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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태 칼럼] 권위를 잃어버린 대가
상대 짓밟으면 내 권위도 추락
'권위적 사회'로의 회귀 부를 것
김정태 수석논설위원
'권위적 사회'로의 회귀 부를 것
김정태 수석논설위원
동서를 막론하고 권위적이라는 말을 좋아하는 사람은 많지 않겠지만, 한국인은 특히 더 거부감이 있는 단어라고도 할 수 있다. 오랜 기간 군사정부 아래에서 산 영향일 것이다. 군 출신 대통령은 정부와 민간에도 군대와 같은 상명하복과 일사불란을 요구했고, 수십 년간 이어진 권위적인 리더십은 우리 사회 곳곳에 뿌리내렸다. 1987년까지 이어진 민주화 투쟁은 그런 권위주의와의 싸움이었을 것이다.
문제는 권위적이라는 단어를 아예 사전에서 파내듯 지우려다 보니 권위까지 같이 도매금으로 삭제의 대상이 돼버렸다는 점이다. 상대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으니 나의 권위도 존중받지 못하는 ‘권위 실종의 사회’가 됐다는 얘기다. 지금 우리 사회에 어떤 권위가 작동하고 있을까 곰곰이 생각해 봐도 딱히 떠오르는 대상이 없다. 대한민국 삼부 요인인 대통령과 국회의장, 대법원장이라고 별반 다르지 않다.
부실 선거관리의 끝을 보여준 선거관리위원회와 이대로 최고 수사 권력이 돼도 좋을지 의심스러운 경찰은 스스로 권위를 내팽개친 경우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지난 정부 때의 감사 결과를 뒤집은 감사원도 오십보백보다.
청와대와 협의 없이 대법관을 서면 제청했다고 선출 권력들이 대법원장을 조리돌림했다. 더불어민주당의 새로운 대표는 대법원장을 ‘조희대 씨’라고 지칭한 것도 모자라 대법원을 ‘법 기술원’이라고 불렀다. 무례함을 넘어 사법부 권위에 대한 부정(否定)이다. 그 순간 자신의 권위도 동시에 무너졌다는 것을 그는 알까. 몇몇 야당 의원에게 곧바로 ‘김민석 씨’라는 되갚음을 당한 것 정도를 말하는 게 아니다. 많은 국민이 국무총리까지 지낸 여당 대표의 한없는 가벼움에 고개를 흔들었을 것이다. 하긴 법무부 장관 후보가 된 의원은 자당 출신 국회의장에게 ‘GSGG’라는 비속어를 날린 적도 있으니 ‘씨’라는 호칭 정도는 그 동네에서는 양반일지도 모르겠다.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말로든 정책으로든 실점이 쌓이다 보면 권위를 잃기 십상인데, 이는 어김없이 지지율에 반영된다. 하지만 권위가 사라져도 권력은 남는다.
권위를 잃고 권력에만 기대면 권위적인 리더가 되는 건 순간이다. 30%대 초반의 지지율로 여전히 제왕적 권력을 휘두르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정확히 그런 경우다. 유권자의 20%, 공화당 지지자의 3분의 2를 차지하는 ‘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의 90%대 중반 콘크리트 지지가 없다면 아무리 트럼프라도 버티기 어렵다. 그러니 지지율이 추락할수록 강성 지지층만 바라보는 정치를 하게 되는 건 미국이나 한국이나 다를 게 없다.
권위가 없는 사회는 신뢰가 없는 사회라고도 할 수 있다. 우리가 노벨상 수상을 대단하게 생각하고 상의 권위를 인정하는 건 노벨위원회의 수상자 선정을 신뢰하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가 상대의 권위를 짓밟음으로써 자신의 권위마저 잃는 건 가장 핵심적인 사회적 자본인 신뢰를 무너뜨리는 것과 다름없다. 그 신뢰의 중심이 돼야 할 집권 세력이, 더구나 민주화운동 주역이라는 사람들이 절대로 해서는 안 될 일이다. 권위를 잃은 대가는 우리가 그토록 혐오하던 권위적인 세상으로의 회귀가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