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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속 ‘위험’의 두 얼굴
영화 <오디세이>의 국내 관객 수가 1천만 명을 돌파했다 합니다. 최대 흥행작인 <명량>의 관객 수 1761만 명을 넘어설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두 영화는 전혀 다른 시공간과 세계관 속에서 펼쳐집니다. 모두 전쟁을 소재로 했지만 <오디세우스>는 침략자의 편인 이타카의 왕(신화적 영웅)이고, <이순신>은 침략에 맞선 조선의 장수(역사적 영웅)로서 이야기의 흐름과 결은 대조적입니다.
전쟁에는 큰 '위험'이 따릅니다. 그런데도 인류역사상 전쟁이 끊이지 않는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잃을 것보다 얻을 게 더 많다는 실리적 이유도 그중 하나일 듯합니다. '이익'을 취하려고 '위험'을 감수하는 것은 주로 전쟁을 일으키는 편의 입장입니다.
반면, 침략을 당하는 쪽으로 몰려드는 사태는 오직 부정적 의미의 재앙과도 같은 '위험'입니다. 어느 편에서 보는지에 따라 위험이란 말의 의미는 다르게 다가옵니다. 이렇듯 전쟁 속 위험은 두 개의 얼굴을 갖고 있습니다.
금융투자상품 속 ‘위험’의 다의성
전쟁과 유사하게 금융투자상품에도 '위험'이 따릅니다. 금융상품 중에서 투자원금의 손실 가능성(즉, 위험성)이 있는 상품인 주식, 채권, 펀드, 파생상품 등을 금융투자상품이라 하므로, '위험성'이야말로 금융투자상품의 속성입니다.
바로 이 '위험성'에 '투자성'이 있습니다. 즉, 발생 여부가 불확실하던 '위험'이 실현되지 않으면 이익을 얻고, 실현되면 손실을 보는 것으로, '위험'이 미확정인 상태에 '투자성'이 있습니다.
이처럼 금융투자는 '위험'을 감수한 채 '이익'을 얻고자 의도와 욕망에서 나옵니다. 이는 마치 '이익'을 취하기 위해 '위험'을 감수하고 전쟁을 치르는 것과 닮았습니다. 500년 전에 나타난 최초의 모험적 금융투자라 할 만한 무역선 사업 투자에서부터 이러한 점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풍랑 등을 이겨내고 무역선이 귀환하면 일거에 수익률 1000% 이상의 거대한 부를 손에 넣을 수 있었지만, 실패하면 거금을 날릴 '위험'이 상존했습니다. 당시 자금을 가진 왕족과 상인들은 기꺼이 그 '위험'을 감수했습니다. <오디세우스>가 트로이전쟁에 참전했듯 말입니다.
그런데 17세기의 튤립 투자 버블 사태, 1990년대의 닷컴버블 사태, 2008년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등에서 보듯, '위험'이 증폭되고 있음에도 과도한 금융상품화와 투자 광풍의 기세는 실현 중인 '위험'을 투자의 '기회'로 보이게 만들었습니다. 이 광풍에 뛰어든 사람들은 '이익'을 위해 '위험'을 감수한 <오디세우스>에 가까울까요, 아니면 재앙과도 같이 몰려오는 '위험'만을 뒤집어쓴 피해자로 보아야 할까요?
전쟁과 유사하게, 금융투자에서도 '위험'은 참으로 다의적입니다.
금융기관의 임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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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소비자들은 금융투자상품 속 '위험'의 다의성을 어떻게 분별하며 금융투자에 임해야 할까요? 이에 대한 원론적인 답은 명료할 수 있습니다. 상품 이면에 있는 '실체'에 접근해 그 가치와 위험 등을 분석해 감당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투자 여부를 판단하라는 것입니다.
예컨대, 주식투자는 해당 종목의 기업가치와 위험, 선박 투자는 해당 선박의 가치(용선료의 현금흐름)와 위험, 리츠(REITs) 투자는 해당 건물(분양대금과 임대료의 현금흐름)의 가치와 위험 등을 분석해 투자할 만할 경우 자기책임 하에 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개별 투자자가 그러한 과정을 거쳐 투자하기를 기대하는 것은 비합리적입니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자료를 수집하기 어렵고, 분석할 역량이나 전문성을 갖지 못한 경우가 허다하며, 전문가에게 맡길 경우 큰 비용이 발생할 것이므로, 결국 거래비용이 투자할 돈보다 더 커져 투자로 나아가지 못하는 역설이 생길 것입니다.
여기에 금융기관의 존재 의의가 있습니다. 금융기관은 금융상품의 설계, 중개, 판매, 운용 등의 역할을 하는 과정에서 ① 일차적으로 '위험' 자료를 수집·분석하고, ② '위험'을 낮추고 관리하기 위한 신용보강(담보, 보증, 보험, 후순위보강), 안전장치 등을 강구해 상품을 설계하며, ③ '위험' 요소를 고객에게 설명하고, ④ '위험'에 대응해 상품 운용을 하며 고객의 수익 실현을 위해 기능합니다.
금융분쟁의 예측 불가능성
위와 같은 금융기관의 역할, 복잡한 프로젝트를 배경으로 하는 금융상품의 난해성, 금융정보의 비대칭성, 금융 분석 역량의 격차, 거래비용 등의 문제로 금융투자상품의 '위험'에 관한 공이 알게 모르게 금융기관으로 넘어가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에 금융투자손실이 발생하는 경우, 투자자와 금융기관 사이에, 또 금융기관들 사이에 많은 금융분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대게는 어느 금융기관이 어느 단계에서 역할을 다하지 못했으므로 투자손실이 발생하였기에 해당 금융기관이 그에 대한 배상책임을 져야 한다는 취지의 분쟁입니다.
그런데 사안이 복잡하고 상품이 복잡할수록 이러한 분쟁의 최종 결과는 참으로 예측하기 어렵습니다. 예를 들어, '보험사 100% 원금보장'이라 적힌 상품설명서와 함께 호텔사업에 투자하는 펀드 상품의 가입을 권유받은 투자자가 30%의 투자원금 손실을 보게 되자 해당 금융기관을 상대로 배상 청구를 한 사안에서, 법원은 위 상품설명서가 오해를 불러일으킬 여지가 있음을 인정하면서도 '고위험(2등급), 원금 비보장형'의 문구도 있었다며 상품설명서의 취지는 '원금이 100% 미만으로 회수될 때 보험금이 나온다'는 정도의 의미라 판단하고, 보험금이 일부라도 나온 이상 금융기관에 배상책임이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투자자의 자기책임을 강조한 판결로 보입니다.
또한, 해외 프로젝트에 투자하는 펀드 상품이 판매되었는데, 국내 금융기관이 예측도 통제할 수도 없었던 현지의 법 제도상의 문제로 신용보강장치(담보권)가 무효가 됨으로써 투자자들이 큰 손실을 보게 된 사안에서, 국내 금융기관에 손실액 중 30%를 초과하는 높은 비율의 배상의무를 명한 사례도 있습니다. 위험에 대해 일차적 분석했고, 설계한 금융기관의 책임을 강조한 판단입니다.
결국 금융분쟁은 금융투자상품 속 '위험'이 갖는 두 얼굴의 구체적 모습과 양상이 무엇이었는지, 이를 누가 어느 정도로 검토·분석했으며 또 분석해야만 했는지, 적정한 금융설계를 했는지, 이를 잘 설명하며 금융시장에 정상 유통했는지, 이 과정에서 투자자도 자기책임을 다했는지 등을 두루 검토해 최종 결론에 이르기 때문에 최종 결과의 예측이 어렵고 예상하지 못한 판단이 나오는 경우도 있는 편입니다. 이는 금융투자상품 속 '위험'의 다의성, 모호성과 상통합니다.
이순신 장군과 같은 선제적이고 치밀한 위험 대응을 기대
금융시장은 크게 확대되어 실물에 큰 영향을 미치고 압도하기도 하며, 정부, 기업, 가계(개인)의 금융 의존도는 날로 커지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금융투자상품 속 '위험’의 다의성을 포착하고 분석하고 대응할 최전선에는 금융기관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금융기관들은 금융상품을 팔아 수수료 수입을 얻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금융상품을 매력적으로 만들어야 많은 수입을 올릴 수 있는데, 위험의 치밀한 분석과 성실한 고지는 금융상품의 매력을 떨어뜨릴 수 있습니다.
'위험'의 최전선에서 금융기관의 역할을 충분히 해야 한다는 당위와 금융상품을 많이 팔아 최대의 이익을 내려는 동기가 상충합니다. 여기에 금융기관의 딜레마가 있습니다. 따라서 금융기관을 최대한의 사적 이윤 추구를 당연시하는 상인의 지위로 방치하여서는 안 됩니다.
그렇기에 금융기관을 감독하고 감시하고 지원할 금융당국의 공적 역할이 필요합니다. 제가 아는 한, 우리 말에는 '어떤 일, 기회를 성취하기 위해 감수하는 위험'을 의미하는 영어 'risk'에 대응하는 단어가 없는 듯합니다. <이순신> 장군께서 임진왜란의 '위험'에 맞서 치밀하고 분석하고 대응했듯 최전선에서 금융위험을 분석해 준다면, 우리는 <오디세우스>처럼 기꺼이 모험에 뛰어들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전쟁이 아닌 상생의 거래를 위해서 말입니다.
서울대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41회 사법시험해 합격해 2002년부터 변호사로 활동했다. 10년간 해상, 선박금융, 인수금융, PEF, M&A 분야에서 기업법무를 수행하다가 2012년 법무법인 남산에 합류해 주로 회사, 금융투자상품, M&A, 펀드 분야의 기업법무 및 기업소송을 맡고 있다. 현재, 해외 부동산, 해외 금융상품에 투자하다 손실이 난 펀드와 관련한 다수의 민형사소송을 수행 중이다. 금융 법리와 금융 규제에 따라 다양한 금융거래구조를 검토했고, 체계적인 금융계약 구성을 했던 경험을 잘 살려 기업이 직면한 문제에 대해 통찰력 있고 종합적인 대응이 가능한 의견을 제시하고자 노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