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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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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9년 영국 의회는 단결금지법을 만들었다. 노동자들이 모여 임금 인상을 요구하는 행위 자체를 범죄로 규정한 법이었다. 재봉공도 제화공도 동료와 품삯을 의논했다는 이유로 감옥에 갔다. 죄명은 공모죄였다. 오늘의 언어로 옮기면 노동력의 가격 담합이다.

그로부터 두 세기가 흐르는 동안 그 '담합'은 범죄에서 권리로 자리를 옮겼다. 우리도 같은 길을 걸었다. 1948년 제헌헌법이 근로자의 단결권을 기본권으로 새겼고, 현행 헌법 제33조가 이를 잇는다. 물론 조문이 곧 현실은 아니어서 이 땅의 단결권이 문서 밖으로 걸어 나오기까지는 1970년 전태일의 죽음과 1987년의 뜨거운 여름을 더 지나야 했다. 그 먼 길을 건너게 한 다리는 하나의 자각이었다. 개별 노동자와 사용자 사이의 힘의 격차는 대등한 계약을 불가능하게 한다는 것, 바로 그것이다.

2026년 한국에서 그 경계선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번에 선을 넘는 것은 노동자가 아니라 816만 명의 사업자다. 정부가 지난 6월 30일 국무회의에 보고한 방안에 따르면 앞으로는 소상공인과 중소기업이 대기업을 상대로 가격과 거래조건을 공동으로 협상하거나 공동 납품 거부와 같은 단체행동을 해도 담합으로 보지 않게 된다. 참가자가 모두 소기업이면 공정위에 통지하는 것만으로 즉시 면제되고 효력은 5년간 유지된다. 대상은 국내 사업자의 98.2%, 약 816만 개다. 국회에서는 협상을 요구받은 대기업에 성실교섭의무까지 지우는 법안들이 발의돼 있다.

담합을 규제해 온 나라가 일정한 담합을 허용하겠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물어야 한다. 착한 담합이란 과연 존재하는가.

같은 합의인데 왜 하나는 담합이고 하나는 교섭인가

결론부터 말하면 이 방안은 환영할 일이다. 다만 그 이유를 정확히 짚어야 한다. 밀가루 제분사들의 담합과 치킨집 사장들의 공동협상은 법적 구조로는 같은 '경쟁자 간 합의'지만 겨누는 상대가 정반대다.

전자는 힘을 합쳐 맞설 수단이 없는 소비자에게 가격을 밀어붙이는 카르텔이고, 후자는 힘을 합쳐 거절할 힘이 있는 우월한 상대에게 거래조건의 균형을 요구하는 공동교섭이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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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합 금지가 보호하려는 것은 경쟁 그 자체다. 그러나 협상 테이블 한쪽에만 코끼리가 앉아 있는 시장에서는 약자들의 연합이 경쟁을 해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경쟁의 조건을 회복시킬 수 있다. 경제학에서 말하는 대항력(countervailing power)의 논리다. 노동자의 단결이 처벌받지 않는 이유도 그것이 단순히 '담합이 아니기 때문'이라기보다 힘의 불균형을 교정하기 위한 집단적 교섭을 권리로 인정했기 때문이다.

사실 이 아이디어는 새것도 아니다. 현행 공정거래법에도 소규모 사업자 조합에 대한 적용제외 조항이 있고, 가맹사업법과 대리점법에는 점주·대리점 단체의 협의요청권이 이미 들어 있다. 문제는 어느 것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데 있다. 적용제외는 요건이 좁아 사실상 사문화됐고, 협의요청권은 오랫동안 본사가 거절하면 그만인 권리에 가까웠다. 뒤늦게 점주단체 등록제가 도입돼 올해 말부터 본부의 협의의무가 생긴다.

하루 12시간을 일해도 근로자가 아니어서 노동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사업자라서 뭉치면 담합이 되는 가맹점주의 처지를 지난달 이 지면에서 다룬 바 있다. 이번 개편은 그 사각지대에 노동법이 두 세기 전에 걸어간 길을 이식하려는 시도다. 무에서 유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죽어 있던 조문에 실효성이라는 숨을 불어넣는 작업이다. 방향은 옳다.

소비자 피해·무임승차·대표성이라는 세 가지 함정

방향이 옳다고 길이 평탄한 것은 아니다.

첫째, 소비자 전가의 문제다. 점주들이 본사에서 받아낸 조건 개선이 소비자가격 인상의 명분으로 흘러가면 착한 담합은 순식간에 그냥 담합이 된다. 정부안이 소비자 피해나 물가 급등 시 사후 금지명령을 내릴 수 있도록 하고 입찰담합을 제외한 것은 이 위험을 의식한 설계다.

둘째, 단체는 과연 만들어질 수 있는가. 816만 사업자는 숫자로는 거대하지만 현실에서는 모래알처럼 흩어져 있다. 협상의 성과는 참여하지 않은 이웃 가게도 함께 누릴 수 있지만 협상의 비용과 보복의 위험은 나선 사람만 진다. 무임승차가 합리적 선택이 되는 구조에서 자발적 단결은 생각만큼 쉽게 일어나지 않는다. 단체 가입을 이유로 계약 갱신에서 불이익을 겪었다는 점주들의 호소가 끊이지 않는 현실이 그 방증이다. 권리를 주는 것과 권리를 쓸 수 있게 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셋째, 그래서 더 우려되는 것이 대표성의 문제다. 흩어진 개별 사업자 대신 기존 협회나 단체가 협상권을 쥐게 될 가능성이 높은데, 그 단체가 정말 현장의 사장님들을 대표하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일부 회원의 목소리만 담은 단체가 816만 사업자의 이름으로 협상하고 그 권한이 특정 단체의 세력 확장이나 이권의 통로가 된다면, 을을 위한 제도가 을들 위에 군림하는 새로운 갑을 만들 수도 있다.

국회안처럼 상대방에게 성실교섭의무까지 지우는 경우라면 문제는 더 무거워진다. 대표성이 검증되지 않은 단체에 법이 교섭 상대방의 지위를 부여하는 순간, 계약 상대방을 선택할 자유라는 사적 자치의 원칙과 충돌할 수 있기 때문이다.

'착한 담합'과 '그냥 담합'의 경계선을 그어야

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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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법은 제도의 설계에 있다. 우선 통지제를 형식적 심사에 그치게 해서는 안 된다. 협상 참가자와 상대방, 행위 내용을 특정해 통지하도록 한 취지를 살려 누구를 대표해 무엇을 협상하는지가 문서로 드러나게 해야 한다.

다음으로 단체의 대표성 요건을 두어야 한다. 가맹사업법이 점주단체 등록에 가입률 요건을 둔 것처럼 누구를 대표하는지 확인할 수 있어야 하고, 협상 결과가 참여자에게 보고되는 최소한의 민주적 절차도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소비자가격을 직접 정하는 합의는 면제 대상에서 제외한다는 원칙을 법문에 명시하고, 5년의 면제 기간이 끝날 때마다 성과와 부작용을 실증적으로 평가해 갱신 여부를 정해야 한다. 교섭의 상대가 우월한 거래상대방일 때만 '착한 담합'이고, 소비자를 향해 가격을 정하는 순간 '그냥 담합'이라는 경계선이 이 제도의 생명선이기 때문이다.

노동자의 단결이 범죄에서 기본권이 되기까지 두 세기가 걸렸다. 사업자의 단결이 담합에서 협상력이 되는 데에는 그만큼의 시간이 필요하지 않기를 바란다. 힘센 자들의 연합은 시장을 죽이고, 약한 자들의 연합은 시장을 살릴 수 있다. 관건은 그 경계선을 누가, 얼마나 정교하게 지키느냐다.

착한 담합은 존재할 수 있다. 다만 저절로 착해지는 담합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