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6일 경기 남양주시에 거주하는 박정민 씨(72·오른쪽)가 교원그룹의 ‘구몬 액티브라이프’ 수업을 받고 있는 모습. 박 씨는 “학습지 수업을 시작한 이후 정신적·육체적으로 활달해졌다”며 만족해했다. 이광식 기자
지난 16일 경기 남양주시에 거주하는 박정민 씨(72·오른쪽)가 교원그룹의 ‘구몬 액티브라이프’ 수업을 받고 있는 모습. 박 씨는 “학습지 수업을 시작한 이후 정신적·육체적으로 활달해졌다”며 만족해했다. 이광식 기자
경기 남양주시에 사는 박정민 씨(72)는 2년4개월째 교원의 구몬 학습지를 풀고 있다. 지난 16일 자택에서 만난 박 씨는 연립방정식 문제 풀이에 한창이었다. 그는 "수학은 논리가 명확하고 답이 하나로 딱 떨어지는 점이 매력적"이라며 "새벽에 일어나 조용한 분위기에서 문제를 하나씩 풀어나갈 때 가장 행복하다"고 말했다. 박 씨를 지도하는 김시영 구몬 선생님은 "숙제 분량보다 훨씬 많은 문제를 스스로 풀고 선행학습까지 해 진도가 예상보다 훨씬 빨라졌다"고 웃으며 말했다.

박 씨가 원래부터 공부를 즐겼던 것은 아니다. 틈만 나면 TV를 보거나 휴대전화 게임으로 시간을 보내던 평범한 노년이었다. 그러다 통장 비밀번호는 물론 가까운 지인의 전화번호까지 자주 잊고, 간단한 암산도 예전 같지 않자 가족의 권유로 학습지를 시작했다. '1+1=2'부터 다시 공부를 시작한 그는 이제 중학생 수준의 연립방정식을 푼다. 초등학교 6학년인 손자가 "숙제를 대신 풀어달라"고 부탁할 정도다. 지금은 국어·수학·영어·한자 등 네 과목을 매주 꾸준히 공부한다. 박 씨는 "예전에는 밥하고 청소하는 게 하루 일과의 전부였다"며 "'나만의 일'이 생기면서 하루가 달라졌고, 기억력뿐 아니라 삶에 대한 자신감도 커졌다"고 말했다.

경기 군포시에 사는 홍순분 씨(67)도 학습지를 꾸준히 공부하는 시니어다. 그는 대교의 시니어 교육 프로그램인 '내일의 학습'을 수강하고 있다. 공부를 시작한 계기는 2013년 딸과 함께 떠난 해외여행이었다. 영어를 전혀 하지 못해 모든 상황에서 자녀에게 의존해야 했던 경험이 마음에 오래 남았다. 알파벳을 읽는 것부터 시작한 그는 이제 중학교 1~2학년 수준의 영어 교과서를 읽는다. 홍 씨는 "이 나이에 새로운 것을 배우며 성취감을 느끼는 것은 정말 오랜만"이라며 "주변 친구들에게도 꼭 한번 해보라고 권하고 있다"고 말했다.

유치원생과 초등학생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학습지가 시니어들의 새로운 교육 콘텐츠로 자리 잡고 있다. 아이들이 학교 성적 향상을 위해 학습지를 찾았다면, 시니어들은 인지 기능 강화와 건강 관리를 목적으로 학습지를 선택한다. 학습지 업체들도 이미 시니어를 새로운 핵심 고객층으로 보고 관련 사업을 확대하는 추세다. 저출산으로 기존 고객층인 유소년 인구는 빠르게 줄어드는 반면 고령 인구는 가파르게 증가하면서 시니어 교육이 교육업계의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떠오르고 있다는 분석이다.

25일 교육업계에 따르면 이른바 '학습지 3사'로 불리는 대교·교원·웅진은 모두 시니어 대상 교육 사업을 강화하고 있다.

교원은 2024년 5월 50세 이상을 위한 '구몬 액티브라이프'를 출시했다. 기존 구몬 학습 시스템을 그대로 적용하면서 전담 구몬 선생님이 매주 방문해 학습을 관리해주는 방식이다. 국어·수학·영어·한자·일어 등 모두 7개 과목을 운영한다. 지난달 10일 기준 회원 비중은 60대가 35%로 가장 많았고, 이어 50대(27%), 70대(25%), 80대 이상(14%) 순이었다.

대교는 지난해 5월 '대교 내일의 학습'을 선보였다. 50세 이상을 대상으로 방문형과 비대면 학습을 모두 지원하며 국어·수학·영어뿐 아니라 문해력과 인지훈련 프로그램도 함께 제공한다.

웅진은 기존 학습지 사업을 확대하기보다 성인 교육 플랫폼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2021년 글로벌 온라인 교육 플랫폼 '유데미(Udemy)'와 기업 교육 서비스인 '유데미 비즈니스'를 국내에 선보였다. 정보기술(IT), 인공지능(AI), 데이터, 비즈니스, 외국어, 자기계발 등 다양한 분야의 강의를 제공하며 중장년층 수요도 흡수하고 있다.
AI로 생성한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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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 업체가 시니어 시장에 공을 들이는 가장 큰 이유는 인구 구조 변화다. 국가데이터처에 따르면 2010년 798만명이었던 유소년(0~14세) 인구는 올해 526만명으로 줄었고, 2035년에는 374만명까지 감소할 것으로 전망된다. 반면 65세 이상 고령 인구는 같은 기간 537만명에서 1051만명으로 두 배 가까이 늘었다. 2035년에는 1521만명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시니어에게 학습지는 단순한 교육 프로그램을 넘어 '인지 건강관리 서비스'라는 점도 시장 확대의 배경으로 꼽힌다. 규칙적인 학습을 통해 기억력과 집중력을 유지하고 사회적 고립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된다는 인식이 확산하고 있어서다. 교육업계는 치매 예방 효과를 직접 내세우지는 않지만, 지속적인 두뇌 활동과 학습 습관 형성이 인지 기능 유지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특히 어린 시절 충분한 교육 기회를 얻지 못했던 고령층에게는 배움 자체가 삶의 만족도를 높이는 역할을 한다는 평가도 나온다. 자녀가 독립한 이후 사회활동이 줄어들면서 인지 기능이 급격히 저하되는 것을 막기 위해 학습을 선택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가격 경쟁력도 강점이다. 박 씨의 경우 국어·영어·수학·한자 네 과목을 수강하는 데 월 13만원 정도를 낸다. 방문 수업과 자율학습을 모두 포함한 학습 시간은 하루 평균 1시간30분~2시간 수준이다. 헬스케어나 문화센터 프로그램과 비교해 비용 부담이 상대적으로 크지 않은 편이다.

교육업계 관계자는 "시니어 상당수는 '내 돈은 손자·손녀 학원비에 보태 쓰라'고 말할 정도로 자신의 소비에는 인색한 편"이라며 "학습지는 비용 부담이 크지 않으면서도 성취감을 얻을 수 있어 만족도가 높다"고 말했다.

이광식 기자 bumeran@hankyung.com