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상장사 절반 '주가누르기 기업' 낙인찍나
“지난 14일 기준 주가순자산비율(PBR)이 0.8배를 밑도는 기업은 1233곳에 달합니다. 전체 상장회사의 45%에 이르는 기업을 일률적으로 ‘주가누르기 기업’으로 낙인찍으면 오히려 주가가 더 떨어질 겁니다.”

최근 사석에선 만난 재계 고위 관계자는 ‘PBR 0.8배 미만’인 상장사를 일률적으로 주가누르기 기업으로 보고 상속·증여세 과세를 강화하려는 여당의 움직임을 이같이 우려했다. 이소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이 법안은 최근 이재명 대통령이 재정경제부의 주가누르기방지 방안을 전면 재검토하라고 지시하면서 재부상했다.

재경부는 3일 발표한 ‘2026년 세제 개편안’에서 주가누르기 기업 기준을 ‘최근 6년여 동안 PBR이 업종별 하위 10~25%에 머무른 기업’으로 정했다. 재경부 안대로라면 적용 대상은 100~120곳으로 줄어든다. 주가의 인위적인 저평가를 막는 한편 기업 활동을 지나치게 위축시키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절충안이다.

하지만 여당은 규제 대상이 너무 적어 실효성이 떨어진다고 반발했다. PBR 0.8배 미만을 일률적으로 적용하자는 주장이 힘을 얻는 이유다.

재계 관계자가 우려한 대로 여당 안이 채택되면 상장사 절반 가까이가 주가누르기 기업으로 분류된다. 더 큰 문제는 PBR 0.8배라는 기준의 적정성이다. 산업 구조 변화로 사업 전망이 어둡거나 수익성이 낮은 기업은 대주주 의도와 무관하게 PBR이 낮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PBR이 0.2배인 세아홀딩스가 대표적이다. 최대주주인 이태성 세아홀딩스 사장은 부친인 이운형 회장이 2013년 별세한 뒤 지분을 상속받았다. 상속세를 완납했기 때문에 주가를 누를 이유가 없는 기업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올 들어 약 300억원을 들여 공개매수한 자사주를 소각하는 등 ‘밸류업’에도 적극적이다. 그런데도 PBR이 0.2배에 머무르는 건 지주회사 할인(지주회사의 주가가 보유 자회사 지분가치의 합보다 낮게 평가되는 현상)과 철강업에 대한 낮은 시장 평가 등이 작용한 영향이다. 쿠팡에 밀려 PBR이 0.1~0.2배대로 떨어진 이마트와 롯데쇼핑도 비슷한 사례다.

과세당국도 고민이 크다. PBR이 0.8배를 밑도는 상장사 1200여 곳의 ‘공정가치’를 따로 매기기 위해 부동산과 자회사 지분 등을 일일이 평가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시장에서 결정된 가격인 주가를 놔두고 일부러 더 높은 평가액을 적용해 세금을 매기면 조세불복과 위헌 논란이 커질 것이란 점도 부담이다. 주가누르기방지법이 불가피한 사정으로 저평가된 기업을 낙인찍는 제도로 변질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PBR의 일률적인 적용을 다시 생각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