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향숙 이화여대 총장은 23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대학의 역할은 교육과 연구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며 “공동체의 역량을 키우고 집단 지성을 기르는 것은 대학이 아니라면 할 수 없는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문경덕 기자
이향숙 이화여대 총장은 23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대학의 역할은 교육과 연구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며 “공동체의 역량을 키우고 집단 지성을 기르는 것은 대학이 아니라면 할 수 없는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문경덕 기자
이향숙 이화여대 총장은 “세계적 연구소와 자율실험실을 기반으로 미래 반도체와 2차전지, 바이오·양자 분야의 원천기술을 확보하고, 전공과 인공지능(AI)을 결합한 융합형 인재를 키우겠다”고 말했다. 그는 또 “AI가 정답을 제시하는 시대일수록 대학은 공동체의 집단지성을 높이고 학생들이 스스로 사고하고 추론하는 힘을 길러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총장은 23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연구와 교육의 혁신을 국가 경쟁력 제고와 사회적 난제 해결로 연결하겠다”며 이같이 밝혔다.

인문·사회과학 분야의 강자로 평가받아온 이화여대는 연구 중심 대학으로 체질을 바꾸고 있다. 지난해 이 총장 취임 이후 이공계 분야에서 국가연구소 사업 950억원, 대학기초연구소지원사업 250억원, 해외우수과학자유치사업 135억원 등 대형 국가 연구개발(R&D) 사업을 잇달아 수주했다. 이화여대 140년 역사상 첫 과학기술계 출신 총장인 그에게 변화의 배경과 향후 구상을 들었다. 이화여대 수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과 교수로 재직한 그는 대한수학회 회장과 한국연구재단 이사 등을 지냈다.

▷대형 R&D 사업을 잇달아 따냈습니다.

“정부 R&D 평가에 참여한 경험으로 볼 때 연구계획서 자체에 충분한 경쟁력이 있었습니다. 문회리 화학나노과학과 교수와 젊은 연구진 38명이 참여하는 ‘멀티스케일 물질 및 시스템 연구소(IMMS)’가 앞으로 10년간 세계적 수준의 연구를 수행합니다. 오는 8월에는 국내 최대인 500평 규모 자율실험실을 착공할 예정입니다.”

▷자율실험실은 어떤 공간입니까.

“AI와 로봇이 실험과 분석은 물론 다음 실험 설계까지 맡는 전주기 자동화 연구공간입니다. 사람이 없어도 밤낮없이 실험할 수 있어 연구 속도와 효율을 높일 수 있습니다. 시간대가 다른 해외 연구진과 데이터를 공유하며 국제 공동연구를 이어가는 데도 유리합니다.”

▷어떤 연구를 합니까.

“극고온과 극저온에서도 작동하는 미래형 반도체, 차세대 2차전지, 저비용 수소 기술을 개발합니다. 개별 성과에 그치지 않고 사회적 난제를 해결해 국가 경쟁력을 높이는 것이 국가연구소의 역할입니다.”

▷해외 석학 유치도 추진하고 있습니다.

“바이오와 양자를 결합한 초학제 공동연구를 추진합니다. 심사 과정에서도 두 분야의 융합 가능성을 묻는 질문이 나올 만큼 국내에서는 생소한 영역입니다. 첨단바이오, 양자광전자, 뇌과학을 연결해 원천기술을 확보하고 바이오와 양자 연구의 글로벌 거점으로 성장시키겠습니다.”

▷AI 시대에 교육은 어떻게 바뀝니까.

“학생들이 자신의 전공과 AI를 결합해 새로운 가치를 만들도록 해야 합니다. ‘AI와 비즈니스 애플리케이션’, ‘AI 기반 약학 빅데이터와 인포매틱스’ 등 13개 단과대학 36개 학과에 AI 전공과목 55개를 도입했습니다. AI를 별도 기술로 가르치는 데 그치지 않고 각 전공의 문제를 해결하는 도구로 활용하도록 하는 게 핵심입니다.”

▷AI가 답을 주는 시대에 대학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합니까.

“대학의 역할은 교육과 연구에 그치지 않습니다. 공동체의 역량을 키우고 집단지성을 기르는 공간이어야 합니다. 이화에는 최초의 여성 박사 김활란, 최초의 여성 국무총리 한명숙, 최초의 여성 헌법재판소 재판관 전효숙처럼 ‘최초의 역사’를 쓴 선배가 많습니다. 학생들은 이들의 삶을 접하며 리더십과 공동체 의식을 자연스럽게 배웁니다.”

▷졸업생 성과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법학전문대학원은 올해 신임 재판연구원 임용 전국 1위를 기록했습니다. 전자전기공학전공은 공대 역사가 길지 않은데도 지난해 취업률 90.0%로 포스텍에 이어 2위에 올랐습니다. 교육과 연구 경쟁력이 실제 진로 성과로 이어지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AI 시대 수학 교육은 어떻게 달라져야 합니까.

“대수와 기하, 미적분, 확률과 통계 같은 수학의 기본 언어는 고교에서 익혀야 합니다. 수학은 생각의 근육을 키우는 학문입니다. 지금처럼 답이 틀리면 모든 과정을 0점 처리하는 방식으로는 수학의 본질을 가르치기 어렵습니다. 정답보다 사고 과정과 논리를 평가하는 서술형 평가를 확대해야 합니다. 그래야 AI가 답을 제시하는 시대에도 학생들이 스스로 질문하고 추론하는 힘을 기를 수 있습니다.”

고재연/이미경 기자 y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