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장화를 닦으며
비릿한 흙냄새가 코를 찔렀다. 아직 마르지 못한 진흙이 도로와 건물 곳곳에 가득했다. 쓰러진 선반 주위로 식료품과 가재도구가 흙탕물을 뒤집어쓰고 나뒹굴었다. 지난 23일, 폭우의 상처가 깊게 남은 경남 거제 수해 복구 현장에 다녀왔다.

부산 남구 당원협의회 관계자 30여 명이 함께 했다. 20대와 30대 청년들도 휴일을 반납하고 팔을 걷어붙였다. 폭우를 잊은 하늘은 뙤약볕을 쏟아냈다. 진흙을 닦아내고 퍼나르는 몸에 온통 땀이 차고 팔, 다리, 허리가 아파왔다. 잠시도 멈출 수 없었다. 거센 빗줄기에 휩쓸린 거제의 일상이 하루빨리 되돌아오기만을 바랐다.

이번 폭우는 그야말로 기록적이었다. 연휴 사흘 동안 900㎜ 넘게 쏟아졌다. 200년에 한 번 올 법한 수준이었다고 한다. 그렇다고 이런 폭우가 2226년이 돼야 또 내릴 것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이상 기후로 한반도 폭우 빈도는 높아지고 있다. 1시간 누적 강수량 72㎜ 이상의 극한 호우는 1970년대에 연평균 9.7회 내렸지만, 2020년대엔 22.3회로 2배 넘게 늘었다. 피해액도 천문학적이다. 작년 7월 전국을 강타한 호우로 인한 피해액은 1조800억원, 복구액은 2조7000억원에 달한다.

지난해 충남 예산, 경남 하동과 산청 등 수해 복구 현장에 연달아 갔던 기억이 떠올랐다. 토사로 뒤덮였던 마을, 무너져내린 담벼락, ‘진흙 폭탄’을 맞은듯한 노부부의 집에 할 말을 잃을 정도였다. 진창이 돼 버린 전답을 바라보는 공허한 농민들의 눈빛을 잊을 수 없다. 국가가, 정치와 행정이 이들을 보호해줄 수는 없는 것인가.

행정가 출신 국회의원으로서 제안하고 싶다. 과거 경제개발 5개년 계획처럼, 사방사업과 노후 하수관로를 전면 교체하는 ‘수해 예방 5개년 계획’을 수립하고 이행하자. 작년 기준 전국 하수관로 총연장 17만 3717㎞ 중 20년 이상 노후관로는 45%에 달했다. 특히 현재 우리나라 하수도 시설의 최소 설계빈도는 지선관로 10년, 간선관로 30년, 빗물펌프장 30년에 불과하다. 100~200년 빈도의 폭우가 잦아지는 상황을 견뎌내기 어렵다.

2016년부터 2024년까지 노후관로 정비에 투입된 국비는 1조3407억원이었다. 작년 폭우 복구액의 절반 수준이다. 부족하다. 더 빠르게, 더 집중적으로 재정을 투입해, 수해 피해를 막아야 한다. 국토의 4분의 1이 해수면보다 낮은 네덜란드는 2007년부터 2018년까지 23억유로(약 3조7000억원)를 투입해 강바닥 장애물을 제거하고 유수로를 확보하는 ‘룸 포 더 리버(Room for the river)’ 사업으로 홍수 피해를 최소화하는 데 성공했다.

집에 돌아와 장화에 덮인 진흙을 한참이나 씻어냈다. 지난 몇 년간 수해 복구에 함께했던 장화를 내년에는 안 신을 수 있을까. 물론 내년, 내후년에도 누구보다 먼저 장화를 신고 달려갈 것이다. 하지만 공동체 정신을 넘어, 재해를 예방하고 국민을 지키며 주름살을 펴주는 것이 진짜 행정이고, 정치의 역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