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인간을 닮은 로봇에 유감 있다
일본 정부의 거짓말에 넘어가 패전은 상상도 못 한 일본인들, 핵폭탄 두 방으로 기나긴 잠이 확 깼다. 곧바로 일본에 진주한 미군은 머리 하나는 더 큰 거인들이었다. 그렇게 패전의 굴욕감에 시달리던 1951년, 그들의 국기라는 ‘스모’ 선수 출신 역도산(한국명 김신락)이 거구의 미국 레슬러를 가라테촙으로 박살 내는 장관을 연출하기 시작했다. 일본인은 눈물까지 흘리며 열광했고 역도산은 일약 그들의 영웅으로 등극했다.

한 해 뒤 색다른 영웅이 등장했으니 ‘아톰’이다. 무려 16년 동안 장기 연재된 만화였는데 영화로도 여러 번 제작돼 폭풍 인기를 구가했다. 일본을 굴복시킨 그 ‘핵’에너지로 가동되는 ‘소년’ 로봇이 바다 건너에서 쳐들어온 ‘거대’ 로봇을 박살 내는 식상한 스토리의 무한반복에도 그들의 무의식을 사정없이 뒤흔들었다. 전설은 마징가를 거쳐 건담으로 지속되며 인간형 로봇의 열기는 지속됐다. 그런 열기에 푹 빠져 성장한 아이들이 어른이 되면서 꿈의 현실화를 시도한다. 와세다대의 와봇1(1973)과 와봇2(1984), 혼다의 P2(1996)와 아시모(2000), 소프트뱅크의 페퍼(2014), 소니의 QRIO와 후지쓰의 HOAP까지. 끝없이 도전했고 예외 없이 실패했다. 그걸로 어떤 가치를 창출할지는 고민하지 않고 오래된 업보 털어내기에 몰입했으니 그럴 수밖에.

그러던 1972년, 화낙이라는 회사가 창업했다. ‘인간 닮은 로봇? 아! 됐고 우리는 인간이 싫어하는 일을 대신해주는 쪽으로 간다’가 모토였다. 지금 그들은 산업용 로봇에서 압도적 세계 1위에다 영업이익률 40%! 제조업들이 이러시면 정말 곤란하다.

영국에 이어 러시아, 독일에 교대로 얻어터진 ‘한때 강국’ 중국이 한 수 아래로 보던 일본에도 깨졌다. 그때 분연히 떨쳐 일어난 분들이 있었으니 의화단(1899~1901)이다. 부적을 삼키고 주문을 외우면 총과 칼에 상처를 입지 않는 도창불입(刀槍不入)의 경지에 오른다고 믿었고 의화권이라는 무술로 서양 군대를 때려잡을 수 있다고 나섰는데, 어찌 됐냐고? 기관총 앞에서 수만 명이 죽어갔다.

일방적으로 당하던 중일전쟁 때도 전통무술만은 일본을 압도할 수 있다는 요상한 믿음! 황비홍, 곽원갑, 엽문의 전설이 그렇게 만들어졌다. 그 전통은 소림오권에서 왔다. 호권, 사권, 학권, 표권(표범)까지는 이해되는데 용권? 누가 용을 봤는지 모르겠지만 그런 동물을 모방하면 비슷한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논리다. 그래서 그 권법을 평생 수련했다는 달인들이 이종격투기에 나섰다가 창피 당하는 영상, 유튜브에 널렸다. 그런데도 최근에 인간을 모방한 로봇을 제작해 텀블링, 마라톤, 종당에는 소림무술까지 시연하며 재주를 선보이는데 나는 궁금하다. 오래된 원한은 알겠지만 그걸로 장차 어떤 가치를 창출하시려는 건지. 지난 춘제에는 인간형 로봇이 떼로 나와 일사불란하게 취권 쇼를 선보이던데 이쯤 되면 로봇판 의화단인가?

영화 ‘터미네이터’는 인간사회에 침투하기 위해 걸어 다니는 인간을 모방한 것이고 우크라이나에서 증명됐듯 전투에는 3차원 공간을 모두 활용하는 드론이 최고다. 진짜 이해가 안 되는 대목은 ‘쟤들은 저렇게 치고 나가는데 우리는 뭐하냐’는 질타다. 그분들, 한때 아시모와 페퍼, 그리고 로봇이 요란하게 춤추며 커피를 만드는 실리콘밸리의 카페X를 칭찬하셨지. 자판기가 훨씬 더 잘해온 일을 굳이 로봇 팔이 춤까지 곁들여 가며 해야 할까?

체코 말인 로보타(robota)는 ‘고된 일’이란 뜻이고 그걸 대신하도록 고안된 게 로봇이다. 국방부가 철책선에 ‘사족보행’ 로봇을 배치하고 병사를 줄이겠다고 했다. 영하 20도의 철책 앞에서 밤새 칼바람을, 겨우내 맞아본 자는 안다. 병력 자원 부족에 대한 대응책이 아니라 우리 아이들의 고통을 대신해주는 것, 그런 게 진짜 로봇이란 걸. 로봇의 현란한 취권에 취할 게 아니라 이미 54%를 돌파했다는 중국의 제조용 로봇 시장점유율에 주목해야 한다. 한번 생각해보시라. 엄청 비싸게 구매한 인간형 로봇에게 진공청소기를 쥐여 주며 청소를 명령할 것인지, 거실 바닥을 알아서 굴러다니며 쓸고 닦는 값싼 저 녀석을 그냥 쓰실 것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