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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룽지, 그리고 중국이 될 수도 있었던 모습 [이번주 WSJ]
12일 WSJ 사설 원문
주룽지는 장쩌민 국가주석 아래에서 1998년부터 2003년까지 공산당과 중국 정부의 2인자로 활동하며 경제개혁을 재임 기간의 핵심 과제로 삼았다. 중국 밖에서 주룽지는 2001년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을 협상해 중국을 세계 경제체제에 편입시킨 인물로 가장 잘 알려져 있다.
중국의 WTO 가입 협정은 중국 정부에 여러 정책적 양보를 요구했다. 농산물 관세 인하와 은행업처럼 정치적으로 민감한 산업의 외국인 투자 개방 등이 포함됐다. 하지만 이후 수십 년 동안 중국 정부는 WTO 가입 당시 약속한 많은 사항을 이행하지 않았다. 서방의 보호무역주의자들은 중국이 처음부터 협정을 속이고 약속을 어길 의도였다고 보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주룽지와 같은 개혁파들은 WTO 가입 협정을 통해 자신들의 개혁 프로그램을 중국에 확고하게 뿌리내릴 수 있기를 기대했다. 본지를 포함한 서방의 자유시장주의자들이 당시 중국의 WTO 가입을 지지했던 중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중국이 자유주의적인 방향으로 발전할 경우 세계가 얻을 수 있는 이익을 고려하면 시도해 볼 가치가 있었다. 중국이 실제로 그런 방향으로 발전했다면 지금의 세계가 얼마나 달라졌을지 상상해 보라.
주룽지가 추진한 국내 개혁 프로그램은 수년 동안 상당한 진전을 이뤘다. 국유기업 축소, 정부 관료조직 감축, 민간 주택시장 조성, 중국 정부가 현대적인 국가로 기능할 수 있도록 공공재정 체계를 정비하는 조치 등이 포함됐다. 중국이 이러한 정책을 이행하면서 시장개혁을 더욱 확대할 것이라는 기대도 커졌다.
하지만 주룽지가 추진한 일부 개혁은 의도하지 않게 오늘날 중국이 겪는 문제의 토대를 마련하기도 했다. 특히 민간 부동산시장 조성과 미래의 토지 매각 수입을 담보로 지방정부가 막대한 부채를 조달하도록 부추긴 재정정책의 결합은 심각한 부작용을 낳았다.
그럼에도 중국 정부가 WTO 가입 협정에서 구상했던 금융 자유화를 끝까지 추진했다면 주택시장이 지금처럼 과도하게 팽창하거나 지방정부의 재정상태가 이토록 위태로워지지는 않았을 수도 있다. 주룽지 이후의 중국 지도자들, 특히 후진타오 국가주석은 주룽지가 추진했던 개혁 중 일부를 되돌렸다. 국유기업 관련 정책에서 이러한 후퇴가 특히 두드러졌으며, 중국의 자유시장 개혁 추진도 사실상 중단됐다.
주룽지의 정치 인생에서 가장 큰 모순은 그가 공산당 지배의 필요성을 한 번도 의심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주룽지는 마오쩌둥 시대에 연이어 정치적 숙청을 당했다. 일당 통치가 얼마나 파괴적이고 자의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지를 직접 경험했음에도 그는 공산당에 대한 믿음을 버리지 않았다.
주룽지는 부패의 폐해를 자주 강하게 비판했고 이를 척결하기 위해 행동하기도 했다. 그러나 정치적 복종을 궁극적으로 강압에 의존하는 중국과 같은 정치체제에서는 부패가 필연적으로 발생한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거나 깨닫지 못했다. 그가 재임하던 시기에도 중국 공산당은 정치적 자유와 경제적 번영 사이의 본질적인 연관성을 계속 부정했다. 한 자녀 정책과 같은 잔혹한 정책도 그대로 유지됐다.
주룽지 세대의 개혁가들이 계속 권력을 유지했다면 중국이 어떻게 달라졌을지는 알기 어렵다. 하지만 주룽지의 후계자들은 경제의 핵심 전략 부문에 대한 공산당의 통제를 다시 강화했다.
이는 중국에도, 세계에도 비극이다.
정리=김동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