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도둑지기 엑스(X) 게시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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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AI)을 활용한 번역이 출판계에서 논란의 중심에 섰다. 한 고전문학 유료 구독 앱이 번역 과정에서 AI를 적극 활용하고도 이를 이용자에게 제대로 알리지 않은 사실이 뒤늦게 드러나면서다. 문학작품 번역 과정에서 AI를 어디까지 정당한 도구로 인정할 수 있는지가 또다시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29일 출판계에 따르면 ‘책도둑’은 저작권 보호 기간이 만료된 국내외 고전문학 작품을 전자책으로 제공하는 앱이다. 1만9800원을 내면 <어린왕자> <동물농장> <일리아스> 등 730권에 이르는 고전문학 전자책을 평생 이용할 수 있다. 앱 다운로드 수는 1000회를 넘어섰다. 지난 21일 앱 운영사는 다음 달부터 평생 이용권 가격을 4만9000원으로 인상하겠다고 밝혔다.

이용자가 빠르게 늘어나는 과정에서 번역 품질을 둘러싼 의문이 제기됐다. 일부 작품에서 전문 번역가가 작업했다고 보기 어려운 문장과 표현이 발견된 것. 운영사는 결국 지난 25일 이를 번역 과정에서 AI를 활용했다고 인정했고, 원하는 이용자에게 전액 환불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출판계에선 책도둑 앱의 사례에서처럼 유료 이용자에게 AI 활용 사실을 제대로 알리지 않은 것은 명백한 문제라는 데 대체로 의견이 모인다. 전문 번역가가 작업한 양질의 글을 기대한 이용자를 속이는 행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고지 여부를 떠나 AI 번역 품질 자체가 문제가 된 사례도 있다. 작년 한 출판사는 호메로스의 <오딧세이아> 등 번역본을 다수 출간했는데, ‘알빠노’(내가 알 바 아니다), ‘머선129’(무슨 일이고). ‘스불재’(스스로 불러온 재앙) 등과 같은 인터넷 신조어가 쓰여 논란을 빚었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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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논란을 계기로 번역 과정에서 AI를 얼마나 활용할 수 있는지 고민해봐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AI 활용 자체가 문제라기보단, 인간 번역가가 얼마나 주도적으로 관여했는지가 핵심이라는 의견도 적지 않다. 문학 번역에는 단어를 다른 언어로 단순히 옮기는 것을 넘어 작품의 시대적 배경과 문체, 인물의 계층과 감정, 어조를 의도에 따라 재구성하는 작업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최애영 한국문학번역원 번역아카데미 교수는 “AI는 번역 과정에서 유능한 비서가 될 수 있지만, 기본적인 판단과 선택은 번역자가 해야 한다”며 “번역가의 해석과 전략 없이 결과물을 검증 없이 받아들이는 것은 문학 번역의 본질과도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다만 이번 논란을 계기로 AI 번역 자체에 대한 거부감으로 번져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해외 작품이 AI 도움으로 빠르게 국내에 들어오는 상황에서 국내 작가와 출판사가 활용에 부담을 느끼면 시장 확대 기회를 놓칠 수 있다는 것이다. 카카오계열 웹소설·웹툰 출판사 KW북스의 권태완 대표는 “웹소설 업계에서 중국은 AI 번역을 거리낌 없이 활용하는 분위기”라며 “해외 콘텐츠가 AI 번역을 통해 빠르게 국내로 들어오는 상황에서 우리만 이를 터부시한다면 한국 작품의 해외 진출이 늦어지고 시장 경쟁에서도 뒤처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출판계에선 책에 AI 활용 여부를 표시하는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한국출판인회의는 도서 출간 시 AI 활용 여부를 명시하도록 유도하기 위해 한 대학에 관련 연구용역을 맡겼다.

오는 8~9월에는 AI 시대의 출판을 주제로 두 번째 포럼을 열고, AI 활용 원칙을 담은 헌장을 발표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출판사 윌북 대표인 홍영완 한국출판인회의 회장은 “AI를 사용했는데도 사용하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은 독자를 기만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한종 기자 onebel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