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창신메모리 쇼크가 던진 경고
지난달 28일 글로벌 반도체 관련주들은 폭격을 맞은 듯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10% 넘게 밀리며 이날 하루 시가총액이 400조원 가까이 줄었다. 미국 마이크론과 일본 키옥시아도 속절없이 추락했다. 이날 코스피지수 낙폭은 경제위기와 전쟁이 벌어졌을 때나 볼 법한 수준이었다.

여러 이유가 있었지만 직접적인 방아쇠를 당긴 것은 중국 반도체 회사 창신메모리테크놀로지(CXMT)였다. 전날 이 회사가 중국 상하이증권거래소에 상장하고 단숨에 시총 1위에 오르자 벌어진 현상이다. 마치 전 세계 투자자가 ‘중국 반도체 굴기’의 실체를 목도하고 잠재돼 있던 두려움을 한꺼번에 분출하는 듯했다. 이 회사는 그 정도 깜냥이 되나. 이 공포는 실체가 있는 것인가.

CXMT의 증시 데뷔는 그만큼 파격적이었다. 공상은행을 제치고 중국 본토 기업 중 시총 1위를 차지한 것부터가 ‘사건’이다. 매년 70조~80조원을 따박따박 버는 중국 최대 은행의 몸값을, 작년에 겨우 흑자전환한 10년 차 기업이 제쳤다. CXMT 상장에 맞춰 세계 주요 증권사가 내놓은 목표주가도 입이 벌어질 만하다.

노무라증권은 이 회사 목표주가로 116위안을 제시했다. 시총으로 환산하면 7조7600억위안(약 1620조원)에 해당한다. 삼성전자 시총은 현재 1400조원 남짓이다. 노무라는 CXMT가 지금의 삼성전자보다 더 커질 것이라고 본 것이다. UBS는 노무라만큼 파격적이지 않지만 그래도 현재 SK하이닉스 시총인 1000조원까지 도달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글로벌 시장 점유율은 각각 39%, 26% 안팎인데 이제 고작 8%인 회사가 이런 평가를 받고 있다.

우리 기업과 투자자 입장에선 황당할 수밖에 없다. 잘 알려졌다시피 CXMT는 기술적 측면에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상대가 되기에 역부족이다. 범용 D램에서는 빠르게 격차를 좁히고 있지만 아직 간극이 크다. 인공지능(AI) 시대 승부처인 고대역폭메모리(HBM)는 한참이나 뒤처져 있다. 미세공정과 첨단 패키징, 글로벌 고객사 인증까지 넘어야 할 산이 많다. 미국의 반도체 장비 수출 통제 때문에 첨단 장비 접근에도 제약을 받는다. 지금 자본시장 분위기와 증권사의 판단은 명백하게 합리적 수준을 벗어나 보인다.

하지만 마냥 평가절하하기엔 CXMT의 속도전이 예사롭지 않다. 이 회사의 범용 D램 제품군이 시장 전문가들 예상보다 빠른 속도로 팔려나가고 있다. HP, 에이서 등 글로벌 PC 제조사들이 이 회사 D램을 도입했고 애플도 구매를 협의 중이다. CXMT의 D램 웨이퍼 생산능력은 지금 월 30만 장 안팎이지만 2년 후에는 60만 장을 넘어설 전망이다. 현재 삼성전자 D램 생산능력의 턱밑에 접근하는 규모다. D램만 따지면 전 세계 업체 중 증설 속도가 가장 빠르다. 중국 정부까지 나서 이 회사를 테크 분야 국가대표로 키우기 위해 전폭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CXMT 상장을 앞두고 중국 정부가 심사 절차를 앞당기는 ‘기업공개(IPO) 사전 심사 제도’를 도입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지금 CXMT와 중국 정부의 행보는 과거 디스플레이, 2차전지 등 주요 테크 분야에서 중국의 대표주자인 BOE, CATL이 한국 경쟁 기업을 밀어낼 때와 유사하다. 정부 차원의 일사불란한 지원과 자국 수요에 기대어 일단 생산량을 늘린 뒤 이를 바탕으로 수율을 높이고, 벌어들인 돈을 재투자해 기술을 고도화하고 글로벌 패권을 차지해가는 그 패턴 말이다. CXMT 등장에 세계 자본시장이 요동친 것은 그 학습효과 때문이다.

실제로 중국은 반도체 자강을 위한 본격적 행보에 나서고 있다. 올해 초 제15차 5개년 계획에서 반도체를 핵심 기술 자립의 중심축으로 두고 투자를 늘리고 있다. CXMT의 대규모 IPO는 그 신호탄이다. 우리는 또 한 번 시험대에 섰다. 철강, 화학 등 전통 제조업부터 시작해 디스플레이, 2차전지 등 테크 분야까지 한국은 매번 “기술력에서 앞선다” “하이엔드 시장은 유리하다”고 자신하다가 주도권을 내줬다. 반도체마저 그렇게 되면 우리 경제가 어디로 갈지 가늠하기 어렵다. 지금 양국이 벌이는 이 총력전에 우리 국운이 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