점으로 4위에 올랐다.
일각에서는 중국식 경제 계획 모델 적용으로 홍콩 경제 외형이 단기간에 확대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중국 첨단기술 기업들이 자금 조달 창구로 홍콩을 활용하는 사례가 늘어날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장기적으로는 중국 금융시장과 연결된 홍콩, 서구 금융시장의 아시아 중심지로서 싱가포르가 경쟁하는 구조가 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