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냄비 속 개구리', 이제 뛰어오를 시간
2023년 글로벌 컨설팅사 맥킨지는 한국경제 보고서에서 우리나라를 ‘서서히 끓는 냄비 속 개구리’에 비유하며, 이제는 냄비 밖으로 뛰쳐나갈 역량을 길러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국은 제조업과 수출을 바탕으로 ‘개구리 도약(leapfrogging)’이라 불릴 만큼 놀라운 발전을 이뤄왔다. 그러나 그 성장 모델은 더 이상 과거만큼의 힘을 내지 못하고 있다. 경제안보, 인공지능(AI) 혁명, 에너지 전환으로 냄비 속 물은 점점 뜨거워지는데, 새로운 성장동력 개발과 중소기업·서비스업의 생산성 향상에 투자돼야 할 자본은 부동산과 사교육으로 흘러갔다. 긴장하고 움직이지 않으면 한국경제라는 개구리는 뜨거운 냄비 속에서 성장이 멈춰버릴 수 있다는 경고다.

지금 우리 경제는 반도체 수출 호조에 힘입어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꽤 괜찮은 ‘컨디션’이다. 이는 우리 반도체가 AI 시대에 고대역폭메모리(HBM)라는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아낸 결과다. 이제 중요한 것은 이 흐름을 산업 전반의 진짜 ‘체력’, 곧 경쟁력 강화로 확산하는 일이다.

세계 산업 질서는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 AI와 탄소중립이 새로운 경쟁의 기준이 됐고, 기술·에너지·서비스가 결합한 산업 생태계의 주도권을 둘러싼 경쟁이 본격화했다. 국가 간 협력도 더 이상 자유롭지 않으며, 실력이 없으면 외면당하는 냉혹한 통상환경으로 이미 바뀌고 있다.

최근 한국경제인협회가 ‘뉴 K인더스트리 포럼’을 출범시킨 것도 이러한 문제의식에서다. 뉴 K인더스트리는 과거 패스트 팔로어형 성장 방식을 넘어 대한민국의 향후 30년을 준비하는 산업 전환 전략을 표방한다. 산업화 시대의 제조업 육성이 산업정책 1.0, 디지털 시대의 ICT 기반 확충이 2.0이었다면, 이제는 기술과 에너지, 서비스, 제도를 하나의 체계로 연결하는 ‘산업정책 3.0’을 논의할 때다.

포럼이 제시한 ‘3+1 전략(AX·GX·SX+IX)’은 이러한 방향을 구체화한 틀이다. 산업 현장에 AI를 접목해 생산성을 높이는 인공지능 전환(AX), 탄소중립 대응을 청정에너지와 신시장 창출의 기회로 삼는 녹색 전환(GX), 제조업과 서비스업의 융합으로 부가가치를 높이는 서비스 혁신(SX)이 세 축이다. 여기에 규제·인재·금융 등 산업 기반을 개선하는 인프라 혁신(IX)을 더했다. 특히 정부의 자본시장 개혁 노력과 맞물려 부동산으로 쏠렸던 자본의 물길이 산업과 기술로 돌아오기 시작한 지금, 이 흐름을 산업 생태계의 투자로 연결하는 것이 IX의 핵심 과제가 될 것이다.

이 포럼이 여느 담론의 장과 다른 점은 실행 주체가 전면에 서 있다는 것이다. 산업 현장을 아는 기업계 전문가가 논의를 주도하고, 학계와 공공분야 전문가가 함께 참여해 실천 가능한 결과를 도출하는 구조다. 정부 정책과 기업 현장을 잇는 상시 플랫폼으로 작동한다면, 산업계의 경험이 정책 설계에 반영되고 정책의 실행력도 한층 높아질 것이다.

단단한 체력은 단기간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반도체가 대한민국 경제의 핵심 산업으로 자리 잡기까지 오랜 투자와 인재 양성, 민관 협력이 필요했듯이 미래 산업의 경쟁력도 꾸준한 준비와 실행을 통해 축적된다.

이제 좋은 컨디션에 도취해 있을 겨를이 없다. 반도체가 벌어준 이 소중한 골든타임에 뉴 K-인더스트리를 통한 체력 증진에 나서야 한다. 달아오른 냄비에서 탈출해 새로운 도약을 시작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