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립교향악단(서울시향)이 '전쟁의 비극을 딛고 평화로 나아가자'는 인류 보편적 메시지를 싣고 유럽 투어에 나선다. 클래식 음악의 본고장 유럽에서 K클래식 악단의 역량을 입증할 시간이다.
12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 '2026 서울시향 유럽투어 프리뷰 콘서트'에서 바리톤 마티아스 괴르네가 존 애덤스의 '부상 처치사'를 부르고 있다./사진=서울시립교향악단
지난 12일 저녁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 '유럽 투어 프리뷰 콘서트'는 2주 앞으로 다가온 유럽 3개국 순회공연(8월 25~31일)을 국내 관객에게 먼저 선보인 자리였다. 미국 작곡가 존 애덤스의 '부상 처치사(The Wound-Dresser)'부터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까지 이날 연주한 레퍼토리를 유럽 무대에 그대로 올린다.
이날 공연은 두 작품의 배치 자체로 서울시향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명확히 드러냈다. 1부에서 연주된 '부상 처치사'는 시인 윌트 휘트먼이 미국을 휩쓴 남북전쟁(1861~1865년) 당시 다친 병사들을 치료하는 응급 처치사로 활동한 경험을 바탕으로 쓴 동명 시에 작곡가 존 애덤스가 멜로디를 붙인 작품이다. "총알이 뚫은 어깨", "복부에 난 상처" 등 전쟁의 참상을 있는 그대로 비추는 노랫말은 지금 이 순간에도 이어지는 비극을 선명히 떠올리게 했다.
이어진 2부의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은 프리드리히 실러의 시 '환희의 송가'를 통해 끝내 연대와 화합으로 나아가는 희망을 노래했다. 이러한 음악적 메시지는 5년째 이어지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그늘 아래 있는 유럽 관객들에게도 깊은 울림을 남기기에 충분했다.
12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 '2026 서울시향 유럽투어 프리뷰 콘서트'에서 얍 판 츠베덴 서울시향 음악감독이 역동적인 지휘로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을 연주하고 있다./사진=서울시립교향악단
하지만 공연 내용에 있어선 관객 평가가 극명하게 나뉘었다. 독일 출신의 세계적인 바리톤 마티아스 괴르네가 협연한 1부 '부상 처치사'는 괴르네의 깊이 있는 음색과 압도적인 표현력에 힘입어 대체로 호평받았다. 반면 이번 콘서트의 타이틀로 내걸린 베토벤의 '합창'은 평소 서울시향이 보여준 호연으로 한껏 높아진 관객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는 평가도 뒤따랐다.
첫 곡 '부상 처치사'는 잔잔하면서도 위태로운 바이올린의 떨림으로 문을 열며 내내 음울한 분위기를 드리웠다. 특히 괴르네의 묵직한 저음과 불안하게 흔들리는 현의 대조가 인상적이었다. 관현악의 아스라한 울림은 마치 포탄이 떨어진 뒤 피어오르는 잿빛 연기처럼 긴 잔향을 남겼다. 보면대를 단단히 거머쥔 채 노래에 몰입하는 괴르네의 모습은 마치 단상 위 교수님처럼 범접할 수 없는 아우라를 풍겼다. 무대가 끝난 뒤 객석에선 '브라보'가 터져 나왔다.
왼쪽부터 얍 판 츠베덴 서울시향 음악감독, 바리톤 마티아스 괴르네, 테너 손지훈, 메조소프라노 이아경, 소프라노 최지은./사진=서울시립교향악단
휴식 후 시작된 2부는 베토벤의 위대한 유산 '합창'으로 채워졌다. 얍 판 츠베덴 서울시향 음악감독이 지휘봉을 들어 올린 후 연주가 끝날 때까지 걸린 시간은 단 58분. 국내외 대다수 악단의 연주가 1시간 10분 안팎에 수렴하는 점을 감안하면 이례적일 만큼 빠른 전개였다.
압도적인 속도감은 어떤 관객에겐 엄청난 몰입감을 선사했다. 하지만 빠른 템포가 계속해서 휘몰아치는 바람에 바이올린 선율이 일부 뭉개지는 듯했고, 감정이 고조돼야 할 클라이맥스에선 음악에 진득하게 젖어들지 못하는 아쉬움을 남겼다. 그럼에도 엄청난 속도를 이어가면서도 균형을 잃지 않는 서울시향의 탄탄한 연주력은 그 자체로 인상적이었다.
하이라이트는 성악가 네 명(소프라노 최지은·메조소프라노 이아경·테너 손지훈· 바리톤 마티아스 괴르네)과 국립합창단의 목소리가 더해진 4악장이었다. 괴르네가 모국어인 독일어로 외친 도입부 '오 벗들이여, 이 소리가 아니오!(O Freunde, nicht diese Toene!)'를 시작으로 '기쁨(Freude)' 등 핵심 노랫말이 귓가에 선명히 와닿았다. 다만 상대적으로 큰 소프라노 성량에 다른 성악가들의 음색이 묻힌 점은 아쉬웠다.
서울시향의 이번 유럽 투어는 오는 25~26일 스페인을 시작으로, 28일 이탈리아, 30~31일 네덜란드로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