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추천 뉴스
[한경에세이] 멜버른행 비행기는 어디에?
로스 그레고리 주한호주상공회의소 회장
한국을 제2의 고향으로 삼은 사람으로서 뿌듯한 소식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뿌듯함에 자꾸 아쉬움이 섞인다. 정작 내 첫 번째 고향인 멜버른으로 가는 직항편은 ‘계절성 노선’으로 분류돼 성수기에만 운항하고, 연말이면 그마저도 운항지 목록에서 완전히 사라지기 때문이다.
내겐 불평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멜브스(Melbs)’라는 애칭으로 더 많이 부르는 멜버른은 인구 500만 명이 넘는 호주 제2의 도시다. 결코 이름 없는 외딴 도시가 아니다. 멜버른에는 한국 교민도 많이 거주하고 있다. 유학이나 워킹홀리데이로 이곳을 찾는 한국인도 많다. 지난해엔 멜버른에 코리아타운까지 생겼다.
서울과 멜버른의 인연은 이처럼 갈수록 깊어지고 있지만, 두 도시를 오가는 길은 오히려 멀어지고 있다. 내가 1년에 수차례 가족을 만나러 가려면 ‘공항 룰렛’을 돌려야 했다. 시드니나 브리즈번에서 국내선으로 환승하거나 베이징, 상하이, 홍콩, 싱가포르, 쿠알라룸푸르, 방콕, 도쿄, 타이베이, 마닐라, 호찌민 등 수많은 아시아 허브 공항을 거쳐 가야 한다. 사실 내가 정말 자주 이용하고 싶은 인천공항만 빼면 아시아의 거의 모든 주요 공항을 통해 멜버른에 갈 수 있는 셈이다.
물론 싱가포르 창이공항에서 몇 시간을 더 보내는 것이 내게 대단한 고생은 아니다. 하지만 해외에서 10년, 20년 살다 보면 환승의 새로움도 사라진다. 고향에 갈 때만큼은 그냥 곧장 가고 싶다.
한동안 아시아나항공이 계절성 노선을 운항했다. 적어도 누군가는 수요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 노선도 올해 말이면 사라진다. 오래전에는 대한항공 직항편도 있었다. 이제 그것으로 끝이다. 내 고향에 갈 때마다 불필요한 경유를 해야 하는 건 이제 선택이 아니라 필수 사항이다.
흥미로운 것은 서울에서 멜버른보다 훨씬 작은 도시로도 직항편이 수십 개나 있다는 점이다. 물론 항공사가 노선을 결정할 때는 승객 수요와 수익성, 항공기 운영 여건 등 여러 요소를 종합적으로 고려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분명 충분한 상업적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래도 의문은 남는다. 서울과 멜버른처럼 세계 최대 규모의 두 도시 사이에 직항편이 없는 경우가 또 얼마나 될까?
혹시 이 글을 읽는 항공사 관계자가 있다면 조심스럽게 제안하고 싶다. 멜버른 직항편을 다시 띄워 주시라. 첫 직항편이 생긴다면 기꺼이 가장 먼저 손을 들어 비행기표를 사겠다. 서울 곳곳에서 마주치는 수많은 호주인과 빅토리아주로 향하는 한국인 수를 생각하면, 그 비행기에 나 혼자 타게 될 일은 아마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