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장 칼럼] 야간 증시 개장의 명암
오늘부터 국내 주식시장의 거래 시계가 바뀐다. 한국거래소가 오후 4시부터 8시까지 실시간 매매가 가능한 ‘애프터마켓(야간장)’을 도입하면서 국내 증시는 새로운 변곡점을 맞았다. 거래소는 애프터마켓을 도입한 배경으로 낮 시간 주식 거래가 어려운 직장인 투자자에게 실시간 투자 기회를 보장하고 대체거래소와의 경쟁에서 주도권을 잡겠다는 명분을 내세우고 있다. 거래소 정규장 마감 후 미국 뉴욕증시 프리마켓, 글로벌 경제지표, 기업 공시 등 돌발 변수가 발생했을 때 다음 날 오전까지 기다리지 않고 실시간 ‘퇴근길 투자’로 대응할 수 있는 길이 열렸지만 시장에선 기대와 우려가 공존한다.

가격 왜곡과 정보 비대칭 심화

시장이 애프터마켓을 무조건 환영하지 못하는 이유로 우선 얇은 호가와 가격 왜곡 심화를 꼽는다. 최근 코스피지수가 박스권에 갇힌 후 일평균 거래대금이 크게 줄어든 상황에서 거래 시간만 늘어나면 유동성만 분산될 뿐이다. 또 유동성이 작은 시장에선 얇은 호가에 적은 자금으로 주가가 급등락하는 현상이 빈번해져 야간장에 참여한 개인이 의도치 않게 손실을 볼 위험이 커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증권사 관계자는 “기관과 외국인 투자자 중심의 알고리즘 매매가 애프터마켓을 교란해 구조적 불평등을 야기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고도화된 프로그램 매매가 유동성 공백을 틈타 시세 차익을 노린다면 상대적으로 정보 비대칭과 시스템 열위에 놓인 개인은 무방비로 손실 위험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야간 시간대 시장 감시와 불공정거래 적발 시스템이 정규장만큼 촘촘하게 가동될 수 있을지 의구심이 제기된다.

애프터마켓에서는 공시 사각지대에서 발생할 정보의 비대칭이 심화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상장사의 횡령, 배임, 부도 등 치명적인 악재가 발생했을 때 거래소가 해당 종목에 신속하게 거래정지 조치를 내리지 않거나 해당 정보가 적시에 전달되지 않으면 야간 거래는 개인투자자의 ‘지뢰밭 베팅’을 부추기는 요인이 된다. 개인이 선호하는 상장지수펀드(ETF)와 상장지수증권(ETN)이 변동성 우려로 대부분이 거래 대상에서 빠지고, 지정가 주문만 허용된 점도 거래 실효성을 크게 떨어뜨릴 수 있다.

'반쪽 제도' 우려 씻으려면

증권가 실무자의 볼멘소리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하반기 하루평균 거래대금이 크게 줄었는데 단순히 거래 시간을 늘린다고 시장 파이를 키울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증권사들은 전산 시스템 유지비와 야간 인력 확충이라는 고정 비용만 늘어날 뿐 실질적인 브로커리지 수익 증대를 기대하기 어렵다.

결국 애프터마켓이 주식 거래의 ‘양적 확대’를 넘어 진정한 ‘질적 도약’으로 안착하기 위해서는 제도 외형을 늘리는 데 급급할 게 아니라 유동성 보완 장치, 정보의 투명성, 강력한 시장 감시망이라는 촘촘한 안전판이 선행돼야 한다. 이제 막 문을 연 야간 거래는 한국 자본시장의 성숙도를 가늠하는 시험대다. 거래소와 금융당국은 시행 초기 나타날 부작용을 면밀히 추적하고 투자자 보호와 시장 건전성 등을 지킬 수 있도록 기민한 안전장치를 가동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