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간 처방액 5000억원을 웃도는 국내 유일의 경도인지장애 치료제가 허가 유지의 기로에 섰다. 의료계에선 치매로 진행할 위험을 낮춘 실사용 데이터를 고려해 허가를 유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올해 하반기 콜린알포세레이트(이하 콜린제제)의 경도인지장애 적응증(치료 대상 질환군) 임상 재평가 결과를 발표한다. 종근당과 대웅바이오 등 제약사들은 지난 6월 관련 환자를 대상으로 한 임상시험 결과 자료를 제출했다. 식약처는 이를 토대로 적응증 유지 여부를 결정한다.
콜린제제는 이탈리아 제약사인 이탈파마코가 1989년 개발한 치료제다. 국내에서 치매와 경도인지장애 등 치료에 폭넓게 쓰이고 있다. 작년 연간 처방액은 5456억원에 달했다. 처방액 증가와 더불어 건강보험 재정 부담이 커지자 1995년 허가 당시 임상 근거가 충분한지를 놓고 논란이 일었다. 이에 식약처는 전문가 자문 등을 거쳐 임상 재평가가 필요하다고 판단하고, 제약업체에 임상시험 자료를 요구했다. 일부 의료기관 등에서 ‘만병통치약’처럼 남용한 점도 재검증 판단에 영향을 미쳤다.
식약처가 경도인지장애 적응증을 삭제하면 병원에서 관련 환자에게 이 약을 처방할 수 없게 된다. 지난 5월 알려진 종근당의 임상 재평가 결과에 따르면 콜린제제는 1차 평가 지표를 충족하지 못했다. 인지기능 유지와 개선 비율이 사전에 정한 기준에 미달했다. 다만 복약 기준을 준수하며 약을 잘 투여한 환자를 대상으로 한 하위 분석에선 효과를 확인했다. 이 약을 48주간 투여한 환자 기준으로 인지기능 개선율이 67.8%로 위약군(60.1%)보다 7.7%포인트 높았다.
의료계 일부에선 실제 진료 데이터에서 콜린제제의 유용성이 확인됐다고 주장한다. 지난해 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 연구진이 국민건강보험공단 데이터를 통해 경도인지장애 환자 51만명을 분석한 결과 콜린제제 복용군은 알츠하이머 치매 악화 위험이 10.1%, 혈관성 치매 위험은 16.8% 낮았다. 이런 대규모 실사용 검증 데이터(RWE)를 재평가에 반영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경도인지장애 환자 치료에 쉽게 쓸 수 있는 선택지가 줄어든다는 것도 의료계가 우려하는 부분이다. 미국 바이오젠과 일본 에자이가 공동 개발한 ‘레켐비’ 등 항체치료제를 활용할 수 있지만, 비급여 주사제로 18개월 투여 약값이 4000만~5000만원에 이른다. 콜린제제의 환자 부담금(80% 기준)은 월 2만4000원이다.
일부 병원에서 ‘은행엽제제’와 ‘니세르골린’ 등도경도인지장애 환자에게 처방하지만 경도인지장애를 대상으로 명시해 허가받은 약은 아니다. 한 신경과 전문의는 “치매와 경도인지장애는 진행 속도가 더디고 환자별 양상이 다양해 단일 임상 지표로 약의 가치를 판단하기 어렵다”며 “임상 재평가에서 RWE와 장기 사용 경험, 질환 특성을 함께 살펴봐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