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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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상반기 신입사원 공채에서 1~2주 동안 이력서 200개를 직접 다 봤는데 다 비슷했어요. 특히 자기소개서는 차이점을 찾기 어렵습니다."

메르세데스벤츠의 국내 공식 판매법인인 한성자동차 한 인사담당자는 기자 질문에 채용 과정에서의 어려움을 이같이 토로했다. 인공지능(AI)을 사용해 자기소개서를 작성하는 지원자가 늘면서 서류 전형에서부터 역량을 가려내기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AI가 취업 준비의 '기본값'이 되면서 기업들도 지원자를 검증하는 방식 자체를 다시 설계하고 있다.
취준생이 AI를 활용해 자소서를 쓰는 모습. /사진=챗GPT으로 생성한 장면
취준생이 AI를 활용해 자소서를 쓰는 모습. /사진=챗GPT으로 생성한 장면

평준화한 자기소개서…AI 티 없애는 유료 서비스까지

30일 서울 송파구 잠실동 롯데월드타워에서 HR 솔루션 전문 기업 마이다스인가  AI 세대의 서류·면접 선발 전략 주제로 연 '2026 하반기 채용 전략 세미나'에 131명의 인사담당자가 참석했다. /사진=박수빈 기자
30일 서울 송파구 잠실동 롯데월드타워에서 HR 솔루션 전문 기업 마이다스인가 AI 세대의 서류·면접 선발 전략 주제로 연 '2026 하반기 채용 전략 세미나'에 131명의 인사담당자가 참석했다. /사진=박수빈 기자
이 같은 고민은 한 기업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30일 서울 송파구 잠실동 롯데월드타워에서 HR 솔루션 전문 기업 마이다스인이 연 '2026 하반기 채용 전략 세미나'의 핵심 주제 역시 AI 세대의 서류·면접 선발 전략이었다. 해당 세미나에는 131명의 인사 담당자, 102개 기업이 참여했을 만큼 업계 관심도가 높았다. SK AX, CJ푸드빌부터 금호석유화학, 호텔신라까지 참여사도 다양했다.

이유는 하나, 취업준비생들 사이에서 AI 사용이 당연해졌기 때문이다. 상위권 채용 플랫폼 진학사 캐치에 따르면 Z세대 취업준비생 1025명을 조사한 결과 이들 중 98%는 취업 준비 과정에서 AI 도구를 활용했다. 활용 방식은 자기소개서 초안 작성이 84%로 압도적으로 많았다. 포털 검색창에 '자소서 AI 티'만 입력해도 '없애는 법', '안 나는 법'이 자동 검색어로 뜰 정도다.

더 나아가 AI로 작성한 자소서를 사람이 직접 쓴 문체로 AI가 다듬어주는 유료 서비스도 나오고 있다. 지원자의 결과물은 갈수록 완성도 높아졌지만, 기업은 그 결과물이 지원자의 실제 역량인지 AI의 도움인지 구분해야 하는 새로운 과제를 떠안게 됐다.
취준생이 AI를 사용해 자기소개서 문항을 만드는 모습. /사진=마이다스인
취준생이 AI를 사용해 자기소개서 문항을 만드는 모습. /사진=마이다스인
현장에 참여한 기업 인사담당자들도 같은 고민을 털어놨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인사 담당자는 "저희 회사는 대규모로 채용해서 매달 몇백개가 넘는 지원서를 봐야 하는데 접수된 지원서를 어떤 형태로 평가해서 실무 면접 대상자를 가려낼지, 이 부분이 굉장히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지원서를 필터링한다고 하더라도 필터링하는 과정에서 놓치고 있는 게 있지 않은지 우려된다. AI가 채용 전반에 도입되고 있지만 기업 프로세스는 큰 변화가 없다. 실무, 임원 면접은 그대로다. 결국 이들이 최종 합격해서 들어온다고 해도 채용이 잘 됐는지는 상당 기간이 지난 후에야 알 수 있다"고 덧붙였다.

채용 담당자 73% 번아웃…'결과보다 과정' 묻는 채용으로

박영호 마이다스인 프로가 30일 'AI 시대, 인재 검증 전략'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사진=마이다스인
박영호 마이다스인 프로가 30일 'AI 시대, 인재 검증 전략'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사진=마이다스인
HR 전문가들은 AI 시대일수록 지원자뿐 아니라 기업도 AI를 적극 활용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생성형 AI 확산으로 지원자는 늘었지만, 채용 담당자의 업무 방식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채용트렌드 2026'의 저자인 윤영돈 윤코치연구소 대표는 "채용 담당자의 73%가 번아웃을 경험하고 있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며 "지원자는 늘고 도구는 진화했지만 채용 담당자는 여전히 같은 방식으로 일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생성형 AI 도입 이후 입사 지원은 300건 이상 늘어나는 추세"라며 "이제는 채용 과정 자체를 AI 중심으로 다시 설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마이다스인 에이치닷 컨설턴트가 30일 세미나 참석자들에게 세미나에서 소개한 역량검사, 평가자 에이전트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사진=마이다스인
마이다스인 에이치닷 컨설턴트가 30일 세미나 참석자들에게 세미나에서 소개한 역량검사, 평가자 에이전트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사진=마이다스인
실제 채용의 평가 기준도 바뀌고 있다. 스펙이나 학벌 중심의 선별에서 직무 수행 역량과 스킬 중심으로 무게가 이동하고 있다. AI가 자기소개서와 경험을 그럴듯하게 재구성할 수 있는 만큼, 면접에서도 '무엇을 했는가'보다 '어떻게 했는가'를 묻는 방식이 중요해졌다는 설명이다.

박영호 에이치닷 컨설턴트는 "AI는 프로젝트나 역할, 갈등 조정 경험을 얼마든지 그럴듯하게 재구성할 수 있다"며 "실제 경험인지 확인하려면 결과보다 문제를 해결한 과정과 사고 흐름을 질문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실패 경험 자체는 AI도 작성할 수 있지만, 실패를 받아들이고 회복하는 과정은 쉽게 만들어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박수빈 한경닷컴 기자 waterbe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