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주년 맞은 독일 바이로이트 축제 극장 / 사진 출처. 바이로이트 축제 공식 홈페이지
150주년 맞은 독일 바이로이트 축제 극장 / 사진 출처. 바이로이트 축제 공식 홈페이지
독일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이 150주년을 맞아 인공지능(AI)을 오페라 무대의 중심에 세웠다. 리하르트 바그너의 4부작 <니벨룽의 반지>의 마지막 작품, '신들의 황혼(Götterdämmerung)'에 실시간 AI 영상 프로젝트 'Ring 10010110'을 접목한 것이다. 프로젝트명 '10010110'은 컴퓨터 2진법으로 숫자 150을 뜻한다.

현지시간 1일 바이로이트 축제극장에서 막을 올린 이번 공연은 9일과 16일까지 총 세 차례 무대에 오른다. 지휘는 바그너 해석의 최고 권위자인 크리스티안 틸레만이 잡았고, AI 프로젝트는 도르트문트 연극·디지털 아카데미 원장인 마르쿠스 로베스가 총괄했다.

주요 외신에 따르면, 올해 바이로이트의 최대 화두는 단연 음악보다 'AI'였다. 바이로이트는 지난 150년간 축적된 공연 영상과 무대 디자인, 문헌 자료를 프롬프트한 뒤, 공연 중 무대 앞 스크린에 인공지능이 생성한 새로운 이미지를 실시간으로 송출했다. 같은 악보, 같은 출연진이라도 매회 전혀 다른 영상이 펼쳐지는 구조다. AP통신은 이를 두고 "모든 회차의 공연이 단 하나뿐인(Every performance will be unique) 독창적 작품이 되도록 한 실험"이라고 평가했다.
150주년 맞은 독일 바이로이트 축제의 '신들의 황혼' 지휘한 크리스티안 틸레만 / 사진 출처. 크리스티안 틸레만 공식 홈페이지
150주년 맞은 독일 바이로이트 축제의 '신들의 황혼' 지휘한 크리스티안 틸레만 / 사진 출처. 크리스티안 틸레만 공식 홈페이지
공연예술계에서도 보기 드문 시도다. 8월 1일 첫 공연과 16일 마지막 공연을 보는 관객은 같은 음악을 듣지만, 완전히 다른 무대를 경험하게 된다. 완결된 결과물로서의 오페라가 매회 다르게 '생성'되는 가변적 예술로 확장된 셈이다.

하지만 커튼콜이 시작되자 객석의 반응은 극과 극으로 갈렸다. AP통신과 독일 현지 언론 WELT 등에 따르면 거장 크리스티안 틸레만이 이끈 바이로이트 축제 오케스트라와 성악진에게는 기립박수와 환호가 쏟아졌다. 반면, AI 프로젝트 제작진이 관객에게 인사하기 위해 무대에 오르자 객석에서는 거센 야유와 휘파람이 터져 나왔다. 외신들은 관객들이 야유를 보낸 이유가 AI 기술 자체보다 '연출의 부재(fehlende Regie)'에 있었다고 분석했다.
마르쿠스 로베스의 기획으로 AI가 생성한 영상이 가미된 바이로이트 페스티벌 150주년 기념 공연 <신들의 황혼>의 한 장면 / © Enrico Nawrath
마르쿠스 로베스의 기획으로 AI가 생성한 영상이 가미된 바이로이트 페스티벌 150주년 기념 공연 <신들의 황혼>의 한 장면 / © Enrico Nawrath
독일 WELT는 "AI가 생성한 영상이 성악가의 연기와 바그너의 서사보다 과하게 시선을 끌었고, 일부 장면에서는 투사 영상이 가수의 모습마저 가렸다"고 보도했다. 휴식 시간 관객들 사이에서는 "이미지가 뒤죽박죽"이라는 혹평이 나왔다. 성악가들 간의 상호작용이 묻혀 바그너 음악극의 핵심인 '연극적 요소'가 사라졌다는 비판도 잇따랐다.

외신들은 "이번 실험은 결국 바그너의 핵심 철학인 '총체예술(Gesamtkunstwerk)' 개념을 다시 호출했다."고 전했다. 음악, 시, 연기, 무대미술, 조명이 유기적으로 결합해야 하는 총체예술의 관점에서, 이번 AI는 방대한 아카이브 수집에는 성공했을지 몰라도 음악의 호흡과 인물의 심리, 서사의 긴장감을 해석하는 데 실패했다. '창작의 영역'에서 관객을 설득하지 못한 것이다. 역설적으로 무대에서 가장 빛난 것은 AI가 아닌 '인간 예술가'들이었다.
AI 영상 연출은 혹평을 받았지만, 음악적으로 찬사를 받은 바이로이트 페스티벌 150주년 기념 공연 신들의 황혼의 한 장면  © Enrico Nawrath
AI 영상 연출은 혹평을 받았지만, 음악적으로 찬사를 받은 바이로이트 페스티벌 150주년 기념 공연 신들의 황혼의 한 장면 © Enrico Nawrath
이번 공연은 왜 '오페라'라는 장르가 수백 년의 시간을 넘어 꾸준히 오늘날의 언어로 재창조되는지를 역설적으로 보여준 사건이다. 현장을 찾은 관객들이 느낀 점은 오페라의 본질이 성악가, 오케스트라 등 인간의 감정을 통해 연주된 음악을 관객이 저마다의 해석으로 받아들이게 하는 데 있다. 오페라 연출의 본질이 단순히 장면을 만들어내는 것만이 아니었던 것이다.

물론 이번 시도가 의미 없는 실패는 아니다. AI는 향후 무대 시뮬레이션, 조명 및 영상 디자인, 제작 시스템 등 다양한 보조 영역에서 혁신적인 도구가 될 가능성을 입증했다. 150주년을 맞은 바이로이트의 과감한 실험이 남긴 메시지는 명확했다. 기술은 예술을 도울 수 있지만, 적어도 무대 위 오페라의 작품성을 결정짓는 연출의 중심은 여전히 '인간'에게 있다는 것이다.

조동균 기자 chodog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