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총수는 1→2→4→8→16→32→ 64→128→256으로 늘어날 것이지만, 생존자원은 1→2→3→4→5→6→ 7→8→9로 늘어날 것이다.”

[책마을] 인구폭발 공포 사라졌지만 식량 중요성은 아직도 유효
영국 케임브리지대에서 수학을 전공한 토머스 로버트 맬서스(그림)는 전형적인 이과형 인물이다. 그의 대표작 <인구론>은 명료한 수학적 논리에 바탕을 둔 핵심 주장을 책의 앞머리에 짧게 제시한다. 곧이어 잡다한 통계와 표, 장황한 예시가 이어진다. 분량 대부분은 책의 서두에 요약된 논지를 뒷받침하기 위해 덕지덕지 첨부된 자료집 같은 느낌이다.

맬서스는 콩도르세 등 인간과 사회에 관해 낙관론을 제시했던 ‘이상주의자’에 대한 반발에서 <인구론>을 썼다. 그는 인구 증가 문제를 처음으로 고찰하진 않았지만, 인구에 대한 일반적인 이론을 체계화한 최초의 인물로 여겨진다. 그는 오늘날 ‘인구학의 아버지’로 불린다.

<인구론>을 접할 때 조건반사적으로 떠올리는 것이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데에 반해 식량은 산술급수적으로 증가한다’는 명제다. 수학 공식 같은 명제처럼 맬서스가 바라보는 세계는 냉정하다. 맬서스는 “모든 생물은 그들이 얻을 수 있는 영양분 이상으로 끊임없이 증가시키려는 경향이 있다”며 생물학이라는 객관적 과학의 틀을 빌려 설명한다. 인간은 ‘종족 번식’이라는 본능의 지배를 받는 존재다.

[책마을] 인구폭발 공포 사라졌지만 식량 중요성은 아직도 유효
맬서스는 재생산 본능을 넘어서는 인간의 본능은 생존밖에 없다고 봤다. 그는 인간이 생존을 위해 식량을 먹어야만 하는 것을 ‘자연의 법칙’으로 규정하고 논리 전개를 시작한다. 과학적 논리로 도출된 “회향풀 씨가 번지듯 지구상에 오로지 영국인만 존재한다면, 몇 세대 지나지 않아 영국인으로만 지구를 가득 채울 수도 있을 것이다”라는 문장은 인구의 증식으로 지구가 멸망할 것만 같은 공포감도 준다.

하지만 세계는 1차 방정식 공식처럼 단순하지 않다. 인구는 무한정 늘 수 없다. 인구 증가의 무서움을 묘사한 맬서스는 곧이어 “인구 증가 경향이 억제 요인 없이 자유롭게 기능하는 나라는 없다”고 못 박는다.

왜 그럴까. 그는 식량이 부족해지면 약하고 가난한 사람들이 굶어 죽기에 인구가 감소한다고 봤다. 맬서스는 인간은 인구와 식량자원이 서로 균형을 이루려는 힘을 벗어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맬서스는 식민지가 만들어진 지 얼마 안 돼 인구가 폭증하던 당대의 미국 사회를 근거로 삼았다. 맬서스는 인간이라는 종이 25년 만에 그 수가 두 배로 늘어나는 경향이 있다고 가정했다. 반면 그가 관찰한 토지 생산물의 증가는 다른 모습을 보였다. 한계가 분명했다.

식량 생산이 인구 증가를 따라잡지 못해 인구가 다시 감소세로 돌아선다는 ‘맬서스의 덫’은 실제로 전통 시대 인류 사회를 옭아매는 굴레였다. ‘맬서스의 덫’은 소위 두 가지 ‘억제’가 있기에 작동할 수 있었다. 기아나 전염병, 전쟁 등으로 사람이 죽는 ‘적극적 억제’와 금욕과 피임을 시행해 출산을 억제하는 ‘예방적 억제’였다. 그리고 이들 억제는 비참함과 악덕을 수반했다.

맬서스가 인구는 급증하는 데 식량 생산은 이를 쫓아가지 못할 것이라는 어두운 아이디어를 떠올린 계기는 무엇이었을까. 그가 책을 쓰던 때는 산업혁명이 시작되던 시기였다. 농촌에서 도시로 사람이 몰렸다. 늘어난 빈곤의 원인으로 맬서스는 인구 증가를 지목했다.

맬서스의 주장은 단점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주장은 사회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는 인간과 사회의 삶이 단선적 진보가 아니며 수많은 고통과 악덕이 함께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그가 제시한 것은 ‘우울한 과학’이었다.

‘맬서스주의’는 오늘날 가장 오남용되는 용어이기도 하다. 걷잡을 수 없는 인구 증가라는 공포는 20세기까지 이어졌다. 인류의 역사는 시각에 따라 맬서스의 예언이 들어맞은 것으로도, 망상으로도 보였다. 예언의 정확성과 별개로 인류와 식량 간 상관관계라는 근원적인 문제를 제기한 문제의식은 여전히 유효하다. 맬서스의 충격은 아직 빛이 바래지 않았다.

김동욱 논설위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