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로봇융합연구원이 개발한 해저케이블 매설로봇 URI-T. /한국로봇융합연구원 제공
한국로봇융합연구원이 개발한 해저케이블 매설로봇 URI-T. /한국로봇융합연구원 제공
지난 29일 경북 포항시 영일만항산업단지. 푸른 동해를 마주한 한국로봇융합연구원 안전로봇실증센터에는 100여 명의 연구원이 산업 현장에 적용할 첨단 로봇 기술 연구에 한창이었다. 이곳은 휴머노이드 로봇이 일상화될 미래의 산업 현장을 미리 보는 미래 박물관 같았다. 우리가 흔히 봐 온 크기의 휴머노이드 로봇과는 크기가 비교가 안 될 정도로 큰 산업용 로봇은 기업과 공동연구가 진행 중이어서 사진 촬영이 엄격히 금지됐다.

300평 규모의 실험동에서는 4m 높이의 거대한 로봇이 나타났다. 철광석 등 철강공장 원료 운반 컨베이어벨트를 들어 올려 노후화한 롤러를 자동으로 교체해주는 로봇이다.

강기원 한국로봇융합연구원장은 “수백t의 원료를 운반하는 컨베이어벨트의 롤러 한 개만 멈춰도 마찰로 인해 화재가 발생할 수 있는데 이를 점검하고 예측해 교체해주는 예지보전 기술을 갖춘 벨트롤러교체로봇”이라고 설명했다.

이 로봇 옆에는 사람 크기의 휴머노이드 로봇이지만 사람보다 팔이 3~4배 확장된 로봇이 개발되고 있었다. 이 로봇은 고로의 쇳물을 떠서 검사하는 위험한 일을 대신 해준다. 한국로봇융합연구원이 요즘 포스코와 함께 산업통상자원부 AI자율제조 선도프로젝트를 추진하면서 개발 중인 휴머노이드 로봇이다.

강 원장은 “1500도가 넘는 쇳물이 조금만 튀어도 치명적인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며 “철강 공정에 투입될 두 로봇은 AI자율제조 시대에 사람이 수행하던 고난도· 고위험 작업을 휴머노이드 로봇이 대신하는 철강 산단의 미래를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최근 로봇산업이 AI 기술 발전과 함께 스스로 판단하고 작업하는 피지컬 AI 시대로 진화하면서 한국로봇융합연구원(KIRO)이 AI 시대를 이끌 대한민국 최고의 로봇 연구기관으로 주목받고 있다.

강 원장은 “휴머노이드는 실제 제조 현장에서 반복적으로 검증하고 개선해야 하기 때문에 연구기관과 AI 로봇솔루션 기업, 수요 기업이 함께 기술을 개발하고 실증하며 사업화하는 생태계를 구축해야 글로벌 휴머노이드 시장에서 앞서갈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200개 기업과 20년 이상 협력해온 KIRO의 축적된 경험이 글로벌 피지컬 AI와 휴머노이드 시장을 선도하는 대한민국의 가장 큰 자산”이라고 강조했다.

강 원장은 “로봇산업은 중국이 많이 앞서 있지만 기업의 핵심 기술 노하우와 데이터 보안이 중요한 만큼 자국산 첨단 로봇 기술을 보유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로봇 가격의 최대 60%를 차지하는 핵심 4대 부품을 자체적으로 확보해야 글로벌 공급망 변화에도 안정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핵심 4대 부품은 모터와 감속기, 엔코더(위치 센서), 액추에이터 제어기 등이다.

◇20년간 수중·배관 로봇 기술 축적

KIRO는 2005년 지식경제부, 경북도, 포항시, 포스텍 등이 참여해 설립한 포항지능로봇연구소로 출발했다. 2012년 산업통상부 산하 로봇전문연구기관으로 승격됐다.

KIRO는 지난 20년간 수중로봇과 재난안전로봇, 배관 건설로봇, 농업 자동화 로봇 등 4대 특화 분야를 중심으로 글로벌 선도 연구와 기술을 개발해 축적해왔다. 그 결과 국내는 물론 세계 최초의 로봇과 원천기술을 잇달아 개발하며 글로벌 로봇산업을 선도하고 있다.

수중로봇은 KIRO가 20년 이상 특화한 분야다. 가장 대표적인 성과는 해양수산부 수중건설로봇사업단 연구사업으로 개발한 해저케이블 매설로봇 URI-T다. 최대 2500m 수심 해저면에서 워터젯을 이용해 케이블 및 소구경 파이프라인을 매설하는 25t급 대형 해저 케이블 매설로봇이다. 2019년 개발을 완료한 후 기술이전했다. 2020년에는 베트남 가스파이프관 매설공사 등을 수행하며 대한민국 최초로 수중로봇의 해외시장 진출이라는 성과를 창출했다.

◇세계 최초로 삭도시설 검사로봇 개발

강기원 한국로봇융합연구원 원장이 28일 로봇실증지원센터에서 독일과 공동으로 개발 중인 공중매니플레이션 로봇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오경묵 기자
강기원 한국로봇융합연구원 원장이 28일 로봇실증지원센터에서 독일과 공동으로 개발 중인 공중매니플레이션 로봇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오경묵 기자
KIRO는 지난해 세계 최초로 삭도시설 원격검사 로봇도 개발했다. AI 기반 결함 분석 기술을 적용해 와이어로프와 바퀴의 이상을 자율적으로 탐지하는 기술이다. 기존 육안 점검방식의 한계를 극복했다. 하이원리조트에서 현장검증까지 마쳐 상용화를 눈앞에 두고 있다. 강 원장은 “국내는 물론 케이블카와 스키 리조트가 많은 유럽 등 수출시장에서 각광받을 것으로 예상한다”고 했다.

KIRO의 로봇 기술은 기상을 넘어 하늘로도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독일항공우주센터(DLR)와 국제 공동연구로 개발 중인 고가반하중 공중매니플레이션 로봇이다. 장시간 고소작업이 가능한 공중 작업 플랫폼과 AI 기반 상황인지 기술을 접목해 사람이 수행하기 어려운 고위험·고소작업을 대체하는 로봇이다. 이 로봇 개발이 완료되면 아파트 외벽 도색작업과 고층빌딩 청소, 산업현장 등 플랜트, 건설, 물류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될 것으로 기대된다.

강 원장은 개발한 기술의 사업화를 통한 로봇 기업과 산업 육성에 특별히 힘을 쏟고 있다. 연구원이 보유한 기술로 창업한 회사가 7개에 이른다. 복강경 홀더로봇을 개발한 에이치메딕기어, 재난로봇을 개발한 케이대응로봇, 범용 휴머노이드 로봇을 개발한 아이알에스 등이 대표적이다.

KIRO는 경북 기업과의 협력도 활발하다. 지난해 ‘경북 글로벌 로봇생산거점 구축지원 사업’에 참여한 경북 로봇 기업은 매출이 51%나 증가했다. 또 지난해는 북미, 올해는 베트남 시장 개척에 집중해 베트남로봇협회와 업무협약을 맺고 경북 AI· 로봇 기업의 동남아시장 진출을 돕고 있다.

◇경북, 휴머노이드 특화단지 적지

강 원장은 “정부가 지정을 앞둔 휴머노이드 로봇 국가 첨단전략산업 특화단지는 경북이 적지”라고 설명했다. 특화단지는 연구개발부터 제조 실증 사업화까지 하나의 권역 안에서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산업생태계가 핵심인데, 경북이 이런 모든 요소를 갖췄다는 이유에서다.

강 원장은 “포항은 KIRO를 중심으로 포스텍, 한동대, 포항산업과학연구원, 한국해양과학기술원 해양로봇실증센터 등 대학과 연구기관이 집적돼 있고, 포스코와 에코프로를 비롯한 철강·2차전지 산업을 기반으로 실제 제조 현장에서 휴머노이드 기술을 검증할 수 있는 최적의 실증 환경을 갖췄다”고 말했다. 구미 역시 50년 역사의 전자·부품 산업 기반을 바탕으로 휴머노이드 핵심 부품 생산과 제조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다.

강 원장은 “최근에는 포항의 AI 데이터센터 구축과 구미의 피지컬 AI·휴머노이드 분야 대기업 투자까지 공식화하며 AI 인프라와 산업 생태계도 빠르게 확장되고 있다”며 “이런 기반 위에 국가 첨단전략산업 특화단지가 조성된다면 세계적인 휴머노이드 산업 클러스터로 발전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강 원장은 “휴머노이드 산업의 경쟁력은 개별 기술의 우수성만이 아니라 이를 얼마나 빠르게 산업 현장에 적용하고 세계 시장으로 확산시키느냐에 달려 있다”며 “경북은 대한민국이 글로벌 휴머노이드 산업을 선도하기 위한 전략 거점”이라고 강조했다.

포항=오경묵 기자 okmoo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