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력을 갖춘 액티브 시니어의 등장으로 시니어 레지던스는 문화, 예술 등이 결합된 하이엔드 주거로 진화하고 있다. 위쪽부터 ‘VL르웨스트’ 북라운지, ‘소요한남 by 파르나스’ 티하우스, ‘라우어 시니어타운’ 청명원.   각 사 제공
경제력을 갖춘 액티브 시니어의 등장으로 시니어 레지던스는 문화, 예술 등이 결합된 하이엔드 주거로 진화하고 있다. 위쪽부터 ‘VL르웨스트’ 북라운지, ‘소요한남 by 파르나스’ 티하우스, ‘라우어 시니어타운’ 청명원. 각 사 제공
쓸쓸한 거처로 여겨지던 노년의 공간이 더 이상 삶의 종착지가 아니라 인생의 깊이를 더하는 명소로 거듭나고 있다. 호텔에 머물고 휴양지를 찾듯, 일상을 예술과 휴식으로 채우는 매혹적인 공간으로 변모한 것이다.

1988년 국내에 처음 유료 양로시설이 등장한 이후 시니어 레지던스는 오랫동안 ‘기능’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넘어지지 않도록, 다치지 않도록, 더 나아가 홀로 생을 마감하지 않도록 안전하게 돌보는 데 주력했다. 노인은 주체적으로 삶을 설계하는 존재라기보다 보호의 대상으로 인식됐다. 비상벨과 안전바는 그런 시대를 상징하는 장치였다.

하지만 시대가 달라졌다. 더 건강하고 자산을 축적한 액티브 시니어는 은퇴를 사회에서 물러나는 ‘퇴장’이 아니라 새로운 삶으로 들어서는 ‘입장’으로 받아들인다. 축적된 경험과 안목을 바탕으로 또 다른 가능성을 탐색하며 삶의 무대를 넓혀가고 있다. 이 같은 변화는 이들이 머무는 공간의 문법까지 바꿔놓았다. 아파트형, 호텔형, 타운하우스형 등 다양한 주거 형태가 등장했다. 도심 외곽에 머물던 시설은 문화, 예술, 의료, 컨시어지가 결합한 하이엔드 주거로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

돌봄의 방식도 한층 섬세해졌다. 단순한 생존을 넘어 품격 있는 일상을 위한 서비스가 제공된다. 베이킹과 가드닝 등 새로운 취미를 경험할 수 있는 강좌가 열리고, 입주민 간 교류를 돕는 커뮤니티 프로그램도 활성화하고 있다. 개인의 건강 상태와 체질, 연령을 고려한 맞춤형 식단은 영양을 넘어 즐거움까지 제공한다. 고립을 전제로 한 과거와 달리 새로운 시니어 주거는 관계와 균형 속에서 삶의 활력을 키운다.

일부 공간에서는 외부의 소음과 불확실성을 차단하는 ‘보이지 않을 권리’도 구현된다. 지도 검색조차 어려운 프라이빗 환경에서 입주민은 스스로 선택한 관계 안에서 교류한다.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한 발 떨어진 공간에서 인생의 긴 여정을 돌아보고, 자신을 온전히 마주하는 시간도 가능해진다.

새로운 시니어 하우스에서의 삶은 더 이상 ‘여생’이라는 단어로 규정되기 어렵다. 오히려 또 하나의 전성기에 가깝다. 불필요한 일상의 부담을 덜어내고 자연과 예술 속에서 ‘나만의 시간’을 누리는 공간, 세상의 기준이 아니라 자신의 기준으로 품격을 완성하는 곳. 그것이 오늘날 ‘올드앤리치’가 선택한 가장 우아하고 다채로운 삶의 방식이다.
부산 기장군 오시리아 관광단지에 들어선 라우어 애비뉴에 장줄리앵의 대형 작품 ‘레스트아워’가 전시돼 있다.  라우어 시니어타운
부산 기장군 오시리아 관광단지에 들어선 라우어 애비뉴에 장줄리앵의 대형 작품 ‘레스트아워’가 전시돼 있다. 라우어 시니어타운

천연 광천수 사우나에 24시간 건강센터…입주가 곧 힐링이다
삶의 등급 올리는 시니어 레지던스

매일 공급되는 천연 광천수 사우나, 수영장, 세계적 예술가의 작품이 전시된 정원과 갤러리…. 시니어 타운이 화려하게 진화하고 있다. 해외 유명 호텔과 휴양지에 온 듯, 마치 여행하듯 살아갈 수 있는 공간이 속속 등장한다. 입주만으로도 은퇴 이후 꿈꿔온 여유롭고 품격 있는 삶을 실현하는 시대가 열리고 있다.

의료·문화·예술 품은 레지던스

과거 은퇴 이후 삶은 ‘여생(餘生)’으로 불렸다. 전성기가 지난 뒤 남은 시간을 의미하는 다소 수동적인 개념에 가까웠다. 하지만 이제 은퇴 이후는 새로운 시작의 시간으로 재해석된다. 중장년 시기 쌓아온 경험을 확장하고 도전에 나서는 ‘활동의 시기’로 의미가 커지고 있다.

이 같은 인식 변화는 주거 공간 진화로 이어졌다. 과거 실버타운이 도심 외곽에서 조용히 삶의 마무리를 준비하는 공간이었다면 최근 시니어 레지던스는 의료, 문화, 예술, 호텔 기능이 결합된 복합 플랫폼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외부와 단절된 공간이 아니라 사회와 적극적으로 연결되는 생활 거점으로 자리 잡는 모습이다.

부산 기장군 오시리아 관광단지에 들어선 ‘라우어(LHOUR)’는 자연과 웰니스 인프라를 전면에 내세운 대표 사례다. 지난해 2월 준공된 이 단지는 지하 4층~지상 최고 18층, 7개 동, 944가구로 이뤄졌다. ‘밝게 빛나는 삶의 시간(Luminous Lifetime)’이 개발 콘셉트다. 2만㎡ 규모 조경과 2만㎡에 달하는 하이엔드 커뮤니티 시설을 갖췄다. 335석 규모 콘서트홀과 청명서가, 아트갤러리 등이 단지에 들어서 있다. 장 줄리앵의 조각과 김봉찬 작가의 생태 정원이 어우러져 일상 속 예술 경험을 구현한다. 단지를 걷는 것만으로도 조경과 예술이 결합된 ‘미술 투어’를 즐길 수 있다.

매일 공급되는 천연 광천수 사우나와 수영장은 또 하나의 강점이다. 교외로 나가지 않아도 단지에서 온천 수준의 휴식을 누릴 수 있다. 249병상 규모 한방병원과 전문 간호 인력이 상주하는 24시간 건강케어센터도 마련돼 있다. 입주민의 건강과 안전을 동시에 책임진다는 얘기다.
서울 마곡동 VL르웨스트의 중앙 정원 락가든.  마곡마이스AMC
서울 마곡동 VL르웨스트의 중앙 정원 락가든. 마곡마이스AMC
서울 마곡동에 있는 ‘VL르웨스트’(810실)는 도심 인프라와의 연계성을 강조한 시니어 레지던스다. 서울식물원, 한강 산책로가 단지와 자연스럽게 이어져 있다. LG아트센터 서울, 스페이스K 서울미술관 등 문화시설과 가까워 일상에서 다양한 여가를 즐길 수 있다. 활동적인 삶을 이어가려는 시니어에게 적합한 환경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건강 관리 서비스도 체계적이다. 이대서울병원 협약 건강검진과 보바스기념병원 연계 건강관리센터를 통해 전문 의료 서비스를 제공한다. 여기에 롯데호텔 셰프의 맞춤형 식단과 호텔식 컨시어지 서비스가 더해져 생활의 품격을 높인다. 실내 골프연습장과 퍼팅 라운지, GX 프로그램, 필라테스, 헬스장, 사우나·스파 시설까지 갖춰 체력 관리와 휴식을 동시에 충족한다.

뉴그레이 주거의 진화

경기 의왕 ‘백운호수 푸르지오 숲속의 아침’ 실내 수영장.  엠디엠플러스
경기 의왕 ‘백운호수 푸르지오 숲속의 아침’ 실내 수영장. 엠디엠플러스
수도권에서는 자녀와 부모가 한 단지에서 ‘따로 또 같이’ 살아가는 새로운 주거 모델도 등장하고 있다. 경기 의왕 백운호수 인근 ‘백운호수 푸르지오 숲속의 아침’은 세대 공존형 대규모 단지다. 하이엔드 오피스텔 842실과 노인복지주택 ‘스위트’ 536가구를 결합해 가족 간 거리는 가깝게 유지하면서도 각자 생활을 독립적으로 누릴 수 있게 설계됐다.

단지 중심에는 1만1570㎡ 규모 커뮤니티 시설 ‘클럽 포시즌’이 들어선다. 25m 실내수영장과 스파, 피트니스, 70여 개 강좌를 운영하는 클래스룸, 24시간 간호사가 상주하는 건강관리센터 등이 마련된다. 백운호수와 주변 산세가 어우러진 자연환경, 인근 교육시설과 쇼핑 인프라까지 더해져 3세대가 함께 생활하는 ‘가족형 리조트 주거’를 구현한다.
서울 한남동 ‘소요한남 by 파르나스’ 내부 모습.  소요한남 by 파르나스
서울 한남동 ‘소요한남 by 파르나스’ 내부 모습. 소요한남 by 파르나스
서울 한남동에 들어서는 ‘소요한남 by 파르나스’는 예술적 설계와 호텔식 서비스의 결합을 보여준다. 지하 5층~지상 7층, 111가구 규모로 조성된다. 파르나스호텔의 운영 노하우가 반영된다. 남산 녹지 축을 단지 내부로 끌어들인 순환형 조경과 자연 채광, 수공간이 어우러진 중정은 휴식과 사색 공간으로 설계된다. 약 150m 길이 순환 산책로와 입체적 식재 계획을 통해 계절 변화를 일상에서 체감할 수 있도록 했다.

커뮤니티 시설도 고급화했다. 호실당 약 50㎡ 공간에 하이드로 웰니스 수영장과 엔드리스 풀, 사우나 등을 배치한다. 1층에는 웰컴 로비와 컨시어지, 라이브러리, 티하우스, 올데이 다이닝 등이 들어서 호텔 로비 같은 분위기를 연출한다. 셰프의 메디푸드 식단과 차움·차헬스케어 연계 의료 서비스, 전용 앱 기반 스마트케어가 결합돼 맞춤형 생활 지원이 이뤄진다.

일반적으로 시니어 주택은 보증금을 내고 월 생활비를 납부하는 방식이다. 보증금은 소요한남 by 파르나스가 50억원대이며 부산 라우어는 규모, 층, 방향에 따라 4억~18억원이다.

이들 시니어 레지던스가 지향하는 방향은 분명하다. 불필요한 노동에서 벗어나 고급 서비스를 누리며 예술과 자연에서 ‘나만의 시간’을 확장하는 것이다. 수동적 돌봄 대상이 아니라 삶을 주도적으로 설계하는 ‘뉴그레이’ 세대 등장과 함께 시니어 주거 기준 역시 새롭게 쓰이고 있다.

강영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