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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철창과 가시 드리운 궁전, 더 선명해진 황후의 고독
'엘리자벳'
작품 전체를 지배하는 건 무대 위를 배회하는, 의인화된 ‘죽음’이다. 누구나 다다를 삶의 끝이지만 무대 위 죽음은 매혹적인 캐릭터로 변모한다. 고통스럽고 숨막히는 현실을 벗어나게 해줄 방안은 자기 뿐이라는 듯 엘리자벳을 매순간 흔든다. 황제 프란츠 요제프와 엘리자벳이 “죽음이 갈라놓을 때까지 사랑하겠다”고 맹세하는 순간에도 어김없이 나타난다.
작중 죽음을 매혹적으로 보이게 만드는 요인은 숨막히는 황실이다. 자유분방하게 들판을 누비던 엘리자벳은 황제와 결혼하며 황궁이라는 새장에 스스로 들어왔다. 결혼 이후 엘리자벳은 불행해진다. 시어머니 소피 대공비는 일거수일투족을 통제하고 황제마저 어머니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황후의 왕관은 족쇄나 다름없지만 엘리자벳은 굴복하지 않는다. 1막 마지막에서 흰색 드레스를 입고 무대 중앙에 선 엘리자벳은 이 작품 대표 넘버 ‘나는 나만의 것’을 부르며 자신을 내어주지 않겠다고 선언한다.
올해 새롭게 꾸려진 무대 연출도 볼거리다. 이번 공연에서는 철창과 가시를 연상시키는 조형물을 곳곳에 배치했다. 황실의 억압적 환경을 부각한다. 프란츠 요제프와 엘리자벳이 만나는 호숫가 장면도 주목할 만하다. 이전 무대의 정자 대신 큰 나무가 등장한다. 1막에서는 화사한 분위기 속에서 두 사람의 사랑이 시작되지만, 시간이 흐른 뒤 다시 등장한 나무는 어둡고 메마른 빛깔로 변해 있다. 사랑으로 시작했던 관계가 얼마나 퇴색했는지 가늠할 수 있다.
아쉬움도 남는다. 죽음과 자유 사이에서 흔들리는 심리가 인물의 행동보다는 시적이고 관념적인 대사와 가사로 전개되는 대목이 많다. 대사와 가사를 자칫 놓치면 인물의 서사와 감정선을 따라가기 벅차게 느껴질 수 있다. 엘리자벳에는 이지혜, 린아, 이지수가 죽음에는 서경수, 카이, 고은성이 캐스팅됐다. 공연은 오는 11월 15일까지.
최한종 기자 onebel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