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AI 깐부를 키우는 마중물
최근 양재 서울 AI 허브에 입주한 인공지능(AI) 3차원(3D) 콘텐츠 개발 스타트업 대표와 현장 간담회를 한 적이 있다. 3년 연속 CES 혁신상을 받은 기업인이었는데, 그날 꺼낸 이야기는 거창한 기술이나 투자 문제가 아니었다. 직원들의 출퇴근과 주요 거점 간 이동이 불편하다는 것이었다.

첨단기술을 개발하는 기업의 고민도 결국 사람들의 일상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이 인상적이었다. 그 건의는 특구 안의 교류와 이동 편의를 위한 ‘서초 AI 특구 순환버스’ 운행으로 이어졌다. 현장의 한마디가 변화의 계기가 되는 과정을 함께하며, 행정이 해야 할 일은 멀리 있는 거대한 해답보다 가까운 불편을 먼저 알아차리는 데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얼마 전에는 뜻깊은 일도 있었다. 서초구 내 AI 스타트업의 성장을 지원하기 위해 만든 ‘서초AICT(AI와 ICT 합성어) 우수기업센터’에 입주한 기업 대표가 구청을 찾아왔다. 그는 “누구나 다 아는 미국 굴지의 AI 업체로부터 공식 파트너로 선정됐다”며 “좋은 연구개발과 경영을 할 수 있도록 센터가 지원해준 덕에 성과를 낼 수 있었다”고 고마워했다.

두어 달 전 이 센터에 입주한 시리즈B 기업의 대표 부부도 떠오른다. 두 사람은 평범한 부부처럼 보였지만, 그들이 개발한 기술은 평범하지 않았다. 이 회사의 사이버 보안 솔루션은 청와대, 국가정보원, 삼성 등 500여 곳에 납품됐다. 세계에서 하나뿐인 AI 기반 보안 솔루션을 바탕으로 튀르키예와 카자흐스탄에 현지 법인을 세웠고, 일본 최대 기업 진출도 앞두고 있다. 두 사람은 “앞으로 센터에서 다른 업체들과 협업해 만들어낼 시너지가 기대된다”고 했다.

한 기업의 성장은 그 기업만의 성과로 끝나지 않는다. 가까이 있는 기업과 기술을 나누고 사람을 만나며 새로운 가능성을 창출하기도 한다. 시세의 5분의 1 수준인 임차료로 운영되는 센터지만, 기업들이 한곳에 모이는 공간은 단순히 사무실을 제공하는 장소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센터가 AI 기업 간 ‘깐부(단짝 친구)’를 만들어주는 공간인 셈이다.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가슴이 뭉클해진다. 기업이 이룬 성과 전부를 행정의 공으로 돌릴 수는 없다. 기술을 개발하고 시장을 개척한 것은 기업과 구성원이다. 다만 그들의 성장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됐다는 말을 듣는 일은 행정을 하는 사람에게 큰 보람으로 남는다.

나는 ‘마중’이라는 말을 참 좋아한다. 반가운 사람이 나를 찾아오는데 기다릴 수가 없어 설레는 마음으로 달려 나가는 모습은 얼마나 정겹고 아름다운가. 나는 공공행정의 역할이 ‘마중물’과 같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펌프에 먼저 물을 부어야 땅속의 물이 올라오듯, 공공의 지원과 초기 투자는 기업이 스스로 성장하도록 첫걸음을 열어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어둠을 밝히는 등불 아래에서 제4, 제5의 AI 깐부가 만나 서로 손잡는 모습을 그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