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유년 시절 운동 역사는 ‘모태 비만’이라는 말 한마디로 요약된다. 체지방량에 어울리는 ‘배사장’이라는 별명을 굴레처럼 지고 살았다. 중학교 체육 시간에 3㎞ 달리기를 처음 해보고 며칠을 앓았다. 당시의 트라우마는 꽤 오래 지속됐다. 오래달리기가 얼마나 끔찍하게 싫었던지, 체력장 하는 날 결석을 해버릴 정도였다.

운동 신경마저 지독히 없었던 나는 마음먹고 운동을 시작할 때마다 어딘가 부러지거나 망가졌다. 팔, 다리, 발목이 부러지고 목과 허리의 추간판들은 탈출했으며, 종국에는 무릎연골이 찢어져 수술대에 오르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렇게 운동을 외면한 채 긴 세월이 지난 어느 날, 순전한 호기심에 지원한 풀코스 마라톤 대회에 덜컥 당첨되고 말았다. 당시 체중은 100㎏을 훌쩍 넘긴 상태였고, 자주 가던 내과 원장님은 나를 볼 때마다 “고지혈증 약이나 잘 챙겨 먹으라”며 혀를 차던 시기였다. 그렇게 시작한 달리기는 점차 탄력이 붙더니, 6개월 만에 당시 신청한 대회에 나가 마라톤 풀코스를 완주할 수 있었다.

어떻게 가능했을까. 운동을 못하든 싫어하든 부정적인 생각 따위는 인간에게 내재된 ‘러너의 본능’을 없애지 못한다.

러닝이 다른 운동과 확연히 구분되는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바로 ‘역사의 길’이다. 인류가 두 바퀴에 의지해 자전거 페달을 밟기 시작한 지는 고작 200년 남짓밖에 되지 않았다. 하지만 인간이 두 발로 대지를 박차고 달리기 시작한 지는 30만 년이 넘는다. 즉 러닝의 역사는 인류의 역사다. 대니얼 리버먼 하버드대 인간진화생물학과 교수 등 진화 연구자는 인체가 다른 동물과 달리 오래 달릴 수 있도록 설계돼 있다고 주장한다. 체모가 적어 달릴 때 발생하는 열을 쉽게 배출할 수 있고, 상체가 앞으로 쏠리는 것을 막기 위해 대둔근이 발달했으며, 효율과 내구성이 좋은 아킬레스건을 갖고 있는 점 등이 근거다.

그 덕분에 현대인은 40㎞가 넘는 엄청난 거리를 달릴 수 있으며, 이는 다른 영장류에게서는 볼 수 없는 고유한 특징이다. 560㎞를 80시간 넘게 쉬지 않고 달린 딘 카나제스의 기록도 있다. 자전거의 균형을 잡는 능력이나 골프 스윙의 궤도를 멋지게 유지하면서 공을 때릴 수 있는 능력은 타고나지 않았다. 그것들은 철저히 ‘학습의 영역’이다. 하지만 ‘달리는 법’은 유전자 깊숙한 곳에 각인돼 있다.

그러니 혹시라도 당신의 빈약한 체력, 불어난 체중 혹은 나이와 과거의 상처로 달리기를 주저하고 있다면 다시 한번 생각해 보길 바란다. 나약한 신체 속에서도 30만 년을 면면히 이어온 위대한 장거리 러너의 본능은 조용히 숨 쉬고 있다. 그저 운동화 끈을 묶고 문밖으로 나서기만 하면 된다. 우리는, 원래 달리기 위해 태어났으므로.

나연만 소설가(Wave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