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준에게 줄 난초 그림 뺏어갔네"…제자 욕심까지 작품에 쓴 김정희
추사 김정희(1786~1856)는 ‘추사체’의 창시자로 이름 높다. 어떤 획은 뭉툭하고 어떤 획은 가는 데다 글자 크기까지 제각각인데, 한 발 물러서서 보면 전체가 균형이 잡혀 있는 독창적인 글씨체가 추사체다. 그림에서도 큰 족적을 남겼다. 유홍준 국립중앙박물관장은 “김정희는 본격적인 문인화풍 바람을 일으켜 조선 미술을 바꾼 대가”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김정희는 ‘고고한 천재’가 아니었다. 신분과 지위의 높고 낮음에 상관없이, 여러 사람을 만나고 막역하게 교류하며 자신의 세계를 넓혀가는 인물이었다. 지금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 상설전시관 서화실에서 열리고 있는 ‘추사 김정희와 그의 동반자’는 김정희의 이런 면모를 보여주는 전시다. 편지와 글씨, 그림 등 38점이 그의 넓은 인간관계를 보여주는 증거다.

보물로 지정된 ‘불이선란도(不二禪蘭圖)(사진)’가 대표적이다. 노년의 어느날 김정희는 선을 몇 개 그어 난초를 그렸다. 자신을 시중드는 사람에게 선물로 주려던 참이었다. 그런데 김정희의 제자가 이 그림을 보고 한눈에 반해 작품을 가져갔다. 그래서 김정희는 그림에 이렇게 적었다. “원래 달준이라는 사람에게 주려고 친 난초인데, 제자 오규일이 보더니 억지로 빼앗아 가니 우습다.” 작품에서는 최소한의 획으로 표현한 난초와 둘레의 글씨가 균형을 이룬다.

‘해붕대사화상찬’은 세상을 떠나기 다섯 달 전에 쓴 글씨다. 1815년 김정희는 서울 수락산 학림암으로 노승 해붕(?~1826)을 찾아가 불교를 논했고, 그 자리에서 동갑내기 승려 초의선사(1786~1866)를 처음 만났다. 유학자와 승려라는 차이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마흔 해를 친구로 지냈다. 40여 년 뒤 해붕의 제자가 스승의 초상을 그린 뒤 김정희에게 글을 청해 받았다. 그 오른쪽에는 이를 읽고 감회에 젖은 초의가 지은 글이 이어 붙어 있다.

1819년 봄 김정희가 황해도의 한 무관에게 보낸 편지는 처음으로 일반에 공개된다. 그해 김정희의 아버지는 예조판서에 올랐고 자신은 과거에 급제했다. 편지에서 김정희는 “물품을 보내줘서 고맙다”며 이소식을 알렸다. ‘불이선란도’는 9월 13일까지만 걸린다. 관람은 무료, 전시는 11월 22일까지.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