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프리즘] 새벽 배송과 선의의 역설
서울에서 심야시간 운행하는 택시는 2만여 대다. 법인·개인택시가 섞여 있으니, 심야택시 운전대를 잡는 상시 자영업자·근로자만 따져도 1만 명은 족히 넘는다. 만약 기사들의 과로를 막겠다며 밤 12시 이후 택시 운행을 법으로 막는다면 어떨까. 승객 불편은 차치하고 당장 기사들이 생계를 걱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소비자와 서비스 제공자 모두 반대한다면 선의(善意)라도 악법에 가깝다.

현실에선 2012년 도입한 유통산업발전법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법 시행 후 대형마트와 기업형슈퍼마켓(SSM)은 밤 12시부터 오전 10시까지 영업할 수 없다. 온라인을 포함해서다. 또 매달 2회(주로 일요일) 문을 닫아야 한다. 전통시장과 골목상권을 보호하고 근로자 휴식권을 보장하자는 취지다.

결과는 딴판이다. 소비자는 대형마트가 쉴 때 전통시장 대신 온라인 장터로 향했다. 쿠팡 컬리 네이버 등 플랫폼과 배송 제한이 없는 식자재마트가 ‘유통 공룡’으로 변신했다. 정작 전통시장·골목상권이 부활했다는 근거는 찾기 어렵다. 소비자는 어떤가. 맞벌이 부부는 주말에 대형마트에 들렀다가 발길을 돌리기 일쑤다. 온라인에 익숙하지 않은 고령층 불편도 무시할 수 없다. 마트 상권을 공유하는 수많은 자영업자는 주말 매출 감소를 지켜보고 있다.

논란이 끊이지 않자 정부가 절충안을 찾고 있다. 산업통상부와 중소벤처기업부는 대형 유통사의 새벽 배송을 원칙적으로 허용하되 ‘소상공인과의 상생안’을 모색 중이다.

하지만 유통업계에 전달한 상생안에 유통사가 상생기금 1000억원 출연, 신선식품 품목당 1만원 이상만 배송, 소상공인 대상 도매가 판매 등이 담긴 것으로 확인되자 유통사-소상공인 간 간극은 더 벌어지는 것 같다. 대형 유통사에만 채워진 족쇄를 풀어주는 조건치고는 지나치게 가혹해서다. 대형마트 매출은 2024년 2분기부터 9분기 연속 감소세다. SSM도 마찬가지다. 홈플러스는 생사기로에 서 있다.

일각에선 유통사를 겨냥한 배송 규제가 되레 강화될까 봐 걱정하고 있다. 택배기사의 노동시간을 일일이 규제하는 방안이 추진되면서다. 기사들의 ‘건강’을 염려한다는 이유다.

더불어민주당 을지로위원회는 최근 생활물류서비스산업발전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국토교통부 장관이 작업시간 기준을 정할 수 있도록 하는 게 핵심이다. 상한이 명기되지 않았지만 주 46~48시간이 유력하다고 한다. 지난해 9월 출범한 ‘택배 사회적 대화기구’에서 다룬 주제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 찬성한다지만 현장에선 다른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기사 1만여 명이 소속된 쿠팡파트너스연합회가 지난해 야간(새벽) 배송 기사 2405명을 대상으로 조사했더니 응답자의 93%가 “새벽 배송 제한에 반대한다”고 답했다. 일하는 시간을 제한하면 이직이 불가피하다고도 했다.

낮시간 도로에 출퇴근 차량과 배송 트럭이 뒤엉켜 있다고 상상해보라. 아파트 엘리베이터를 공유하는 과정에서 생길 주민과의 갈등은 어떻게 할 텐가.

새 규제가 도입되면 배송 건수가 줄면서 수입이 쪼그라들 것이란 게 기사들의 걱정이다. 이를 벌충하려면 일하는 시간을 늘릴 수밖에 없다. 과로 가능성이 더 커진다. 택배사가 일부 보전해줘도 마찬가지다. 배송비 인상이란 형태로 소비자에게 전가되고, 결국 물량 감소라는 부메랑이 될 수 있다.

근로자 건강과 소상공인 생계 보호가 중요하지만, 그 과정에서 또 다른 종사자의 생계와 소비자 선택권을 희생시키는 건 곤란하다. 규제의 명분이 선하더라도 결과까지 선하리란 보장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