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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각자도생' 통상외교론 못 막는 트럼피즘
관세·북핵 뒤엉킨 현 대미 관계
경제 책략 이끌 사령탑 안보여
경제 책략 이끌 사령탑 안보여
지난 24일 박정성 신임 산업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의 취임식에서 한 말이다. 글로벌 공급망에서 독보적인 기술과 제조 역량을 쥐고 있어야 강대국의 횡포 속에서 주도권을 뺏기지 않고 대등한 파트너로 협상 테이블에 설 수 있다는 내부를 향한 경고다. 그는 세종 관가에서 김현종 전 통상교섭본부장에 버금가는 전략가로 불린다.
그러나 최근 글로벌 무대의 판세는 통상 관료의 개인기로 돌파할 수 있는 차원을 넘어섰다. 외교·안보와 산업 통상이 하나로 뒤엉킨 복합전선이 만들어지면서, 국가 총력전 차원의 전략적 대응이 절실해졌기 때문이다.
트럼프 행정부 출범 1년 6개월, 워싱턴은 정치와 외교·안보적 목표를 위해 경제적 수단을 전방위로 무기화하는 경제안보 책략을 구사하고 있다. 전쟁도, 금기시됐던 동맹국과의 갈등도 불사한다. 우리도 압박받고 있다. 무역법 301조를 들이대며 한국산 제품에 고율 관세를 위협하고, 대미 1호 전략투자의 확정을 종용하고 있다. 동시에 안보 전선에서는 11월 중간선거를 겨냥해 '북핵은 57개'를 거론하며 미·북 정상회담을 추진해 북핵 용인과 '코리아 패싱' 우려를 키우고 있다. 관세와 투자, 방위비, 북핵 셈법을 하나의 거대한 판에 한국을 올려놓고 우리는 하염없이 흔들리는 형국이다.
한국이 국가 차원의 정교한 경제·안보 책략 없이 여전히 수세적 방어에 급급한 채 부처 간 칸막이에 갇혀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외교·안보 라인이 '가치 동맹'을 앞세워 미국의 외교적 요구를 우선 수용해야 한다고 나설 때, 통상 라인은 국내 기업들의 막대한 대미 투자 부담과 관세 폭탄을 방어하느라 진땀을 뺐다.
경제 통상라인 관계자들은 우리에겐 미국조차 아쉬워하는 반도체 공급망, 차세대 원전(SMR), 미 해군 함정 유지·보수·정비(MRO) 수요를 충족시킬 조선업 등 대체 불가 전략자산이 있다고 말한다. 이 무기들은 통상 협상뿐 아니라 안보와 동맹 협상의 결정적 레버리지로 유기적으로 연계해 활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하지만 정작 경제라인은 북핵과 동맹 외교 문제를 여전히 '외교라인이 할 일'로 여기는 각자도생식 인식을 갖고 있다.대외 의존도가 높은 한국은 경제안보 취약성이 전 세계에서 가장 높은 국가 중 하나지만, 이를 방어할 국가 시스템은 없다. 주요국들은 이미 국가적 역량을 총결집하고 있다. 일본은 2021년 경제안보담당상을 신설한 데 이어 총리 직속 경제안보센터를 통해 경제·기술·외교·정보·군사를 통합한 공급망 지도 작성과 정책 조율에 나섰다. 미국 역시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와 국무부 수석경제학자실 등을 가동해 경제와 국제관계 데이터를 융합한 정교한 외교 정책을 입안하고 있다. 반면 우리 청와대 국가안보실의 경제안보 조직은 만성적인 인력난에 시달리고, 외교부의 경제안보외교센터, 산업부의 산업자원안보실, 재정경제부의 공급망안정화위원회 등은 이름 그대로 부처별 칸막이 안에서 제각각 움직인다.
공급망, 기술, 외교, 군사가 하나로 연동된 세계에서 이러한 모래알 조직과 칸막이 구조로는 선진국들의 거친 공세를 막아낼 수 없다. 외교·안보·산업 정책을 단일한 판 위에서 일원화하고 능동적으로 국가 책략을 진두지휘할 강력한 '경제안보 컨트롤타워'를 지금이라도 만들어야 할 이유다.
김대훈 기자 daep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