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전희성 기자
그래픽=전희성 기자
2016년 3월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대국은 전 세계의 이목을 서울로 집중시켰다. 첫 번째 대국 직전까지도 많은 사람이 이세돌의 승리를 점쳤다. ‘체스는 몰라도 수싸움이 복잡한 바둑은 컴퓨터가 이기기 어렵다’는 게 중론이었다. 예상은 빗나갔다. 예측할 수 없는 수로 대국을 압도한 알파고는 세상에 인공지능(AI)의 출현을 알렸다.

10년이 흐른 2026년, AI는 바둑판에서 벗어나 거의 모든 것을 뒤흔들고 있다. 인간의 일자리를 뺏고 커뮤니케이션을 대체하고 있다. 최근에는 인류의 생존도 우려하게 하는 존재가 됐다. 오픈AI의 비공개 AI 에이전트 수천 개가 개발자 통제를 벗어나 독일의 휴면 사이트를 장악해 ‘비밀 게시판’으로 이용한 사실이 발견된 게 한 사례다. AI 에이전트는 스스로 1만8000여 건의 글을 올리며 통제망을 뚫는 방법을 주고받았다.

◇40분 만에 장수 게임 만들어

AI가 AI에 "나를 넘어라" 셀프 지시…인간 추월 앞당기는 AGI
‘AI 혁명’의 시작점은 2022년 챗GPT의 등장이었다. 챗GPT는 원하는 답을 찾기 위해 웹사이트를 찾아 헤매던 사람들의 검색 패턴을 바꿨다. AI는 인간의 질문을 파악해 맥락을 담은 완결된 답변을 내놨다.

이후 앤트로픽이 가세했다. 전 세계 도서관에서 700만 권 이상의 책을 학습한 클로드가 나왔고, 오픈AI도 GPT를 계속 발전시켜 나갔다. AI는 ‘물으면 답하는’ 챗봇에서 ‘스스로 사고하고 행동하는’ 지능으로 진화했다. 지난 4일 오픈AI가 내놓은 GPT-6 아스트라는 인간과 로봇을 구별하는 ‘나는 로봇이 아닙니다’ 캡차 48단계를 모두 통과했고, 처음 보는 환경에서 규칙을 스스로 파악해 푸는 ‘ARC-AGI-3’ 시험에서 99.9%의 정답률을 보였다. 처음 알아낸 규칙을 잊지 않고 다음 행동에 활용했다. 그레그 브록먼 오픈AI 사장은 아스트라를 내놓으면서 “AGI(범용인공지능) 시대에 온 것을 환영한다”고 선언했다.

AGI 선언이 처음은 아니다. AI 회사들은 AI 시대의 특이점이 될 AGI 출현을 마케팅에 활용한다. 그럼에도 ‘이번엔 다르다’는 말이 나오는 건 작업을 처리하는 아스트라의 자율성과 완결성 때문이다. 이전 모델도 훌륭한 결과물을 냈지만, 인간의 지시가 있을 때에 한해서였다. 아스트라는 포괄적인 첫 지시만으로 최종 결과물을 도출한다.

예를 들어 ‘고객 이탈 원인을 분석하는 보고서를 작성하라’는 첫 지시에 아스트라는 스스로 고객 관리 시스템에 접속해 데이터를 뽑아 원인을 분석하고, 웹에서 경쟁사 동향을 찾아 비교하고, 이를 기반으로 스프레드시트와 파워포인트까지 완성할 수 있다.

게임 제작사 미니먼치는 아스트라를 통해 40분 만에 14년째 인기를 끌고 있는 ‘클래시 오브 클랜’과 비슷한 게임을 만드는 영상을 공개했다. 몇 줄의 지시를 적는 것만으로 히트 게임이 탄생한 것이다.

아스트라뿐만이 아니다. 개발자 데이터 플랫폼 업체 몽고DB의 한 엔지니어는 앤트로픽의 최첨단 모델 페이블 5.1에 시제품 개발을 맡기고 잠들었더니 다음날 아침 다음 단계가 완성돼 있었다고 밝혔다. 몇 명이 며칠 동안 해야 할 작업이 하룻밤 만에 끝난 것이다. 오픈AI는 아스트라보다 똑똑한 내부 모델로 에이전트 1만 개를 88시간 돌려 100년 가까이 풀리지 않은 수학 난제 ‘나비에-스토크스’ 방정식의 해법을 제시했다.

◇AI가 AI를 만들며 폭발적 진화

AI는 지금보다 더 진화할 것이다. 그러나 진화할 AI를 개발하는 주체는 인간이 아니라 AI가 될 가능성이 크다. 오픈AI는 2028년 3월까지 ‘자동화 AI 연구자’를 완성하겠다고 6일 밝혔다. 이 목표가 현실화하면 AI가 다음 세대 AI를 설계하고 학습시키는 ‘재귀적 자기개선(RSI)’이 시작된다.

지금까지 AI 발전 속도는 연구·개발자의 수와 시간, 이에 따른 투자금에 묶여 있었다. AI가 스스로 연구를 시작하면 이 같은 제약이 사라지고 AI 발전 속도가 지금보다 훨씬 더 빨라진다. 수만 개의 AI 연구자가 365일 24시간 일하고, 그 결과 더 나은 AI가 탄생하는 이른바 ‘지능 폭발’의 시대가 도래한다.

RSI는 인간 세계에도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전망된다. 신약 후보물질 탐색, 세상에 없던 신소재 발명 등 인간이 도달하지 못한 결과물을 AI는 만들 수 있다. 단백질 합성이나 핵융합의 물질 비율을 일일이 인간이 실험실에서 실험하지 않고도 AI를 통해 추천을 받아 피지컬 AI에 24시간 실행시키면 된다는 얘기다. 이때 과학의 병목이 인간의 두뇌에서 컴퓨팅으로 옮겨가고 AI 수요는 더 급증할 수 있다.

혼란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AI가 인간의 영역으로 들어올수록 인간의 노동은 설 자리가 좁아질 수밖에 없다. 이미 많은 영역에서 자료 조사와 데이터 정리 등 신입 직원이 맡던 업무를 AI가 대체했다. AI의 진화 속도에 비해 실제 사회의 변화 속도는 느릴 것이라는 예상도 물론 있다. 인간의 관성과 제도, 우려의 분위기가 합쳐지면서 AI 적용 속도를 늦출 수 있다는 설명이다. 샘 올트먼 오픈AI 최고경영자(CEO)는 최근 한 팟캐스트에 출연해 “AI 모델을 만들고 있는 나조차도 지난 20년간 한 대로 이메일함에 직접 들어가 일일이 클릭하며 확인한다”며 “인간의 작업 방식은 점진적으로 전환될 것”이라고 했다.

박한신 기자 p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